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말씀> 요한복음 4:19-24


<본문 속으로>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다가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과 나눈 대화 중 일부입니다. 대화의 주제는 예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이 나눈 대화에서 예배에 대한 두 사람의 차이점을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를 어디에서 드려야 하는 가'하는 장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은 참 예배와 관련된 것입니다. 참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과 방법의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21절은 참 예배의 대상이 아버지이심을 말씀하십니다.

  23절은 참 예배의 방법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배우기>


1. 예배의 대상- 하나님께만 예배함


너는 (       )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34:14)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       )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에게 드려지는 예배는 결코 참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상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우상 숭배에는 거짓 신을 숭배하는 것, 자연을 숭배하는 것,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더 심각한 수준의 우상 숭배는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물질주의)입니다. 물질적인 소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우상에 대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고 드리는 예배 역시 참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예배 시작에 앞서 예배자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만 예배하기에 합당한 자들인가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배의 시작 부분에 참회의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입니다.


* 당신은 통회하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더욱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예배의 방법-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함


  하나님을 대상으로 드리는 예배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방법이 아닌 자기 나름대로 드리는 예배는 거짓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편의나 감정에 따라서 예배를 드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드리는 예배만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배의 절차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의 예배를 미워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아무리 절차가 바르다고 할지라도 그 중심의 태도가 바르지 않은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예배는 종교적인 형식만 남아 있는 화석화된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구약은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유일한 예배의 가르침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영어로 in Spirit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들의 관심은 어디에서 예배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디에서나 성령 안에서 예배할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예배는 영적인 현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손상된 우리 영은 중보자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바로 성령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하여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의 정확한 표현은 진리 따라(in Truth)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진리이신 말씀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예배를 통하여 바른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그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 때 가능한 것입니다.


* 우리가 드리는 주일 예배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신령(성령 안에서)과 진정으로(진리에 따라) 바르게 예배하기 위해서 고쳐야할 부분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과 하나님의 책인 성경


<말씀> 디모데후서 3:14-17


당신은 몇 점(0,*로)?


나는 매일 분량을 정해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다. (     )

나는 신,구약 성경 모두를 통독한 적이 있다. (     )

나는 교회에서 개설한 성경공부 과정에 등록한 적이 있다. (     )

나는 외우고 있는 성구가 적어도 30개는 넘는다. (     )

나는 지난 주 목사님의 설교 본문과 내용을 기억한다. (     )


<본문 속으로>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자신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옥중에서 쓴 마지막 서신으로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로 충성을 다할 것을 당부하는 메시지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은 성경의 기원과 목적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1) 성경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은 무엇입니까?(15절)


  2) 성경은 어떻게 기록되었습니까?(16절)


  3) 성경이 기록된 목적은 무엇입니까?(16하, 17절)



<배우기>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은 음식처럼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음식을 먹는 방법과 성경을 읽는 방법 사이에도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1)꾸준히 먹어야 합니다. - 매일 성경 읽기

  우리는 보통 하루에 세 끼를 먹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어도 우리는 하루가 지나지 않아 또 새로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규칙적인 식사는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 역시 꾸준히 지속되어야 하는 습관입니다. 매일 말씀을 읽지 않는 사람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성숙해 가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경건의 시간(QT)을 갖거나, 꾸준히 새벽기도에 참석해서 말씀을 읽는 것은 아주 중요한 신앙의 습관입니다.


  2) 골고루 먹어야 합니다. - 성경통독

  영양 실조란 반드시 못 먹어서 생기는 병만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편식을 하거나 소식을 하게 될 경우에도 성장이나 신진대사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부분부분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 통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나무와 숲을 함께 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3) 꼭꼭 씹어 먹어야 합니다. - 묵상과 암송의 중요성

  아무리 좋은 음식도 제대로 씹지 않고 먹으면 소화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체하는 수도 있습니다. 음식은 꼭꼭 씹어 먹어야 탈이 나지 않고 흡수도 잘 되는 법입니다. 앞에서 통독의 중요성을 말했지만, 무조건 빨리, 많이 읽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요즘 ‘귀납적 성경공부’가 한국교회에도 많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육하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시 그 사람들에게 그러한 말씀을 주셨는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지 않으면 그 말씀은 피상적인 교훈에 그칠 뿐 내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말씀은 암송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됩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기거나 시험에 들더라도 말씀으로 능히 그것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영적 비만을 경계하라. - 실천합시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다이어트 붐이 일고 있습니다. 과 체중이나 비만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높은 영양가의 음식을 먹고 난 후 운동량이 부족하여 다 소모하지 못하고 체내에 축적되기 때문입니다. 일하거나 운동하지 않으면 애써 섭취한 영양분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영적 비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는 열심히 하면서 그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적용하기>


1. 오늘 배운 성경과 관련해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나누어 보십시오.


2. 자신이 암송하고 있는 성구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 성구가 도움을 준 기억에 대해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3. 1년에 성경을 1독 이상 하기 위한 좋은 방법을 서로 이야기해 보십시오.

 

3과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말씀> 마태복음 6:9-13


  성경 말씀이 영의 양식이라면, 기도는 영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우리 몸은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얼마 못 가서 생명을 잃고 맙니다. 우리 뇌는 약8분 동안만 산소의 공급에 지장이 있으면 돌이킬 수 없는 기능장애를 일으켜 운동기능이나 기억력 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도를 영적인 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기도가 우리의 영적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지적해 주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진실한 만남과 친밀한 대화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많은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건강한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깊은 기도 가운데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가 바람직한 기도일까요?


