제 153 과 진실한 종의 행동 지침 -『목적이 이끄는 삶』, 제 33 장

많은 사람들이 섬기는 종이 되기보다는 지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크리스천들도 ‘섬기는 지도자’(servant-leaders)가 되기는 원해도 그저 종으로 남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서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자신을 그렇게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섬김을 위해 부르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종의 마음이 없이는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지 않으려 하는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사역을 보여주지만 종의 마음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성숙한지를 보여줍니다. 모임 후에 쓰레기를 줍는다던가, 의자를 정리하는 일은 특정한 달란트와 은사를 요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누구나 다 종이 될 수 있고, 종이 되기 위해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성품뿐입니다. 그러면 종은 어떤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합니까?

진실한 종은 섬기기 위해 자신을 내어줍니다

종이란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대신에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돕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편할 때만 섬기는 일을 한다면 우리는 진실한 종이 아닙니다. 진실한 종은 비록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여러분은 언제든지 시간을 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하셔도 그분을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종으로서 우리는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만 섬기겠다고 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종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스케줄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언제든지 원하시면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진실한 종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봅니다

종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필요를 목격하게 되면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우리 앞에 두실 때마다 우리는 종의 모습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교회 식구들의 필요를 돌보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둘 것을 말씀하셨음을 주목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진실한 종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가 가진 것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섬기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섬기기에 부족하다고 느끼며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슈퍼스타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거짓말을 믿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상황은 오지 않습니다. 또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 해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실수와 부족함을 통해 배웁니다. 지금 섬기십시오.

진실한 종은 모든 일에 대해 똑 같은 헌신을 합니다

종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골 3:23) 합니다. 일의 규모를 상관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만 묻습니다. 하찮은 일을 하기에는 자신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인생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하기를 꺼리던 하찮은 일을 하셨습니다. 발 씻기기, 어린아이들 돌보기, 아침 식사 만들기, 문둥병자 돌보기.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기 때문에 당신이 섬기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작은 일들은 넓은 마음을 보여줍니다. 종의 마음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 못하는 작은 행동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우리가 종의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만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별로 위대하지 않을 일을 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기를 바라시는 당신의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고 비좁지만, 종이 될 수 있는 길은 환하게 열려 있고 많은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진실한 종은 그들의 사역에 충실합니다

종들은 자신들의 일을 끝까지 잘 감당하고, 책임을 완수하며, 약속을 지키고, 헌신한 바를 완수합니다. 반 정도 일을 끝내고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낙심해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나라에서 우리의 신실함에 대해 상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젠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3).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서 은퇴란 없습니다.

신실한 종은 낮은 자세를 유지합니다

종은 자신을 선전하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의를 끌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를 섬깁니다(벧전 5:5). 누군가가 사역을 인정해줄 때는 겸손하게 받아들이지만, 유명세로 인해 사역이 방해되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

진실한 종은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가능하면 그런 자리를 피하려 하고 음지에서 조용히 섬기는 것에 만족해합니다. 이름 없이 음지에서 섬긴 종들을 하나님은 천국에서 공개적으로 상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사역이 주목받지 못하거나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질 때 실망하지 말고 계속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2).

제 155 과 종의 마음으로 생각하기 -『목적이 이끄는 삶』, 제 34 장

섬김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마음 자세가 무엇을 성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진실한 종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합니다

종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바로 이것이 겸손입니다. 자기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적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봅니다.”(빌 2:4)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잃는 것’의 참 의미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섬김 가운데 많은 경우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좋아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우러러보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속임이지 사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섬기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고귀하고 멋있는 존재인가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진실한 종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내어드립니다.

본능적으로 ‘나’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나’에 대해서 가장 많이 생각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겸손은 매일 매일의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고, 거듭해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의 마음을 가졌는가를 알 수 있는 척도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종처럼 다룰 때 어떻게 그들에게 반응하는가 입니다. “누군가가 너희를 부당하게 이용하면 종의 삶을 연습하는 기회로 사용하라”라고 마태복음 5:41은 말합니다.

진실한 종은 주인이 아닌 청지기같이 생각합니다

청지기란 종의 신분으로 주인의 소유를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 중의 하나가 돈입니다. 진실한 종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돈의 문제에 대해 분명해야 합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돈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대치할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금전적인 목표를 달성한 후에 하나님을 섬기겠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평생을 통하여 후회하게 될 어리석은 결정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실 때에는 돈이 우리를 섬기지만,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될 때에는 돈의 노예가 됩니다. 물론 부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를 쓰지 않을 때는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종은 돈보다 사역에 마음을 쏟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와 세계 선교를 위해 쓰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진실한 종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합니다

진실한 종은 다른 종들의 사역과 자신을 것을 비교하거나, 그들의 사역을 비판하거나, 그들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들 사이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불합리합니다. 우리는 다 한 팀에 속해 있고, 우리의 목표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데 있으며, 각자 맡은 일이 다를 뿐 아니라 각기 독특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들 사이에는 사소한 질투가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일로 바쁘다 보면 다른 사람을 비판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주인의 다른 종을 평가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 14:4). 또한 비판에 대해 방어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주님이 처리하시도록 맡기십시오. 예수님이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진실한 종은 그리스도 안에 정체성을 둡니다

그들은 조건 없이 사랑받고, 은혜로 용납 받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확실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비하하는 일도 기꺼이 용납합니다.

