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받는 기도 생활

차례
1. 기도 응답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두 가지
2.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들
3.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의 유형들
4. 기도에 대한 보상과 약속
5. 성결한 삶을 구하는 기도
6. 성령 충만을 구하는 기도
7.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

제1장
기도 응답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두 가지
 
 1.응답이 방법과 성격에 대한 오해
 
 기도에 관한 일반적인 첫 번째 오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한 기도와 문자적으로 정확히 일치하는 응답, 즉 우리가 기도로 아뢴 방법과 꼭 들어맞는 응답을 해주신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응답이 오지 않을 때 자신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때에 종종 우리가 한 말  그대로, 즉 문자적으로 응답하지 않고, 우리가 한 기도의 근본 목적에 부합되는 응답을 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바울은 분명히 육신의 가시로부터 자신을 구출해 달라고 기도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바울이 간구한 기도에 대해 문자적인 응답을 주시지 않고, 그가 간구한 기도의 정신에 일치하는 응답을 주셨다. 바울은 이 육신의 가시가 그리스도를 위한 자신의 사역에 방해거리가 될까봐 근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말씀하시길,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다. 다른 말로 해서, "이 육신의 가시는 네 사역에 방해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네 사역에 유익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응답의 결과로 바울이 기뻐하였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비록 바울이 기도한 말 그대로의 문자적인 응답은 아니었지만, 그의 기도의 근본 목적은 응답되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로우시며, 우리의 기도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한 방법을 친히 택하셔서 자유로이 역사 하시도록 우리는 그분의 손안에 모든 것을 맡겨드려야 한다.


 2. 응답의 조건에 대한 무지
 
 기도에 관한 두 번째 오해는, 성경에 설명되어 있는 조건 글에 의지해서만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원리를 사람들이 자주 간파해버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여러분이 기도응답을 위한 조건들을 따르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해서는 안된다.
 
 마 7:7,8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야고보서 4장 3절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한 기도 모두에 응답하시지는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두 성경구절들이 서로 충돌하는 즉 상반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야고보는 왜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지는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기도에 관한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준다. 기도에는 잘못 구하는 기도가 있고, 바르게 구하는 기도가 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선 먼저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특정한 조건들에 따라서 기도해야 한다.

제2장
기도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들

끈덕짐(Persistence)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 8).
 
 <헬라어 성경에 쓰인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라는 단어들의 시제가 현재 진행형인데, 이는 계속해서 구하라, 계속해서 찾으라, 계속해서 두드리라는 의미이다>
 
 1. 끈기 있는 기도에 관한 성경상의 본보기들
 
 끈기는 기도에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참으로 신실하며, 진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달아보시려고 자주 즉각적인 기도응답을 유보하신다.
 
   (1) 야곱은 끈질긴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새벽까지 씨름하고서,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라고 외쳤다.
 
   (2) 모세는 기도에 성공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려서 성공을 거두었다(민 14:1).
 
  (3)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비를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450명의 알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한 후에 엘리야는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잠시 기도한 후에 엘리야는 자신의 종을 보내어 바다 쪽을 바라보아 조금이라도 구름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 종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오자 엘리야는 "다시 가라"고 했다. 왜냐하면 엘리야는 무릎을 꿇고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응답해주실 때까지는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아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줄 때까지는 자신이 기도하는 그 자에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끈덕졌다. "다시 가라". 마침내 일곱 번째에 이르러서 종은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보았노라고 소리치며 돌아왔다. 그 징조로 말미암아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려 하심을 알아다(왕상 18:1).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기도하다가 중단하고 한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렇지 않았다. 엘리야는 끈덕진 정신, 절박하게 매달리며 졸라대는 정신을 갖고서, 하나님으부터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기까지는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엘리야가 기도에 성공한 비결은 끈덕짐이었다.
 
 (4) 다니엘이 끈덕지게 기도하여 결국 기도응답을 받았다. 단 10:2,3을 읽어보라. 다니엘은 3주 동안을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12, 13절을 보면, 천사가 나타나서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다."
 
 이 경우에 있어서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늦어진 이유는 스스로를 바사국 군(君;페르시아의 왕자, the Prince of Persia)이라고 부르는 마귀가 이 천사를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끈덕지게 기도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3주 후에는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졌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점은 기도란 영적인 전투이며, 사단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지는 것을 방해하려고 힘쓴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끈기있게 기도하는 것,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종종 그리스인들이 기도에 성공하지 못하고, 응답 받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들 중의 하나가 바로 끈기의 부족이다.
 