<본문 속으로>


  본문은 우리가 흔히 ‘주의 기도’라고 부르는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보다 바람직한 명칭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일 것입니다. 주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기도에 관해 본을 보여 주신 유일한 본문입니다. 오늘 공부는 어떤 기도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온전한 기도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기에 앞서 본문의 앞부분을 살펴보십시오. 예수님은 잘못된 기도를 지적하고 계십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      )하는 기도를 하지 말고 (      )하게 (       )께 기도하라(마6:5-6)

  (          ) 하지 마라. (        )께서는 이미 기도의 내용을 알고 계신다.(마6:7-8)


<배우기>


  주기도문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1. 기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H.G. 웰즈가 지은 단편소설 “대주교의 죽음”의 줄거리입니다.


평생을 수도원에서 경건 생활로 보낸 대주교가 있었습니다. 그의 경건 생활의 핵심은 규칙적인 기도의 생활이었고, 그는 기도의 사람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 늙게 된 그가 여느 때처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기 위해 예배실로 들어갔습니다. 의례 그랬듯이 대주교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 순간 갑자기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 내가 듣고 있으니 이야기 해 보아라” 그 순간 이 대주교는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기도할 때 살아 계시고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과 감격이 있습니까?


2. 기도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흔히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하는’ 기도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드린 기도의 우선순위는 오직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며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것,... 이렇게 될 때 우리들의 모든 필요가 자연스럽게 채워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를 먼저 드려야 합니다. 주기도문의 마지막 절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는 송영은 이러한 믿음을 담고 있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3. 기도에는 실천의 다짐이 들어 있습니다.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그 기도의 내용대로 실천하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실현하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본문에는 우리가 서로 죄를 용서해 주겠다는 실천의 다짐이 들어 있습니다.


<적용하기>


1. 주기도문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목장이 함께 드릴 공동의 기도문을 만들어 보십시오.


2. 자신의 개인적인 기도생활이나 기도와 관련된 간증, 기도의 제목 등을 이야기해 보십시오(나눔시간을 이용하셔도 좋을 듯).

 

4과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한 찬양


<말씀> 시편 150:1-6


  이번 주 찬양시간에는 사연이 있는 찬양으로 진행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찬양은 무엇입니까? 왜 좋아하게 되었습니까? 


<본문 속으로>


  본문은 시편 가운데 마지막 시편으로 시편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할렐루야’라는 말의 어원은 ‘찬송’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모든 생명체의 도리요 책임임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1절: 찬송이 이루어지는 곳- 성소에서 출발해서 하나님의 권능이 미치는

       모든 곳에

  2절: 찬송의 대상과 이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하신 일

  3-5절: 찬송의 방법- 사용 가능한 모든 악기와 방법들을 동원해서

  6절: 찬송의 의무-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


<배우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모일 때마다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때때로 찬송은 ‘준비찬송’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늦게 오는 사람을 기다리거나, 여러 가지 정돈에 필요한 시간으로 떼 우기 위해 보내곤 합니다. 이럴 때 찬송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머리 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입술로만 찬송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바른 것이 아닙니다. 찬송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꼭 알아두어야 합니다.


1. 찬송은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함으로 해야 합니다.


  찬송이 대중가요나 일반 음악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음악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좋게 하기 위해서 혹은 음악을 듣는 사람을 좋게 하기 위해서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의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습관으로, 혹은 단순한 열정만으로 찬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제 이렇게 찬양하게 됩니까? 또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2.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 주신 모든 일입니다.


  출애굽하면서 홍해를 건넜던 미리암도, 하나님의 궤를 되찾아올 때의 다윗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모든 기적 같은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진정한 찬양을 부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찬송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최근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경우가 언제입니까? 당신은 이를 통해 합당한 찬양의 열매를 하나님께 돌렸습니까? 


3. 찬송은 언제, 어디서나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해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주 이름 찬양 받으리(*2)

  할렐루야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주 이름 찬양해

  이제부터 영원까지 주 이름 찬양할지로다


  찬송은 시간적인 제한이 없이 영원까지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찬송은 공간적인 제한 없이 모든 곳에서 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기분과 상황에 따라 찬송을 원망으로 바꿀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믿음은 고난 가운데서도 찬송할 수 있게 합니다.

  사도행전 16:23-26을 읽어 보십시오. 바울은 매맞고 옥에 갇힌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당신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당신이 힘겨울 때 주로 부르는 찬송은 무엇입니까?


<적용하기>


  일주일 내내 폐수가 흐르던 관을 깨끗한 물로 한 번 씻어냈다고 해서 수도관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 내내 세속적인 생각만 하던 마음, 저속한 말만 나오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 드릴만한 깨끗한 찬양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신의 말과 행동이 찬양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과 말씀 묵상과 적용의 생활화


<말씀> 시편 1:1-6


<본문 속으로>


  ‘복’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단어입니다. 본문에서는 어떤 것이 복있는 자의 특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2절)


  우리 민족은 복이란 말을 아주 좋아하고 즐겨 씁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대부분 돈을 번다든지, 직장에서 승진한다든지, 유명해진다든지, 오래 산다든지 등의 실리적인 측면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본문은 복있는 자의 근본적인 특징에 대해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복되어라 ---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공동번역)


  오늘은 말씀 묵상을 중심으로 한 QT에 대해 배우도록 합니다.


<배우기>


  현대인들의 생활은 무척 바쁘고 복잡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분주하게 살며, 늘 ‘바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갑니다. 이런 일과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             ) 눅5:15-16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             ) 막1:35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 뜻을 따라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만남’입니다. 예수님은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생활의 우선 순위로 두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QT는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시작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다음의 성구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QT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합니까? 신문을 읽는 것과 연애편지를 읽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신문은 글자만 읽으면 되지만, 연애편지는 글자와 글자 사이의 여백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그렇죠?).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1) 기도: 말씀은 사람의 글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을 때에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2) 관찰(읽기): 본문을 반복해서 읽습니다. 어떤 내용의 말씀인지, 육하원칙(언제, 어디서,---)에 따라, 혹은 단락을 나누어 자세히 읽고 또 읽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매일성경의 해설을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3) 묵상: 본문 말씀을 이해하고 나면,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생각합니다. 특별히 다가오는 말씀, 찾아오는 마음의 부담감, 가슴을 찌르는 죄의 지적,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묵상합니다.