우리가 종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확실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섬길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불안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항상 걱정합니다. 그들은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만과 가식 아래 숨습니다. 우리가 불안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이 우리를 섬겨주고 인정해주기를 원하게 됩니다.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을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우리의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종은 그들의 방을 그들이 한 일을 증명해주는 상패나 상장으로 도배해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름 뒤에 직함을 넣어서 불러달라고 주장하거나 이룩한 업적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측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 10:18)

진실한 종은 사역을 의무가 아닌 기회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사역하는 사람, 그는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자’(시 100:2)입니다. 왜 기쁨으로 섬깁니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이며, 섬김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가장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상 주신다는 약속(요 12:26; 히 6:10)을 알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그리스도인의 10%만 진실한 종으로서의 역할을 진지하게 감당해도 세상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제 156 과 약함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 -『목적이 이끄는 삶』, 제 35 장

하나님은 약한 사람들을 사용하기 좋아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점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약점들을 부인하고, 방어하고, 핑계를 대고, 숨기고, 약점을 가진 사실에 대해 원망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이 그 약점들을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용하실 수 없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십니다. 성경은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까지도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좋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분은 약하고 그 약점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완벽한 사람들만 쓰셨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누구도 약점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불완전한 사람들을 들어 쓰신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격려를 주는 소식입니다.

약점, 혹은 바울이 말하는 ‘가시’(고후 1;27)는 죄도 악도 아닙니다. 이는 과식하거나 참지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성격적인 결함이나 습관도 아닙니다. 약점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났거나 바꿀 힘이 없는 한계점입니다. 그것이 장애, 만성 질환, 체력 저하 또는 능력 저하와 같은 육체적인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비극적인 상처, 나쁜 기억, 인격적인 결함, 또는 유전적인 성격과 같은 감정적인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재능이나 지적인 면에서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약점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태도들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십시오. 모든 갖추고 있는 체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솔직해 지십시오. 부인하거나 핑계 대는 대신에, 자신의 약점들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목록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하고 동시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일 뿐입니다.

자신의 약점에 대해 만족해하라

바울은 우리의 천성적인 약점들에 대해 우리가 만족해야 할 몇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첫째, 우리의 약점은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할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기를 거부하는 자신의 약점들을 언급하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우리가 약하다고 느낄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약점은 우리가 거만해지지 않게 막아줍니다.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7)고 말했습니다. 약점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의 약점은 믿는 사람들 사이의 교제를 활발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약점은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서로의 약점을 함께 엮으면 엄청난 힘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약점들은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것과 사역의 포용력을 증가시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약점에 대해 더 동정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나누라

사역은 약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방어막을 걷을수록, 가면을 벗고 아픔을 나눌수록,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우리를 더 많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약점은 위험합니다. 방어막을 걷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개방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실패, 감정, 좌절, 두려움 등을 드러내면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유익함은 그러한 위기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드러냄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두려움을 없앨 수 있습니다.

정직하면 할수록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약함은 친밀함으로 가는 길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우리의 강점만을 본다면 그들은 좌절하고 “그 사람은 좋겠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을 보면 그들은 힘을 얻고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실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어느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것인지, 아니면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멀리 떨어져서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는 있지만,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들에게 가까이 가면, 그들은 우리의 결점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지도자의 가장 본질적인 자질은 완벽함이 아니라 신뢰성입니다. 그 신뢰는 완벽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데서 옵니다.

자신의 약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라

바울은 “나는 내가 얼마나 약한지 그리고 나의 약함을 그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에 대해서만 자랑할 것이라”(고후 12:5)라고 말합니다. 사탄이 우리의 약점을 지적할 때 그것에 동의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약점을 이해하시는’(히 4:15) 예수님과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롬 8:26) 성령님을 온 마음으로 찬양하십시오.

제 157 과 사명을 위해 지음받았다 -『목적이 이끄는 삶』, 제 36 장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다섯 가지 목적 중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며, 예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 등의 네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장부터는 마지막 다섯 번째 목적인 ‘사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받았습니다. 우리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섬김이고(골 1:25; 고전 12:5), 사명은 이 땅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섬김입니다.