 (5) 복음서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연인의 이야기는 기도에 있어서 끈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또 다른 본보기이다. 그 이야기는 마 15:21-28에 기록되어 있다. 그 연인은, 자신의 딸이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부르짖으며 예수님께로 나와왔다.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 여인이 계속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해 소리치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뒤따라왔기 때문에 제자들은 당황하게 되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분명히 그 여인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리스도의 그 말씀에도 실망하지 않고서 도움과 자비를 얻고자 여전히 부르짖고 있었다. 그녀는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신실성을 살펴보려고 일부러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리스도가 하신 이 말씀을 언뜻 보면, 그분께서 그 여인을 무시하며 야박하게 믿음을 시험해 보시자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녀의 강하고 끈덕진 믿음이 그녀의 대답 속에 나타나고 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세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바로 이 말이 예수님께서 듣고 싶어 하셨던 대답이다. 그 여인은 화를 내면서 "나를 개 취급하지 말라!"고 소리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을 보이는 대신에, 깊은 믿음, 끈질긴 믿음, 겸손한 믿음을 갖고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즉시로 대답해주셨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다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 바로 그 순간 그녀의 딸이 고침 받았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성공의 비결은 바로 그녀의 끈기(끈덕짐)였다. 끈덕진 기도 속에는 막강한 힘이 있다. 끈덕진 사람이 기도에 성공할 것이다.
 
 (6) 누가복음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끈덕진 기도의 중요성과 능력에 관해 두 가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눅 18:1-8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에 관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에 비유하려는 의도로 그리스도께서 이 예화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의 목적은 끈기 있는 기도의 능력과 효과에 대한 강력한 예화를 주시려는 것이었다. 끈덕지게 구함으로 심지어 불경건하고 불의한 재판관조차도 항복하게 할 수 있었다면,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곧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끈기 있게 간구하는 자들의 기도에 더 잘 응답해 주시지 않겠는가! 우선 그 재판관은 불의한 사람이었다. 두 번째로, 그는  이 여인과 이 여인의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세 번째로, 그는 그녀의 원수를 처벌하는 일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단 한가지, 바로 그녀의 끈덕진 졸라댐 이외에는 그 재판관이 그녀를 도와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계속적으로 끈질기게 구하고, 구하고, 또 구함으로 그녀는 재판관을 압박했다. 재판관은 미칠 것만 같았다. 마침내 그는 그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의 하시지 않다.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자들, 곧 당신의 아드님의 고귀한 피값을 주고 구원하신 자들인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우리편이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원수 마귀를 대적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동정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러니, 만일 우리가 끈덕지게 기도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응답해 주시지 않겠는가! 그렇다. 그분께서 당신의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 주실 것이다.(눅 18:8).
 
 눅 18:1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정확한 목적을 불 수 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끈기있는 기도 속에는 능력이 있다.
 
 (7) 끈덕진 기도의 능력에 관해서 그리스도께서 해주신 또 다른 이야기가 누가복음 11장에 있다. 눅 18:1-8 말씀은 사단에게 대항하는 싸움에 있어서의 우리 자신의 문제들에 관련된 기도의 중요성과 능력을 가르치고 있다. 누가복음 11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끈기있는 기도의 능력을 가르쳐 주신다. 눅 11:5-13에 있는 이 예화를 살펴보자.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집안에 있는 사람은 이미 자녀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고, 일어나서 떡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밖에 있는 이웃 사람은 필요하다면 밤새도록 이라도 문을 두드리겠다고 마음먹고서는 문 두드리며 요청하기를 계속했다.
 
 집안에 있는 사람이 이웃 사람에게 떡을 준 것은 그 사람이 자시의 이웃이라든지, 혹은 친구라는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의 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 문을 이웃 사람이 계속해서 끈질기게 큰소리로 두들겨대는 바람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말씀은 기도에 있어서의 끈기의 크나큰 가치를 보여 주는 훌륭한 예화이다. 끈질긴 사람에게 인간도 그러했거든 하물며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야 기꺼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않겠는가! 이 예화 속에 등장하는 '집안에 있는 사람' 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단순한 친구로서만이 아닌 자신의 자녀로 대하신다. 그분은 진정으로 우리를 염려하시며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신다. 만일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한다면, 그분께서 분명히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거나 귀기울이지 아니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시험하셨던 것처럼 그분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중인 것이다. 우리는 끈질겨야만 하며, 포기해서는 안된다. 다니엘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기도가 즉시로 응답되어지지 않았던 것이 사단의 방해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끈기가 결국 사단의 방해를 물리치고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응답을 받게 해주었다.
 