4) 적용: 묵상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에 적용합니다. 적용은 개인적이고, 구체적이고,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적용의 3요소). 가령 ‘형제를 사랑해야겠다’는 일반적인 적용보다, ‘어려움에 처한 **형제에게 위로의 전화를 해야겠다’는 식의 적용이 훨씬 좋습니다.

5) 나눔: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한 것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은 QT 습관을 들이는데도, 말씀의 은혜를 풍성케 하는 데에도 매우 유익합니다.

6) 기도: 깨달은 말씀을 삶 속에서 기억하고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승리하는 하루가 되도록, 위해서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1. QT를 잘하고 있는 목원이 있다면 그 유익에 대해 이야기 해 주십시오.


2. 복있는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QT)를 갖기를 결심했다면, 하루 중 내게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시간과 장소는 어디입니까?

*다음주 공부: 제6과 성도의 교제, 행2:42-47

6과 성도의 교제


<말씀> 사도행전 2:42-47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늦게까지 잠을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벽 2시입니다. 이 새벽에 누군가에게 전화하여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습니까? 자다가 일어나서도 귀찮아하지 않고, 끝까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와 같이 눈물 흘려줄 사람이 있습니까? 


  ‘교제’란 사전적으로 ‘(어떤 사람이 누구와) 계속 만나면서 서로 사귀는 것’ 입니다. 교회를 흔히 사랑의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한 형제요, 자매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주일 예배를 포함한 수요기도회, 목장모임, 등을 통해서 교인들은 자주 만나고 함께 생활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한 교회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을 노출하고 알려지는 것도 힘들고 꺼려할 때가 많습니다. 또 서로에 대한 오해와 갈등으로 많이 힘들어 할 때도 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인 성격 속에서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 속으로>


  본문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생활상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제하는 모습은 어떠했습니까?(44-46절)


  1)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물건을 서로 (      )하고


  2)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          )


  3) 날마다 (       )을 같이하여 성전에 (         )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       )


  또, 그 교제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47절)




  그들은 문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생활을 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재산을 나눠 쓸 만큼 ‘내 것’의 의미보다는 ‘우리의 것’이라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성전에 모여서 함께 기도했고, 집에서는 떡을 떼며 식탁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47절은 그들의 생활 태도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그 결과 교회가 확장되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나눔이 선교적인 영향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배우기>


  오늘 본문은 옛날에 있었던 성경 속 이야기로 끝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교회에서, 우리의 목장에서 계속해서 나타나야 할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가정교회가 꿈꾸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으로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 진정한 교제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다른 사람이 자기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 서로의 은사와 사명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동일한 성령이 우리에게 각기 다른 은사들을 주신다고 합니다(고

  전 12:4-11). 그 은사는 각기 다른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2) 서로의 기질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성장 배경이 있고, 각기 다른 성격이 있습니다. 이

  것은 일차적으로 장, 단점의 문제가 아니라 개성의 문제입니다.


  3) 서로의 믿음의 분량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교회에 나온 시기가 다르고, 신앙의 성숙도가 다릅니다. 믿음

  이 성숙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

  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롬14:1).


  나는 이런 부분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서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까?


<적용하기>


1. 우리 목장이 오늘 배운 교회 같기 위해서 나와 우리 목원들이 함께 노력하고 기도해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다음주 공부: 제7과 성경적인 재물관과 헌금, 창14:14-24

7과 성경적인 재물관과 헌금


<말씀> 창세기 14:14-24


  현대 사회에서 돈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돈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할 수도 있고, 또 돈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돈과 재물에 대하여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 여러 곳에서 우리의 신앙과 돈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연관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고 말씀하셨습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그의 책 ‘돈, 섹스, 권력에서 돈이 가지고 있는 신성, 즉 우상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에 따르면 돈이 삶의 가장 높은 가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부와 돈의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돈을 지배할 것이냐, 아니면 돈에 의해 지배를 당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본문 속으로>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로 알고 있는 ‘십일조’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는 소돔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에서 소돔이 패하고 조카 롯과 소돔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신이 훈련시켜오던 318명을 데리고 싸워서 그들을 구해 옵니다. 이때 살렘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 이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음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자신의 전리품 가운데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줍니다.

  이어 소돔왕은 자신을 구해 준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재산을 주려 하지만 아브라함은 부자가 된 것이 소돔왕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하며 거절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헌금과 재물에 대한 원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1.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일에 대한 찬양과 감사를 표현하

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감사의 마음을 십일조로 표현하였습니다. 헌금은 자신의 것이 자신에게서 온 것(자기의 재능, 노력, 열심, 행운)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헌금은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2. 헌금하는 것에는 자신이 재물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선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돈에 눈멀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카 롯에게 더 좋은 땅을 양보했을 뿐 아니라, 소돔왕이 주는 재물을 단호히 거절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십분의 일이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내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십분의 십이 하나님의 것이고, 내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헌금(십일조)에는 재물이 내 것이 아니기에 나는 재물에 얽매이지 않는 신앙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배우기>


  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바뀌어야 합니다.

  1) 우리는 돈 앞에서 약한 존재입니다(딤전6:10).

  2) 우리가 경제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

     님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마6:31-32).

  3) 성경은 돈의 사용이 중요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생각해야 합니다(눅12:21).

  4) 재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마6:20).