열두 살 때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눅 2:49)라고 말씀하셨고, 21년 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가지고 계셨던 사명은 이제 우리의 것입니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하신 일을 그분의 영적인 몸인 교회인 우리가 계속 이어나가야 합니다. 그 사명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사명의 의미에 관해서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명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그분의 제자들로서 우리는 예수님이 시작하신 것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오라고 부르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위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이 명령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하나님의 가족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기독교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위대한 특권이다

우리의 사명은 두 가지 큰 특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과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그분의 ‘파트너’ 혹은 ‘동역자,’ 혹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고후 6:1)입니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는 대사입니다.”(고후 5:20)

영원한 삶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다

만일 우리의 이웃이 암이나 에이즈에 걸렸고 우리가 그 치료법을 알고 있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숨기는 것은 범죄가 될 것입니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용서와 목적과 평화와 영생의 길인 복음을 비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식을 알고 있고, 이를 나누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입니다.

우리는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그들은 절망 속에서 길을 잃고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살게 될 것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우리의 사명은 영원한 중요성을 갖는다

우리의 사명은 다른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명은 그 어떤 직업, 성취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게 될 어떤 목표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사명에 대한 결과는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명을 서둘러 수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당장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십시오.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은 이 땅에 있는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삶보다 오래 남을 수 있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토록 오래 남는 것은 하나님 나라뿐입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주신 이 땅에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분이 주신 삶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만일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로 인해 천국에 가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영원한 세계에서 큰 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가 사명을 완수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중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7-8).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오실 지는 잘 모르지만 확실하게 이 사실만은 압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기까지는 예수님이 재림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더 빨리 재림하시기를 바란다면 예언을 분석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사명을 수행하는 데 집중하십시오.

사명을 완수하려면 우리의 목표를 버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서명이 들어 있는 백지를 하나님께 내밀고 나머지 구체적인 것들을 채워달라고 말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헌신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제 158 과 남편을 존중하는 아내

*송길원; 이동원,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40일 새벽기도』, 제16장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목회자이자 상담자로 활동하던 어떤 목사님이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부부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잠시 남편이 자리를 뜨자 부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남편은 말이 없어요. 애써 내게 감추려고 하지만 그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나는 잘 알아요. 기회를 보아 남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세요. 그는 진실한 사람이에요.”

부인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지만 부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는 상황이 바뀌어 남편과 목사님이 둘이서만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편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요즘 일이 잘 안되어서 아내는 퍽 기분이 우울한가 봐요. 떠나시기 전에 틈을 보아 제 처를 좀 위로해 주세요.”

하지만 다음날 아침까지도 그 목사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집을 떠나기 전에 두 부부와 헤어지면서 딱 한마디만 했습니다. “당신네 부부에겐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겁니다. 서로 자기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 주는 한 당신들은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겁니다.”

이런 부부야말로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부부입니다. 서로 돕고 아껴주는 모습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진정한 부부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아껴 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간혹 여자는 너무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보호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자세로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가능성이 아주 희박합니다. 사랑에는 쌍방향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쌍방향 원리란 누군가 한 사람의 희생과 섬김만으론 그 사랑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두 사람의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고 두 사람이 서로를 아껴 주어야만 돈독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현숙한 여인은 남편에게 진주보다 귀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 “현숙한 여인”이라는 말은 어질거나 다소곳하다는 뜻이 아니라 “능력 있는 여인,” “유능한 여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유능한 여인은 사회적인 재치에서부터 경제적인 능력, 심지어 리더십까지 포함하고 있는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유능한 여인은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식구들에게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집안일을 두루 살펴보고 여종들에게는 일을 정하여 맡긴다. 자신감과 위엄이 몸에 배어 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입만 열면 지혜가 저절로 나오고 혀만 움직이면 상냥한 교훈이 쏟아져 나온다”(잠 31:10-27)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보호받고 아낌 받는 것만을 기대하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내들 스스로가 남편을 돕고 남편을 아껴 주지 않는다면 어느 땐가 남편의 사랑도 바닥날지 모릅니다. 이제라도 서로 아껴 주십시오. 서로 돕고 서로 위하고 서로 양보해 주십시오.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고 그래야만 그 가정이 건강해집니다.

이처럼 서로 돕고 아껴 주는 일이 실현되면 정작 이익을 얻는 사람은 아내입니다. 처음엔 남편이 이익을 얻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내에게 유익이 돌아옵니다.

여기 남편을 아껴 줌으로써 커다란 이익을 거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편을 아껴 주었던 그 여인은 남편 D. H. 로렌스로부터 다음과 같은 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친구들이여,

도대체 내가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결혼 생활 18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내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된 것일까?

내가 읽은 책들에 의해서 판단하면

지금쯤은 내가 내 아내에게 진력이 나야 할 때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가 않다.

나는 지금쯤은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져야 할 때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가 않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된 것일까?”

이제 여러분도 서로 아껴주는 남편과 아내가 되십시오. 그러면 이런 고백이 바로 여러분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제 159 과 삶의 메시지 나누기 -『목적이 이끄는 삶』, 제 37 장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세상에 말씀을 전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습니다.”(요일 5:10) 그 증거를 우리는 삶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메시지는 간증, 삶의 교훈, 거룩한 열정, 복음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아래에서 우리는 한 부분씩 다루게 될 것입니다.