 기도해야 한다는 큰 부담이 우리의 마음에 느껴지면, 그것은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와 더불어 기도하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니라"(롬 8:26).
 
 2. 예화가 주는 교훈들
 
 우리가 기도에 성공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들 중의 하나는 끈기의 부족이다. 끈기가 부족한 것은 믿음과 헌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어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것과 같은 믿음과 헌신과 자기 부정의 정신을 반드시 소유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믿음, 헌신, 자기부정은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를 지도록 그리스도를 이도 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정신, 헌신과 자기부정의 정신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기적이며 세상 적인 마음을 갖고서 단지 우리 자신의 유익이나 추구한다면, 확실히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기도의 영을 소유할 수가 없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크나큰 사역을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기꺼이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만 한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만 살고 잇느냐?"는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과 재산과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바치고 있는가?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왕국과 길 잃은 영혼들을 위한 희생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도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기도에 성공하는 것은 마음 자세에 달려있는 것이지 단순히 말하는 것에 달려있는지는 않다. 기도에 성공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단지 입술로만 기도문을 읊조린다든지 기도한 후에 기도한 바를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기도, 즉 진정한 기도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계속적으로, 끈질기게, 상습적으로 아뢰어 올리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어떻게 기도에 성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다.
하나님을 기뻐함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1. 하나님을 기뻐한다 힘의 의미
 
 (1)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것들과 동일한 목표들과 목적들을 가짐.
 
 (2)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것들과 동일한 원칙들을 채택하고 실행함.
 
 (3) 하나님과 그분의 인격, 그분의 행위들, 그분의 섭리적인 다스리심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임.
 
 (4) 하나님께서 목표를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모든 방법들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 찬동함.
 
 (5) 우리의 모든 느낌, 감정, 애정이 하나님께 집중되도록 함. 그분은 우리의 '중력의 중심(our center of gravity)'이시며, 우리의 영혼이 누리는 모든 만족스런 것들의 근원이시다.
 
 (6) 하나님과 그분의 인격, 그분의 섭리, 그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함.
 
 (7) 하나님의 뜻에 복종함.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기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뜻이나 우리 자신의 욕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실행해야 한다. 자녀가 자신의 부모님께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부모님을 기뻐할 수가 없다.
 
 (8)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함. 어떤 결과를 당하게 되는 상관하지 않고서 망설임 없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철저히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로 결심한 마음 상태,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며 그 순종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한다. 바로 이런 정신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천부이신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じ?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시 40:8).
 
 (9) 하나님을 기뻐한다 함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에 깊은 관심을 기울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말하거나 행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우주 내에서 최고의 선으로 간주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시키는데 최고의 행복과 기쁨을 찾는다.
 
 (10) 하나님을 기뻐한다 함은 기도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계속적으로 사귀며 친교 나누기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한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인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기쁨이다.
 
 2.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는 말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추구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일들을 추구하고 있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분과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해줄 일들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실 것인데, 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이 약속의 실현 여부를 주님을 기뻐함에 달려있음
 
 하나님께서 이기적인 요청에는 응답해 주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의 화합 속에서 하나가 되어 있으며 하나님을 충만히 기뻐할 때에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들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마음 상태일 때는 우리의 소원과 하나님이 소원이 늘 동일하다.
 
 사람들이 주님을 기뻐하건 말건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셔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이기적인 욕심을 낼 턴데, 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욕심을 채워주셔야만 하는가! 그런 상황은 악하고 위험천만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소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참으로 옳고 안전한 것이다. 그들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아뢰어지는 간구일 것이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기뻐하면서, 동시에 이기적으로 금지된 사항들을 추구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기뻐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항상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크나큰 격려가 된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 사람의 모습 속에 나타난다. 그런 사람은 즐거운 마음 상태를 누린다. 그런 사람은 즐거워하고 만족해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삶의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따라서 그는 항상 즐겁고 행복하며, 항상 기도하며, 항상 감사한다.
 
 반발하는 자세, 비관하는 자세, 행복해 하지 않는 자세, 은혜를 모르며 감사하지 않는 자세, 낙심하는 자세는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 자세이다.
 
 4. 기도응답을 못 받는 이유
 
 (1) 신앙을 고백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들의 최고의 기쁨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신실하게 교통하며 교제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복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들은 비록 기도의 외양은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뻐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하지도 않았다.
 