  그렇다면 우리의 헌금하는 태도는 어떻게 변해야 합니까?

  1)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헌금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2) 마음에 정한대로 기쁘게 드려야 합니다(고후9:7).

  3)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는 안됩니다(마6:1).

  4) 최선을 다해서 드려야 합니다(딤전6:17-19).

  5) 헌금의 많고 적음은, 헌금을 드리고 내게 남아 있는 양으로 결정됩니       다(막12:44).


<적용하기>


1. 당신은 신앙 생활하면서 헌금 때문에 시험에 든 적이 있습니까?

2. 오늘 공부를 통해 재물과 헌금에 대한 당신의 생각 중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떤 점입니까?

 *다음주 공부: 제8과 발을 씻기는 섬김, 요13:3-15

8과 발을 씻기는 섬김


<말씀> 요한복음 13:3-15


  어떤 교회든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교회당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에서부터, 교회 밖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까지 ---. 대부분의 경우 이런 일들은 성도들의 봉사로 이루어집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모든 성도들은 교회와 사회에 대해 자원봉사자인 셈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섬김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섬김이 없으면 교회의 유지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교회의 섬김이 없다면 교회는 세상에 대한 선교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이렇듯 섬김은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섬겨야 하고,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 


<본문 속으로>


  본문은 우리가 사랑과 섬김을 이야기할 때마다 가장 많이 인용하는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잡히실 것과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원래 종이 주인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기의 발을 씻기려는 예수님을 만류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나와 네가 상관이 없다고 하십니다. 섬김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열정과 인류애의 마음으로 하는 것은 진정한 기독교의 섬김이 아닙니다. 우리의 섬김은 예수님의 섬김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분에게 발 씻김의 빚을 진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게 되는 전날 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과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14-15절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고, 우리가 배워야 하는 사랑입니다.


<배우기>


1. 왜 섬겨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서로 섬기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 섬김을 자신의 죽음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2. 누구를 섬겨야 합니까?

  일반적인 기준에서 섬김은 어떤 기준에서든 아래에 있는 사람이 윗사람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사람을 도와줄 때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섬기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10)


3.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일단 모든 사랑의 원칙은 진실한 실천에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섬김이 인간적이 인간적인 의를 앞세우고, 어떤 대가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과 그 도움이 실질적인 것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필요를 꼼꼼하게 살펴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5-17)

  섬김은 물질적인 도움만이 아닙니다.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은사를 통해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섬김에 있어서 핑계치 못할 이유입니다.


  다음은 다일공동체가 지향하는 섬김의 5대 원칙입니다. 1) 섬김은 대가와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2) 섬김은 섬김의 대상을 임의로 선정하지 않는다. 3) 섬김은 기분과 변덕에 좌우되지 않는다. 4) 섬김은 말없이 공동체를 세워나간다. 5) 섬김은 결과에 관심을 갖지 않느다.


<적용하기>


1. 당신이 최근에 받은 인상깊은 섬김이 있었다면 이야기 해 보십시오.

2. 목원들끼리 칭찬 릴레이를 해 보십시오.

3. 나의 섬김이 필요한 곳은 없는지 생각 보십시오(예: 예배시간 주차봉사, 아기 엄마들을 위한 유아부 봉사, 목장별 청소나 설거지, 토요교실 등).

 *다음주 공부: 제9과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전도, 눅15:1-10

9과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전도


<말씀> 누가복음 15:1-10


  거의 모든 성도들에게 전도라는 말은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전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전도를 하려고 하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전도해야 하고, 어떻게 전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속으로>


  오늘 본문은 우리가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부르는 이야기의 서두입니다. 본문을 꼼꼼히 읽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왜 전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이 놓여 있는 자리, 누가복음 15장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 잃어버린 것들이 또 등장합니다. 무엇입니까?

(                   ), (                   ), (                    )

2. 지금 이야기들의 동기가 된 사건은 무엇입니까?(1,2절)


3.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했던 이 비유들의 결론은 무엇입니까?(7,10절)


  당시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격이 분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의 바리새인, 서기관들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공유될 필요가 없는 특권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세 가지 연속된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잃어버린 것이 있고, 그것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며, 그것을 찾고 난 후에는 기쁨의 잔치가 벌어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일깨워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배우기>


1. 전도의 이유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전도에 없어서는 안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하늘나라 가면 못합니다.” 전도가 귀한 사명임을 알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일은 끝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전도의 사명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전도는 이 땅에서만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2. 전도의 방법

  생활전도 또는 관계전도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효과적인 전도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보다도 가까운 친인척들이나 친구, 이웃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공원이나 거리, 단골 미장원 등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복음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여 영접하게 하는 은사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은사는 있지만 결정적으로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추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전도는 자신의 은사에 따라 생활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보다 큰 시각에서의 전도는 역할 분담이 필요한 일입니다.

  가정교회에서의 전도는 이런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목원들은 전도 대상자를 목장모임에 인도합니다. 목자와 다른 목원은 새로운 사람을 생명의 삶 공부에 참여시킵니다. 목사는 생명의 삶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끔 합니다.


<적용하기>


1. 당신의 경우 전도가 잘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목장에서 함께 기도해야 할 전도 대상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십시오.

 

 *다음주 공부: 제10과 세계를 품는 그리스도인, 마28:16-20

10과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말씀> 마태복음 28:16-20


  한국 개신교회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세계 각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또 여름과 겨울 방학이 되면 많은 교회의 젊은이들이 가슴 속에 선교의 비젼을 품고 단시 선교를 다녀옵니다. 오늘은 해외 선교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합니다. 