삶의 메시지는 간증을 담는다

간증은 그리스도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셨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즉 주님과 관련된 우리의 경험을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기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는 없으며, 그 이야기는 우리만이 나눌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원리들보다 공감하기 쉽고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 이야기들은 관심을 사로잡으며,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학자들의 이야기를 인용하기 시작하면 지루해하지만, 그들이 겪어보지 못한 경험들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갖습니다. 이렇게 나눈 이야기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으로 찾아가실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간증이 갖는 또 하나의 가치는 그것이 지식적인 내용들이 풍기는 거부감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들도 개인적인 겸손한 이야기들은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16). ‘예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간증문을 작성하고, 그 주요 포인트를 암기하는 것입니다.

삶의 메시지는 삶의 교훈을 담는다

삶의 메시지 그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이 경험을 통해서 가르쳐주신 진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나 관계나 문제나 유혹이나 삶의 다른 여러 부분들에 관해 우리가 배운 교훈과 성찰입니다. 삶에서 배운 중요한 교훈들을 기록하십시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의 삶의 교훈에서 배움으로써 많은 불필요한 좌절을 피할 수 있습니다.

실패, 돈이 부족한 상황, 고통, 슬픔, 우울함, 기다림, 질병, 실망, 가족, 교회, 인간관계, 소그룹, 나를 비판하는 사람 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쳐주셨는지를 기록하고 나누십시오.

삶의 메시지는 우리가 나누는 거룩한 열정을 담는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서 하나님이 깊이 사랑하시는 것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문제, 목적, 원칙, 혹은 한 그룹의 사람들에 대한 열정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변화를 일으키도록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십니다. 그 문제들은 주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학대, 중독, 불임, 우울증, 질병, 혹은 다른 어려움들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집단을 대변하도록 열정을 주기도 하십니다. 낙태된 아이들, 박해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 학대당하는 사람들, 사회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등.

하나님은 또 우리에게 교회를 개척하거나, 가족 사역을 하거나, 성경 번역을 위한 재정을 지원하거나, 크리스천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 싶어 하는 거룩한 열정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또는 복음을 통해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열정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열정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삶의 메시지는 복음을 담는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을 때,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삶의 목적을 갖게 되며, 천국에 영원한 집을 약속받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잃어버린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돌봐야 합니다. 사랑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만일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그들에 대한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도 알고 있는 한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역 안에 하나님의 가족이 아닌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교회는 반드시 그에게 계속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지는 우리의 주변 모든 곳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들을 놓치지 마십시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 그들과 만나는 모든 순간에 현명하게 행동하라.”(골 4:5). 우리가 천국에 이르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과 천국에서 만나는 상상을 해보십시오. 한 영혼의 구원은 우리가 인생에서 성취하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사람들만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제 160 과 세계적인 그리스도인 되기 -『목적이 이끄는 삶』, 제 38 장

우리는 세상적인(worldly)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고 세계적인(World-Class)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자기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지만, 세계적인 그리스도인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일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그분의 나라에 관한 일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하고, 오래 지속될 일은 없습니다. 언젠가 그 위대한 일은 멋지게 완성될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인종, 민족, 국가 그리고 언어’(계 7:9)의 사람들이 엄청난 무리를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분을 찬양할 것입니다. 세계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은 천국이 어떤 곳인지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데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거리나 비용이나 교통이 큰 장벽이 아닙니다. 유일한 장벽은 우리의 사고방식입니다. 세계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타인 중심적 사고로

이것이 세계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단계입니다. 물론 우리의 본성이 자기중심적이고, 날마다 접하는 거의 모든 광고들이 이기적으로 생각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순간순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느끼게 해달라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연습을 통해서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조용히 ‘속으로 하는 기도’의 습관을 기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가 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목적은 그들이 영적인 여정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마음 자세를 통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 10:33)

지역적인 사고에서 세계를 품는 사고로

하나님은 세계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이 모두 당신의 가족이 되길 원하십니다.

세계를 품고 사고하는 방법의 첫 단계는 특정 국가를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그리스도인은 세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지구본이나 지도를 가지고 각 나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 2:8). 기도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사랑을 거절하고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를 막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골 4:3, 롬 1:10), 말할 수 있는 용기(엡 6:19), 하나님을 믿게 될 사람들(요 17:20), 복음의 빠른 전파(살후 3:1), 더 많은 일꾼들(마 9:38),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세계를 품는 사고를 개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지상 명령을 완수하기 위한 관점’으로 신문과 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많은 갈등과 긴장상황에 대한 뉴스를 접하더라도 그 일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려 하신다는 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를 품는 사고방식으로 전화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다른 나라로 단기 선교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다른 문화에서 직접 삶을 경험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지금 여기’만 바라보는 사고에서 영원을 바라보는 사고로

이 땅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영원한 관점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사소한 일에 비중을 두지 않게 되고 급한 것과 궁극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8). 우리의 삶을 일시적인 것들과 바꾸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세상 물건을 쓰는 사람은 그것들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은 사람처럼 사십시오. 그것은 이 세상의 현재 모습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7:3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을 방해하고 있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내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데리고 오기 위해 돈을 투자하는 것이 천국에 보물을 쌓아두는 한 방법입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우리를 반겨줄 영원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금전적인 투자 방법입니다.