 (2)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것과 동일한 것을 그들이 소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언가 이기적인 유익을 소원한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약 4:2, 3).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자는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의 최고의 소망은 하나님 자신과의 교통, 즉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장 귀중한 보물로 생각하며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다 가치없는 것들로 여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 시편 기자는 말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 73:25). 이 시편을 쓴 기자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서 있었다. 이렇듯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이 바로 세상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친구들에 대해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죽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교통을 가로막는 어떤 존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5.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뻐하는 자들을 기뻐하심
 
 (1)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우리를 기뻐해 주실 것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싸안으면 하나님을 얼싸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싸안으실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법칙(the law mind)'이다. 사람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찾을 때면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그 사람에게로 돌리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당신 자신의 영을 사랑하시듯이 그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러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3) 여러분이 여러분의 존재 전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철저하게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완전히 못박히는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당신의 기도가 응답 받기를 바란다면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라.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기 전에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말라. 하나님과 그 밖의 것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나뉘어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지 말라. 하나님께 여러분의 마음 전체를 몽땅 드리라. 당신의 자아를 비롯하여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몰아내어 여러분의 마음을 완전히 비우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과 그분의 사랑, 의로움, 성결, 복으로 여러분의 심령을 가득 채워주실 것이다.

깨끗한 양심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1, 22).
 
 1.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분께 받는다"는 말의 의미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되어졌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다고 느낄 때에 우리의 양심은 우리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책망치 않으신다.
 
 나는 여러분의 현재의 마음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분은 과거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크게 범죄 했음을 깊이 깨닫고 있다. 여러분은 과거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크게 범죄 했음을 깊이 깨닫고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과거의 모든 죄악들을 하나님께서 용납치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또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값을 위해서 죽도록 그분의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악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죄악들을 용서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의 과거의 죄악으로 인한 "정죄함이 없다"(롬 8:1).
 
 여러분의 과거는 모두 용서받았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온전히 헌신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하여 더 이상 화내시지 않고 미소를 보내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깨끗한 양심을 가진 여러분을 더 이상 책망하지 않으신다. 여러분 자신의 양심이 진정으로 깨끗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현재의 삶을 인정하시며, 여러분은 마음에 평안을 누린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의 마음이 신실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싫어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화를 내시거나, 그런 사람을 미워하실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들의 자녀가 겸손히 순종하고 성실하게 옳은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세상의 부모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내겠는가? 화를 내거나 미워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자녀들이 선한 일을 행하고 순종할 때에 그들의 부모의 마음은 행복감과 기쁨으로 넘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기뻐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단히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신할 수가 있다.
 
 우리의 양심이 언제 우리를 책망하는가? 우리가 불순종하며 범죄할 때이며 이기적인 태도로 행동할 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빛을 따라서 그분께 순종하지 않을 때이다.
 
 이제, 여러분이 자신의 이기심과 불순종을 신실하게 회개하고자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온전히 순종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결과를 볼 수있겠는가? 여러분의 양심이 더 이상 여러분을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더 이상 책망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여러분의 양심의 창조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을 책망하시고, 순종을 인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를 신실하게 추구하며 깨끗한 양심으로 그분의 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받아들이시며 응답해 주신다.
 
 2. 깨끗한 양심을 가진다는 말속에 내포된 의미들
 
 (1) 자기의(自己義)를 내세우지 않음.
 
 깨끗한 양심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으로 돌린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라는 말이 깨끗한 양심을 지닌 자의 간증이다.  바울의 간증이 이러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고전 15:10)
 
  바울은 그리스도께로 회심하기 이전의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교회를 대적한 행위들 때문에 그의 양심이 그를 책망했으며,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것을 하나님께서 용납치 않으심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과거의 일이었다.  바울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고 구원해 주셨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자신이 깨끗한 양심을 지녔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과 수고를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했다
바울은 요일 3:22잘 말씀을 성취하였던 것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확인함.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이고,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으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기심이 없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시며 여러분의 마음 상태를 인정하신다고 믿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기뻐하신다는 것도 믿을 수 있다. 이 근거 위에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만일 여러분 자신이 범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먼저 여러분의 양심이 여러분을 용납치 않을 것이고, 아울러 여러분은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용납치 않으시며 여러분의 기도를 받아들이지 않으심을 알게 될 것이다.