<본문 속으로>


  본문은 마태복음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짤막한 말씀이지만 이 명령은 흔히 ‘대 위임’이라고 불립니다. 이 말씀에는 이후 제자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지, 분명한 목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제자를 삼아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를 삼아야 할 사람들의 누구입니까?(19절)


2. 이 일을 행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20절)


  어떤 의미에서 이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유언이고, 그러기에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을 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제자라면 누구나 전도자, 선교사라 할 수 있습니다.


<배우기>


1. 과연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하는가?

  구약을 읽으면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사랑하시는 것 같고, 그들을 위해서만 모든 일을 처리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온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토록 사랑하시고 아끼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모든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에 분명한 목적을 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해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우리 주위의 사람들(전도)에게 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사람들(선교)에게 대한 주님의 도전입니다.


2. 보내는 선교사

  모든 사람이 해외에 선교사로 파송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선교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가는 선교사’가 아니면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젊은 청년이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자원하여 그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정밀신체 검사를 받았을 때 그의 아내가 아프리카의 기후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낙담했지만 곧 이러한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버는 돈을 하나님의 나라가 세계에 전파되는데 사용하겠다.’ 그의 아버지는 성찬에 사용할  포도를 경작해서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후에 그 젊은이는 그 사업을 떠맡아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이름이 웰치였고, 후에 이 기업은 세계적인 포도 주스 생산업체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수십만 달러의 돈을 선교 사업에 쓸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직접 선교사로 가려던 꿈은 좌절되었지만 다른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사업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적용하기>


1. 우리 목장에서 지원하고 기도하게 될 선교사님으로 어떤 분이 좋을 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또 우리 목장이 보내는 선교사의 역할을 어떻게 잘 감당할 수 있을 까요?

  

 *다음주 공부: 제11과 세례와 성만찬, 마3:13-17, 고전11:23-27

11과 세례와 성만찬


<말씀> 마태복음 3:13-17 / 고린도전서 11:23-27


  교회에는 ‘성례전’, 즉 문자 그대로 성스러운 예식이라고 규정되는 두 가지 예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세례와 성만찬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세례를 받게 되며, 그때부터 교회에서 열리는 성만찬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 이 예식들이 당연한 통과의례나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의식처럼 되어, 참여하면서도 이 예식의 의미를 깊이 있게 느끼지 못하는 성도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성례전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속으로>


  본문은 성경 가운데서 세례와 성만찬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1.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때와 성만찬 의식을 행하신 때는 각각 언제입니까?


2. 마태복음 3장2절, 6절을 읽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세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예수께서 성만찬 의식을 행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이렇게 세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예표로 삼는 의식입니다. 그러나 성만찬은 이와 반대로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의 마지막 단계에서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을 기념하게 하기 위해 제정하신 예식입니다. 우리는 이 예식을 행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기억하며 제자로서 자신의 삶을 결단해야 합니다.


<배우기>


1. 세례의 의미

  죄를 씻음- 가장 기본적으로 세례는 물로서 몸을 씻듯 지난 죄를 씻어버리는 회개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나아가 세례는 자신의 지난 날의 잘못된 삶을 깨끗이 마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죽음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남- 이제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예하여 세례받은 사람은 이와 동시에 그의 부활에 참예하여 그와 더불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말씀 안에서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화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삶을 그리스도로 ‘옷 입는’ 삶이라 말합니다.


2. 성만찬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의식- 성만찬에 임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해야 합니다. 혀로 떡의 감촉과 포도주의 맛을 직접 느끼면서 우리는 그 십자가 사건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을 기억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의미하는 의식-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으면서 우리는 예수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심을 경험하고 결단합니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된 지체임을 의미하는 의식-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은 ‘식구’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 다른 은사,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성만찬이라는 상 아래 모일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된 한 식구, 한 가족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세례와 성만찬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적용하기>


1. 세례와 성만찬에 대해 오늘 배운 사실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을 한 가지만 말씀해 보십시오. 


 

 *다음주 공부: 제12과 건강한 주일성수, 출20:10/막3:1-5

12과 건강한 주일성수


<말씀> 출애굽기 20:10 / 마가복음 3:1-5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사이의 가장 큰 차이를 말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주일에 교회를 가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수준이 향상되어 여가 활용에 대한 관심의 비중이 높아지고, 여러 가지 교리에 대한 생각들이 다원화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주일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일이 어떤 날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주일성수’일까요? 단지 주일에 교회 다녀오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일까요?


<본문 속으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율법 가운데 안식일 규례를 선포하시는 구약의 말씀과 예수께서 바로 그 안식일에 바리새인들과 올바른 안식일 이해에 대해 논쟁하시는 신약의 장면을 함께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출애굽기 20:10을 근거로 할 때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명하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안식일에 생계를 위한 어떤 일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실제 생활에 있어 주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야 할 필요도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법의 선포는 반드시 구체적인 적용을 전제로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할 수 없는 일의 목록들이 점차 율법의 규례에 포함되고, 율법은 점차 복잡해졌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문제로 수차례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과 충돌합니다. 본문은 그 가운데 한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2. 예수께서 안식일 정신의 본질을 설명하십니다. 요약하면 안식일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배우기>


  그렇다면 우리는 주일을 어떻게 규정하며, 어떤 실천을 해야 합니까? 성경의 규정을 근거로 살펴보겠습니다.


1. 주일은 문자 그대로 ‘주의 날’입니다.

  성경은 안식일의 제정자, 안식일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출 20:10),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마 12:8)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일이라는 개념 역시 인간들이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셔서 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이기 때문에 다른 날과는 분명히 다른 성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함’입니다.


2. 주일은 ‘안식’의 날, 즉 ‘쉬는 날’입니다.