핑계거리를 찾는 대신 사명을 완수할 창조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사고로

뜻이 있는 곳에는 항상 길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말밖에 못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배우고 싶어 하는 나라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능력과 경험은 반드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나는 너무 나이가 많아”라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선교 단체들은 각 연령 대에 맞는 단기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원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은 선교사로 부름 받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싶어진다면, 지금 가능한 모든 방법들과 가능성을 검토해보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여쭈어보고 진지하게 기도해보아야 합니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이 중요한 시기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매우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분이 가장 관심을 두시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하고, 전 세계에 대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지상명령은 바로 우리가 완수해야 할 사명이고, 우리가 맡은 부분을 수행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비밀입니다.

제161과 삶의 균형 잡기 -『목적이 이끄는 삶』, 제39장

우리의 삶은 다섯 가지 목적으로 이뤄진 오종 경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섯 가지는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목적들을 실천했고,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이 설명했으며,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이 내용들은 십계명과 지상명령에도 요약되어 있는데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1.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예배

2.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섬김과 사역

3.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전도

4.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교제

5.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그리스도의 제자됨

이 다섯 가지 목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열정을 품고 있는 것들은 지나치게 강조하고, 나머지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래의 네 가지 활동을 함으로써 이 목적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습관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동역자나 소그룹에게 이야기하라

목적이 이끄는 삶의 원칙들을 내면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그룹에 참여하여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배웁니다. 대화를 통해 우리의 마음은 더 많이 다듬어지고, 우리의 헌신도 더 깊어집니다. 소그룹에서는 이 책(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유익이 있습니다. 배우고 있는 것들에 대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적인 삶의 예들을 가지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목적들에 따라 살기 시작하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며, 지지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성장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살전 5:11)

영적인 정기 검진을 받으라

우리 삶에서 다섯 가지 목적들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기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의사에게 정기 검진을 받듯이 우리의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는 정기적으로 다섯 가지의 중요한 징후들, 즉 예배, 교제, 인격의 성장, 사역, 선교에 대해서 검사해야 합니다.

자신의 발전 과정을 일기에 적으라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고 계신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을 강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앙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건을 적는 일기가 아니라, 잊고 싶지 않은 삶의 교훈들을 적어 놓는 것입니다. 글로 적어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통해 무엇을 하시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좋은 것들만 쓰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윗처럼, 의심, 두려움, 하나님과의 싸움까지도 모두 적으십시오. 가장 위대한 교훈은 고통에서 나옵니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다섯 가지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그 문제를 사용하실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문제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더 깊은 교제를 갖게 되며,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쌓게 되고, 사역을 갖게 되며, 간증거리를 갖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경험 가운데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미래의 세대들을 위해 이 일들을 기록해놓아 새로운 백성들이 여호와를 찬양하게 합시다”(시 102:18).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을 이루도록 우리를 어떻게 도우셨는지에 대한 간증을 보전해서 다음 세대에 전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라

계속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배운 것들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 삶의 목적을 이해했으니 우리가 할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당신의 전령으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여러분은 아마 삶의 목적을 모른 채 살고 있는 수백 명을 알 것입니다. 이 진리를 여러분의 자녀, 친구, 이웃, 동료들과 나누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그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목적을 안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십시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딤전 4:6)

예수님은 목적이 이끄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도와주셨고(예배), 서로를 사랑하도록 가르치셨으며(교제), 그들이 성숙할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고(제자도), 섬기는 법을 보여주셨으며(사역),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보내셨습니다(사명).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일이었고 예수님은 그 일을 이루심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요 17:4).

오늘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와 같은 일을 위해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목적대로 살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도록 돕기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목적이 이끄는 삶입니다. 얼마를 살았든 상관없이 우리의 남은 삶은 생애 최고의 날들이 될 수 있고, 우리는 오늘부터 목적이 이끄는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 162 과 따뜻한 말로 격려하는 아내

*송길원; 이동원,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40일 새벽기도』, 제17장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미국 텍사스 의과대학의 스미스 교수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심장학 교수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이를 계기로 아주 신비한 현상을 한 가지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쓰러진 자기 육체를 싣고 병원의 응급실로 데려가는 모습과, 침대에 누워 응급조치를 해도 전혀 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다른 사람 보듯이 훤히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엔 의사들이 그의 얼굴을 하얀 시트로 덮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그가 죽은 것으로 판단한 눈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어디론가 한없이 빨려들어 갔고 마지막에는 심판대처럼 보이는 단상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가 심판받았던 심판의 기준은 그가 살아있을 동안 무수히 쏟아 냈던 말이었습니다. 그는 예전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가를 깨닫게 되었고 반대로 대수롭지 않은 위로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막 심판대 앞으로 나서려는데 어디선가 “이제 너에게 다시 한 번 인생의 기회를 줄테니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런 환상을 본 후부터 그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다시 살아난 그는 곧바로 병원에 휴직계를 제출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우리가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요하며 얼마나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인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다시 맡은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말의 권세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큰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예수님도 말씀으로 병든 자와 죽은 자를 구원하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하나님은 인간의 말을 역사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언어의 순기능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의 순기능보다 언어의 역기능에 너무도 길들여져 있습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는데도 말입니다. 또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도 모두 알고 있으면서 우리는 은연중에 부정적인 언어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좋은 언어의 순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살기 쉽습니다. 특히 남자들일수록 더 심합니다. 고마워도 제대로 고맙다는 말조차 못하고 속이 상해도 그 아픔을 혼자 짊어지는 것이 남자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남자들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신체를 연구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남자와 여자의 성대 길이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남자의 성대는 여자보다 길이가 세배나 더 깁니다. 그 말은 곧 남자가 말을 하려면 여자보다 세배 정도의 산소가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 정도의 공기가 있어야 성대가 채워집니다. 그러니 남자가 말을 잘 하고 많이 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말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공기도 많이 필요치 않고 어휘력도 남자보다 훨씬 더 풍부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전화기에 대고 두 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고도 이렇게 전화를 끊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다시 하자.”

이런 차이는 다른 데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어로 가정을 따뜻하게 하고 가족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은 남자의 몫이라기보다는 여자의 몫에 가깝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남자들은 놀면서 대접만 받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취지에서 여성들이 가정에서 실천해야 할 언어 훈련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반드시 말하기 전에 생각부터 하십시오. 남편의 말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말고 당신의 생각과 할 말을 명확히 한 다음 대화한다면 부부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것입니다. 말하기 전에 단 1분이라도 먼저 생각을 정리한다면 우리의 언어의 질이 향상될 것입니다.

둘째, 말다툼을 피하십시오. 말다툼은 분노와 인신공격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본래 마음속에 없던 말까지 튀어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적당한 때에 적절한 만큼만 말하십시오. 말을 아끼고 적절한 말을 알맞은 때에 하는 것은 부부관계를 견고하게 해주는 고급 영양제와 같습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관계를 닳아 없어지게 하는 행위입니다.

넷째,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십시오. 모든 언어는 세 가지 황금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말이 진실이냐, 필요한 말이냐, 그리고 친절한 말이냐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말을 하십시오. 남편의 말을 잘 들어주는 대화는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상처를 치유합니다. 남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버리고 남편을 살리는 칭찬을 연습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남편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여러분의 남편과 여러분을 무시할 것입니다. 항상 남편을 격려하십시오. 이것이 남편의 기를 살리는 비결입니다.

제163과 목적이 있는 삶을 살기 -『목적이 이끄는 삶』, 제40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세 가지 기본적인 문제로 고민합니다. 첫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둘째는 “내가 과연 중요한 존재인가?”라는 중요성의 문제, 그리고 셋째는 “삶에서 나의 위치는 무엇인가?”라는 영향력의 문제입니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가지고 계신 다섯 가지 목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삶의 목적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삶의 목적 선언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정기적으로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삶의 목적 선언서란 무엇인가?

삶의 목적 선언서는 첫째,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요약해줍니다. 둘째, 삶의 방향을 가리켜줍니다. 셋째, 진정한 ‘성공’에 대한 정의를 내려줍니다. 넷째, 우리의 역할을 명확히 해줍니다. 다섯째, 우리의 모습을 표현해줍니다.

시간을 내서 삶의 목적 선언서를 작성하십시오. 하지만 아래의 다섯 가지 질문들을 고려하십시오.

삶의 다섯 가지 중요한 질문

내 삶의 중심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이것은 예배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계신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삶의 중심에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에 계시면 우리는 그분을 예배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걱정하게 됩니다. 걱정은 하나님이 옆으로 밀려나셨다는 경고신호입니다. 하나님을 다시 중심에 모시는 순간 우리는 다시 평안을 찾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성품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제자도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 지보다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두십니다.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 가지고 갈 것은 직업이 아니라 성품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삶에서 노력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부분들을 기록하십시오.

내 삶을 어디에 기여해야 하는가?

이것은 섬김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가운데서 내가 감당해야할 부분은 어디인지, 우리의 은사와 마음과 능력과 성격과 경험을 모두 고려했을 때 교회에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적합한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 교회 안에서 내가 섬길 수 있는 특정한 그룹이 있는지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내 삶은 어떤 전달 도구가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선교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사명 선언서는 삶의 목적 선언서의 일부분입니다. 그것은 간증과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는 헌신을 포함해야만 합니다. 또한 삶에서 얻은 교훈과 하나님이 세상과 나누라고 주셨다고 생각되는 우리의 거룩한 열정도 적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 가는 동안, 우리 마음에 끌리는 특별한 목표 그룹을 하나님이 정해주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 또한 반드시 선언서에 덧붙이십시오.