  신명기 5:14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이 명령의 수혜자는 누구입니까? 쉬는 날이 없이 일해야 했던 종들과 육축들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던 목적과도 같이 안식일 역시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3. 주일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금기를 깨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바리새인들이 주장했던 것과 같이 단순히 ‘하지 않는 일’의 수를 늘리는데 있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만드신 날입니다.

  주일에 우리는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에 묶여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주일을 올바르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적용하기>


1. 배운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일성수를 반성해 보십시오.

 

 *다음주 공부: 제13과 믿음있는 사람 - 아브라함, 히11:8-10

13과 그리스도인의 가정


<말씀> 시편 128:1-6


  가정이 귀찮거나 싫어진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속으로>


  본문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다정하고 행복한 가정 생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말하는 축복의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가정은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아내와 어린 감람나무와 같은 자식을 복으로 받은 가정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포도나무는 수분과 자양분을 공급하는 귀한 나무입니다. 또, 어린 감람나무로 비유되는 자식은 장성함 감람나무에서 새로 뻗어 나오는 활기찬 가지처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성장합니다. 자녀들은 미래를 약속하는 가능성있는 희망입니다.


<배우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꾸미고 그를 통해 주어지는 자녀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에서 이루는 행복한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1.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가정입니다.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가정입니다. 왜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가정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나의 철학, 나의 목표, 나의 방식이 아닌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그 분의 다스리심에 가정을 온전히 맡겨 드려야 합니다.


  2. 사랑이 넘치는 가정입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전9:9)

  오늘날 많은 문제가 사랑없는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의 통계를 보면 미국 사람의 3분의 2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전 인구의 10분의 1이 정신병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 뿐 아니라, 18세부터 24세에 이르는 청년들의 사망원인 중의 세 번째가 자살입니다. 이 모든 질병과 문제의 원인은 바로 사랑의 결핍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발작적인 증세가 우울증이요,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심리적인 불안의 결과가 바로 자살입니다.


  3. 화목한 가정입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21:9)

  화목을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마귀의 역사입니다. 부부간의 화목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은 항상 ---” 화목을 깨뜨리는 이런 말을 줄여야 합니다.


  4.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신 목적은 서로 힘을 합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항상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짝을 이루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표현은 찾아보기가 극히 드문 경우입니다. 남편된 아굴라와 아내된 브리스길라, 이 두 사람 모두 열심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였고 여러 사람에게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의 이름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부의 신앙생황이 교회와 자손들에게 오래오래 전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습니까?


<적용하기>


1. 당신의 가정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가정입니까?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다음주 공부: 제14과 그리스도인의 결혼, 창2:18-25

14과 그리스도인의 결혼


<말씀> 창세기 2:18-25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혹은 이런 사람과 결혼해야한다고) 생각한(생각하는) 결정적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외국 속담에 “거친 바다로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라.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 그러나 결혼식에 나갈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곧 결혼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결혼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결혼에 대한 바른 교육이 결핍된 시대인지라 이혼율이 날로 증가하고, 행복해지기가 더욱 힘이 듭니다. 이처럼 결혼에 대한 이해를 바로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결혼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본문 속으로>


1. 결혼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본문은, 아담이 돕는 베필을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2. 아담이 여자를 본 후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배우기>


  자연과학자들은 결혼을 단순히 생물학적 의미로 해석하여 사람도 생물의 하나로서 성적 만족과 종족번식에만 그 의의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회학자들은 경제와 인구 문제로만 취급하여, 사회와 민족의 보존과 산아제한만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또한 결혼이 부귀나 지위를 얻는데 필요한 수단이거나, 성의 만족만을 위한 것이라 여기는 것은 결혼의 의미와 목적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결혼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1. 결혼은 온전한 인격 형성입니다.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라 하셨으니, 둘이 한 몸이 될 때 온전한 인격 형성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신부가 결혼식장에 입장할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오다가 신랑이 그 손을 이어받는 것은 이제까지는 부모와 함께 살다가 이제부터는 신랑을 의지하고 함께 살아가라는 의미이고, 나갈 때 팔짱을 끼고 나가는 것은 잃었던 갈비뼈를 오늘에야 되찾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2.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위임받은 예식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클라이막스는 인간 창조라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놀라운 창조사역을 하나님께서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위임하셨습니다. 따라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있어서 동역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성스러운 사건입니다.


  3. 결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여러 조건을 가지고 배우자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결혼하는 목적은 주님을 위해 더 효과적으로 살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명령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 또 교회 안에서 더 효과적으로 주님과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혼자보다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합력할 때 더 큰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적용하기>


<행복한 부부 십계명!>을 같이 읽고,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 반성...)

1.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

2. 두 사람이 동시에 화를 내지 말자.

3. 집에 불이 났을 때 외에는 고함을 지르지 말자.

4. 눈이 있어도 흉을 보지 말고, 입이 있어도 상대의 실수를 말하지 말자.

5.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6. 아픈 곳을 긁지 말자.

7. 화를 간직한 채 잠자리에 들지 말자.

8. 처음 사랑을 잃지 말자.

9. 결코 단념하지 말자.

10. 서로 숨기지 말자.

 

 *다음주 공부: 제15과 그리스도인의 건강, 전9:7-12

15과 그리스도인의 건강


<말씀> 전도서 9:7-12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해야 합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고 명예를 잃으면 많은 것을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여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때, 우리는 더 힘있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 속으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안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생활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건강한 생활은 어떤 생활입니까?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 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전도서 9:7-8)


  성경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풍성하게 식사하는 것으로 종종 묘사됩니다(창 14:18, 신 33:28, 삼상 16:20). 또한 고대 근동 지방에서 흰 옷을 입는 것과 향기름을 바르는 것은 축제적인 기쁨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생활은 하나님 안에서의 건강한 생활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건강 생활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봅시다.