내 삶의 동역자는 누구인가?

이것은 교제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더 성숙하면 할수록 우리는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됩니다. 목적 선언서에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동안, 이 목적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성경 구절들도 포함시키십시오. 삶의 목적 선언서를 마음에 들도록 완성하는 데는 몇 주에서부터 몇 달까지 걸릴지도 모릅니다. 기도하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완성하기까지 여러 번의 수정 작업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다음은 그러한 삶의 목적 선언서의 하나의 예입니다.

“내 삶의 목적은 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나의 모습으로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가족과 교제하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며, 이 땅에서 그분의 사명을 수행함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서 살고, 어디에서 일하며, 누구와 결혼을 했는지 등의 문제보다는 우리가 당신의 영원한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두십니다. 그 결정들이 우리의 목적을 뒷받침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계획에 집중하지 말고, 여러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집중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무엇이라고 얘기하는 지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만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신다

“다윗은 그의 세대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섬겼다”(행 13:36). 이 구절이 잘 살아온 삶의 궁극적인 정의입니다. 영원하고 무한한 것을(하나님의 목적을) 현재에 그리고 시기적절하게(나의 시대에)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적이 이끄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들어 쓰실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목적을 위해 쓰임 받는 바로 그 사람이 되십시오.

언젠가 역사는 끝이 날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삶이 계속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되어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깊은 감사와 찬양을 드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찬양하고 그분의 목적을 위해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제164과 비전을 키우라 -조엘 오스틴,『긍정의 힘』(서울: 두란노, 2005) 제1장

마음에 품지 않은 복은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좋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적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원이나 우리의 재능이 부족해서 성공하지 못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우리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난 이미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어. 이게 내 한계야. 내가 그렇지 뭐.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그런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겠어? 이제 난 글렀어.’ 슬프지만 맞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려면 가장 먼저 ‘큰 비전’을 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최선의 삶을 살려면, 먼저 믿음의 눈으로 삶을 바라봐야 합니다. 높은 단계로 도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마음에 품고 굳게 믿어야 꿈은 이루어집니다.

원하는 모습을 그리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마음속에 원하는 삶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말고 이 이미지를 자신의 일부로 삼아야 합니다. 생각과 대화, 깊은 잠재의식, 행동을 비롯해서 자기 존재의 모든 부분에 이 이미지를 심어야 합니다.

패배와 실패의 이미지를 그리는 삶은 실패자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승리와 성공, 건강, 풍요로움, 기쁨, 평화, 행복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리 큰 장애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런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과 패배감 속에서 허우적댈 필요가 없습니다. ‘많이 배우지도 못한 내가 이 정도 했으면 됐지.’ ‘내 몸이야 뭐 항상 이렇게 골골거리지.’ ‘난 여기까진가 봐.’ ‘이게 내 한계야.’ 이런 좁은 생각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복, 예컨대 승진과 놀라운 성장을 기대하면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커다란 그릇을 마련한 사람에게 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머리와 가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상상해야 실제로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낡은 가죽부대를 버리라

예수님은 가죽부대의 비유를 들어 제자들의 비전을 키워주셨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마 9:17). 좁은 태도로는 폭넓은 삶을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틈만 나면 옛 방식과 생각의 틀에 갇힙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원대한 비전을 품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새 포도주’로 채워주시려고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낡은 가죽부대는 버리십시오. 생각을 바꾸십시오.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서 행하실 크신 일을 기대하십시오.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해 준다. “너희는 아빠보다 멋진 삶을 살게 될거야. 너희는 잠재력이 많거든. 꼭 위대한 일을 이룰 거야.” 아이들에게 교만을 심어주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이들이 큰 비전을 품기를 바란다. 어렸을 때부터 커다란 가능성을 보기 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고 리더가 되고 무슨 일이든 빛을 발하길 소망한다. 아이들이 마음에 큰 비전을 품으면 언젠가 하나님이 현실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 주시리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은 우리 마음 밭에 끊임없이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계십니다. 우리 맘속에서 낡아빠진 생각을 뽑아내고 끊임없이 창조적 생각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단, 이 씨앗은 믿음의 토양 위에서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이 씨앗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소망과 기대의 씨앗으로 우리를 채워주십니다. 이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서 엄청난 열매를 맺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날입니다.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린 사람은 오늘이야말로 건강을 회복할 때입니다. 온갖 나쁜 습관에 중독된 지 오래라면 이제 자유를 얻을 때입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빚에 눌려 지쳐있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지금 해방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성장입니다. 하나님과 협력하기만 하면 바로 지금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이 될 것입니다. 믿는 순간,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였느냐?”(사 43:19)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통해 새로운 일을 행하시기 위해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이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마음에 충분한 그릇을 준비해 놓았느냐? 성장을 믿느냐? 직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줄 믿느냐? 뛰어난 리더와 훌륭한 부모가 되리라 확신하느냐?” 커다란 비전을 품으라는 말씀입니다.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우리의 힘이나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크신 일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놀라운 일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 패배란 없습니다. 하나님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며, 그분이 문을 여시면 아무도 닫을 수 없습니다. 적당한 때에 우리를 적당한 장소로 이끄시며,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크고 넓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큰 꿈을 꾸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제165과 기대 수준을 높이라 -조엘 오스틴,『긍정의 힘』, 제2장