<배우기>


  전인적인 건강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전한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흔히 건강이라고 하면 육체적으로 단지 병 증세나 결함이 없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정말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건강하다고 하는 것은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건전한 상태에 있는 것을 포함합니다. 매일 정신적으로 활기 있는 생활을 하며, 사회적으로 불편 없이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자세, 그리고 더 나아가 삶에 대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희망과 보람으로 가득 찬 균형 잡힌 삶이야말로 정말 건강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건강하다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정상적이라는 것 외에 또 한 가지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 영혼과 관련된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건강해야 진정 전인적으로 건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고장나면 본래의 제작회사에 맡기는 것이 가장 확실한 수리 방법이듯이 사람이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찾아야 가장 확실한 건강과 행복의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적인 건강을 통해 전인적으로 건강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요한은 영혼이 건강함으로 전인적으로 강건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영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과 교제를 통해 영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적용하기>


1. 당신은 전인적(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건강하십니까? 가장 문제가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며, 건강하게 살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다음주 공부: 제16과 그리스도인의 경제, 딤전6:7-12

16과 그리스도인의 경제


<말씀> 디모데전서 6:7-12


<본문 속으로>


1. 성도는 어떤 상태에서 족한 줄 알아야 합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9절과 10절에서 각각 찾아  보십시오.


  돈이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에 탐욕을 품게 될 때에 악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악입니다. 이렇게 돈을 사랑할 때 돈은 삶의 건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오늘 그리스도인 가운데 실패하는 대부분의 경우가 이것입니다. 돈이 목적이 되어서 신앙생활을 수단으로 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1,12절을 함께 읽어보십시오.


<배우기>


  물질을 목적으로 살았던 사람의 어리석음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16-21입니다.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우리는 우리를 항상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영혼을 인도해 주실 뿐 아니라 이생에서의 우리의 삶도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경제관은 세상의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1. 성실함으로 돈 벌어야 합니다. 

  성경은 개미에게 부지런함과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는 지혜를 배우라고 합니다. 망령되이 얻은 물질은 줄어가게 되고 부지런한 손으로 얻은 물질은 늘어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땀을 흘려 번 돈으로 보람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2. 번 돈은 떳떳한 돈이어야 합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구하는 것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돈을 버는 과정에서 우리는 말씀과 양심에 꺼리는 부분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보이는 손해를 믿음으로 감당하십시오. 주께서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채워 주실 것입니다.


  3. 돈은 잘 쓰려고 번 것입니다.

  돈 벌어 땅에 쌓으려 하지 말고, 그 돈을 하늘 은행에 쌓으십시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쓰십시오. 우리 주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에게 하는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헌금은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헌금은 인색함이나 억지로 드려서는 안되면 감사함으로 즐겨 드려야 합니다.


  어느 순간에라도 우리가 욥의 고백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적용하기>


1. 물질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사용한 경험이 있다면 언제였습니까? 서로의 경험을 나눠 보십시오.

 

 *다음주 공부: 제17과 그리스도인의 문화, 롬11:36

17과 그리스도인의 문화


<말씀> 로마서 11:36


당신이 현재 하고 있는 문화 생활이 있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본문 속으로>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서 9-11장을 끝맺으면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오묘함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은 모든 인간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며 단지 믿는 사람들은 그것의 깊이와 부유함을 알고 경탄하며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그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시작이 이뤄지며 영광이 영원하리라는 신앙 고백의 찬송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만물은 누구에게서 나왔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배우기>


1. 문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 


  그리스도인은 문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신앙이 좋은 사람은 세상적인(문화를 포함) 모든 것을 절제하고, 경건한 것(말씀과 기도, 교회 봉사 등)에만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신앙인들도 문화 생활을 누리고 즐겨야만 합니다. 음악회장에도 가야 하고, 연극도 보아야 합니다. 영화를 보거나 축구나 야구를 관람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주위에 있는 문화의 모든 것을 다 누려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인 영화나 신앙의 성장을 방해하는 비신앙적인 음악 등은 우리가 가까이 해서는 안될 요소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잘 구분하여 절제하는 지혜가 신앙인들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2. 문화의 창조자이며 주인이신 하나님


  마치 문화를 우리가 창조한 것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문화를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문화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이 모든 것의 주인은 인간이 아닙니다. 만물은 주에게서 나오고 주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잠시동안 보존하고 발전시키도록 위임받은 청지기인 셈입니다. 때문에 청지기 사명을 잘 지키며 선용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문화를 선용하는 그리스도인


  오늘 우리 시대의 문화는 죄악으로 많이 병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들로부터 떠날 수도, 떠나서도 안됩니다. 문화는 사단의 영역으로 사단에게 돌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화를 누리시되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것을 누려야 합니다. 문화 생활을 통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나의 기쁨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이 땅에 세속 나라의 문화와 하나님 나라의 문화, 두 문화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속의 문화로부터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문화 확장을 통해 세상을 정복해 가는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적용하기>


1. 당신의 문화 생활 가운데 버려야 할 것과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십시오. 

 

 *다음주 공부: 제18과 그리스도인의 여가, 출31:12-17

18과 그리스도인의 대인관계


<말씀> 마태복음 5:21-26


<본문 속으로>


  우리는 대인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우리는 이웃과 불편한 관계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이웃과 부딪히게 되고 원치 않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은 어떤 것입니까? 잘잘못을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행동은 정당화하고 상대방의 잘못은 부풀리며, 분노를 키우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웃과 이런 원치 않는 갈등과 긴장 관계에 있을 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최대 의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화해라고 하십니다. 만약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를 품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한일서4:20)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해 보아야, 형제를 미워하며 하는 예배와 고백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기도할 때에 기도의 걸림이 되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미움과 분노, 시기의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배우기>


예수님의 이웃관계


  예수님은 3년간의 공생애 기간 동안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셨고, 각각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열두 제자들과 함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시면서 때로 예수님은 제자들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여 고쳐 주셨고, 장점은 격려를 통해 북돋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차별없이 사랑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삭개오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세리장으로 돈은 많으나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천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그가 간절히 예수님을 보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이를 본 사람들은 수군거립니다. 당시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비난하며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와 함께 하시며 그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세리, 창기들과도 함께 하시며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사랑하기 어려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자기를 향해 욕하고 침을 뱉는 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예수님을 본받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적용하기>


1. 관계를 회복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말씀해 보십시오. 이를 위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2. 나의 대인관계에 있어서 원칙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의 대인관계와 비교해서 고칠 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음주 공부: 제18과 그리스도인의 여가, 출31:12-17

19과 그리스도인의 언어


<말씀> 야고보서 3:2-12


<본문 속으로>


  글은 고쳐 쓸 수 있어도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습니다. 말로 인해 생기는 일들은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한 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마디 말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을 만큼 유익을 주기도 하지만 파괴로 이끌기도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언어 사용에 대해서 함께 알아 봅시다.


  본문에서 야고보가 묘사한 내용을 살펴봅시다.


1. 야고보는 어떤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보고 있습니까?


2. 야고보 기자는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생생한 그림언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혀를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혀의 중요성, 파괴성, 통제의 어려움)? 



<배우기>


1. 성숙한 언어 생활


  만일 우리가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다면 감옥 신세를 지게 될 것이고, 그래야만 마땅합니다. 법에도 살인을 막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로 저지르는 살인은 법적인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검과 같은 혀에서 나온 말로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언어 공격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공격은 가정, 직장, 교회,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신경을 써서 유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말은 악의로 가득 차고, 우리의 혀는 칼처럼 날카로우며, 우리의 목소리는 파괴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말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까? 또 얼마나 많은 부부가 대화의 단절됨으로 결혼의 종지부를 찍습니까? 직장에서는 동료간에 서로 인정해 주지 않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파트너십이 붕괴되고 있습니까? 서로에게 덕이 되고 힘과 용기를 주는 말은 사람을 유쾌하게 하고 행복감에 젖게 할 수 있습니다. 말을 건설적으로 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의 생활은 더욱 건강해질 것입니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그 사람의 사상과 인격을 나타냅니다. 누에가 자기 입에서 내뱉은 것으로 집을 짓고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것처럼 사람은 그가 말하는 대로 환경이 조성되어 복된 삶을 살기도 하고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된 삶을 만드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2. 해서는 안될 말들


(1) ‘잘 해봐라’하는 비꼬는 말

(2) ‘난 모르겠다’는 책임 없는 말

(3) ‘그건 해도 안 된다’는 소극적인 말

(4) ‘네가 뭘 아느냐’는 무시하는 말

(5) ‘바빠서 못한다’는 핑계의 말

(6) ‘잘 되어가고 있는데 뭐 하려고 바꾸느냐’는 안일한 말

(7) ‘이 정도면 괜찮다’는 타협의 말

(8) ‘다음에 하자’고 미루는 말

(9) ‘해보나마나 똑같다’라고 하는 포기의 말


<적용하기>


1. 최근에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경우나, 혹은 상처를 받은 경우가 있다면 어떤 경우였는지 이야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지금까지 당신의 언어 사용은 어떠했습니까? 고쳐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다음주 공부: 제20과 그리스도인의 직장, 창45:5-8

20과 그리스도인의 직장


<말씀> 창세기 45:5-8


<본문 속으로>


  요셉은 17세 때에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는 13년 동안 두 곳에서 직장 생활(종살이)을 하게 됩니다. 한번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로서, 또 한번은 감옥에서 전옥의 대행으로 일을 합니다(창 37-39장).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왕의 꿈을 지혜롭게 해석함으로써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연단을 받습니다. 종살이 중에도, 감옥살이 중에도,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의 훌륭한 점은 자신의 환경과 직장 생활을 핑계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일을 통해 자신을 연마하며, 이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애굽으로 팔아 넘긴 형들과 대면하여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곳에 보내신 이유를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배우기>


1. 직장에 대해 바르지 못한 생각


  직장은 필요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어떤 분들은 직장에 다니는 것이나 사업을 하는 것을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무엇을 하든지 그저 돈을 많이 벌어서 헌금 많이 하는 것이 돈을 버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와 신앙 생활에 열심인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 같은 생각 때문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 가서도 원망하지 않고 맡겨진 일에 충실했던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팔아 넘긴 형들을 탓하지 않고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보았던 비젼의 사람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직장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깊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과 상관없는 자들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과 관계함으로 세상을 바꾸고 고침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 가운데 나타나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요셉에게서 배우는 것은 그가 세상나라의 총리가 되었다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우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신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았던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목공소를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생겨 안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곳은 아주 작은 침대를 제작하는 곳이었는데 뒤쪽에는 아직 껍질이 붙은 채로 다듬어지지 않은 목재가 쌓여 있었고, 그런 나무를 다듬어 목수는 아름답고 멋진 침대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침대는 각기 튼튼하고 멋진 예술 작품으로 변했습니다. 목수를 만나게 된 그 사람은 그의 작업을 칭찬하며 물었습니다.

  “여기 일하는 사람은 모두 몇 명입니까?”

  “둘이요.”라고 목수가 대답했습니다. 대답을 듣고서 그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목수 외에 다른 사람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목수는 웃으면서 손끝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여기서 일하지요. 하나님은 나무를 만드시고, 나는 침대를 만듭니다.”


<적용하기>


1. 당신이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입니까?


2. 당신이 하는 일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음주 공부: 제21과 그리스도인의 구제, 마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