우리 인생은 꿈보다는 ‘기대’를 따라갑니다. 기대한 만큼 이룹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품은 인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인생은 꼬이게 마련입니다. 패배와 실패, 삼류인생을 기대하면 잠재의식은 우리를 그쪽으로 몰아가, 평범한 수준 이상의 어떤 시도도 못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을 확장하려면 기대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삶의 변화는 바로 생각의 변화에서 출발합니다.

성공하는 마음가짐

무엇보다도 성공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 마음가짐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매일 복을 기대하는 태도로 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마음을 올바른 방향에 맞추는 것입니다. 희망찬 말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오늘은 멋진 날이 될 거야. 하나님이 내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테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감싸고 있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고 있어. 오늘 하루가 정말 기대되는군!” 믿음과 기대로 하루를 시작하고, 밖에 나가서도 좋은 일을 기대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상황이 내게 좋은 쪽으로 바뀌기를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은 커다란 소망을 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소망이 없는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 11:1). 소망의 또 다른 이름은 ‘높은 기대’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야 합니다. 기대는 기회의 문을 열고 사회적 성공을 가져다주며 인생의 난관을 뛰어넘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은 기대한 만큼의 복을 주신다

기대하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늘 똑 같은 수준을 기대하는 사람은 영원히 제자리를 맴돕니다. 기대가 삶의 한계를 긋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마 9:29)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기대한 만큼 주겠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만든 절망이라는 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더는 뭘 기대할 수 있겠어?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아. 설치지 말고 조용히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아닙니다! 우리는 감옥을 부수고 나올 수 있습니다! 문은 열려 있습니다. 단지, 좋은 삶을 기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멋진 미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좋은 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라

‘믿음의 눈’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고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미래가 암울해 보여도, 낙심하고 절망하고 싶은 유혹이 들어도, 소망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힘을 얻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도전이 눈앞에 있어도 오늘은 상황이 바뀌리라 믿습니다. 바로 오늘, 하나님이 우리 부부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바로 오늘, 집 나갔던 제 아들이 돌아올 겁니다. 바로 오늘부터 제 사업이 번창할 것입니다. 바로 오늘, 주님이 기적을 보여 주실 줄 확신합니다.” 이렇게 기도한 후에 아름다운 복의 열매를 끝까지 믿고 바라보십시오. 그렇게 하려면 기대하는 습관을 기르고 희망찬 생각을 고수하겠다는 의식적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오늘, 기적을 보여 주시리라 확신하십시오.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겠어?” “결혼? 꿈에서나 가능하겠지. 십 년 동안 데이트 한 번 못해봤어.” “차라리 신용 불량자가 되는 게 낫겠어. 빚과 청구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다른 길이 없잖아.” “나는 행복이란 단어와 거리가 멀어. 난 인생의 고통을 너무 많이 맛보았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런 말은 입에 담지 마십시오. 마음에 기대하는 대로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항상 승리와 풍요로움, 축복과 희망을 생각하십시오. 긍정적이고 순수하고 멋진 생각을 품으십시오.

우리는 마음으로 보는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따라서 마음으로 보지 못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마음으로 어떤 미래를 봅니까? 지금보다 강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까?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한 미래가 보입니까? 마음으로 본 복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신세 한탄만 하고 앉아 있지 마십시오. 정말 내 인생이 나아질까 하는 걱정일랑 저 멀리 던져 버리십시오. 그리고 꿈꿀 수 있는 곳을 찾으십시오. 교회일 수도 있고 강변 혹은 공원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곳 말입니다. 부정적인 환경을 떠나 승리의 분위기가 넘치는 곳으로 가십시오. 절망이 아닌 희망이 있는 곳을 찾으십시오.

꿈꿀 수 있는 곳을 찾으라

지혜로운 자와 사귀면 지혜를 얻는 것처럼, 성공한 사람과 함께하면 오래지 않아 성공을 얻게 됩니다. 성공한 사람의 비전은 전염성이 강해서 우리 마음속으로 금세 파고듭니다. 승리의 분위기에 머물면 오래지 않아 승리의 이미지를 얻습니다. 또 믿음의 사람과 어울리면 오래지 않아 믿음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기대 수준을 높이고 복 받는 자신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놀라운 선물을 준비하고 계시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열정 속에서 매일 아침을 맞으십시오. 혹시 상황이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저앉아서는 안됩니다. 올바른 방향을 마음에 새기고 그 방향으로 끝까지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할 일은 믿음과 기대 속에 살면서 꾸준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의 삶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좋은 선물을 창고에 수북이 쌓아 두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