(3) 자신이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확신함.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완전히 다스리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며 느끼시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낀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지지, 찬동하며 그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는 마치 예수님께서,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함"(요 17:23)이라고 기도하셨던 바와 같은 마음의 연합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며 응답하실 것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요구를 거부하면, 그것은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거부하시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신의 마음과 뜻에 완전히 일치하는 기도를 거부하실 수가 없다. 여러분의 기도의 정신과 동기가 "주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다"라는 말씀과 일치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4) 자신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앎.
 
 "오, 주님,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라는 기도가 깨끗한 양심을 가진 자의 마음 자세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순종하는 마음 자세를 보시고서 여러분을 인정하신다.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해주려는 것이 세상 아버지들의 소원이 아니겠는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시다.
 
 (5) 자신의 행위나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 점이 없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믿음으로 자신의 죄악들이 용서되어졌음을 알고 있다. 현재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담대하게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여러분의 마음은 죄악으로 가득차 있지도 않으며, 과거에 범했던 죄악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자신의 자애로우신 천부(your loving Heavenly Father)로 인정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대제사장, 곧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담대히 기도함으로 당신께로 나아오라고 여러분을 초청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
 
 3. 만일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갖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로 간구한 바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요일 3:21).
 
 (1)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갖고 있을 때, 기도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감독하시는 분은 성령님 이시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지를 보여 주신다. 우리의 마음속에 기도해야 한다고 하는 열망을 안겨 주신다. 우리의 마음속에 열망의 불길을 타오르게 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며 기도하게 하신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도록 이끄신다. 이렇듯,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제공자(the source of prayer)이시며 우리 속에서 기도하는 분이 실진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확신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그분께서 분명히 응답하실 것이다.
 
 (2) 모든 참된 기도의 정신은 마 6:10에 요약되어 있다.
"(아버지의) 나라에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시다" 깨끗한 양심을 지닌 사람은 이런 영적인 마음 자세를 소유할 것이다. 그가 어떤 특별한 문제들을 기도하든지 그 특별한 문제들을 근본적인 뿌리 곧 그가 구언하는 은총인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는 기도에서 뻗는 나뭇가지들(branches)과 같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소원하시는 바는 그분의 의의 왕국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 위에서도 세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마음과 정신을 가질 때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에 일치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바와 동일한 것을 갈망하며 바라야 한다. 우리의 마음 자세가 이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는 것을 즐거워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문자적으로 꼭 일치하는 응답을 주시지는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근본목적에 부합되도록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명심하라. 기도할 때에 깨끗한 양심을 갖는다는 것은,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참된 의도와 동기를 가짐을 뜻한다는 사실.
 
 4. 깨끗한 양심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요일 3:22).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근본적인 이유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조건을 구별하는 것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신다. 그러기에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크게 기뻐하시며 흡족해 하신다. 만일 하나님이 무한히 사랑하는 분이 아니셨다면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조건은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가지는 것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요일 3:22 말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가 있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우리편에서의 순종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거나 복을 주실 수가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과 불순종하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야 한다면 그러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할 수는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들과 악한 자들이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그것은 곧 그들의 죄악을 인하여 그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악을 간과하신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죄악을 미워하시며 배격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자들과 더러운 양심을 지닌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풍성한 복을 내려주실 수 있는 조건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깨끗한 양심을 지녀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없이 크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당신의 사랑과 복을 쏟아 부어 주시길 간절히 바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큰 바다와 같아서 결코 다함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길 간절히 바라시지만, 그 응답의 유무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느냐의 여부시에 의해 좌우된다. 만일 여러분이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마음으로 순종하고 있지 않으면,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바라기 이전에 먼저 여러분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만일 여러분의 삶 속에 고백하지 않은 죄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순종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다.
 
 5. 기도하게 전에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함
 
 기도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의 마음 상태를 신중히 살펴보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존전으로 성급히 달려가지 말라. 여러분은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있는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겔 14:3)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속에 주님보다 앞세우는 어떤 우상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 그 우상을 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네가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고 말씀하신다. 달리 표현해서, "네가 그 우상을 붙잡고 있는 한 네가 하는 기도는 헛된 것이다. 네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의 우상을 내어 버리라. 겸손하게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자신의 죄악들을 고백하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다소의 사울은 허영심 많고 교만한 바리새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여 용서받고서 사도 바울이 되었다. 그는 기도에 있어서 엄청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실 것이고, 여러분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랑과 은혜를 허락하신 사랑과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볼 때 다음과 같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신다. 둘째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깨끗한 양심을 주시며, 마음의 평화를 주시며, 믿음 안에서의 기쁨을 주신다. 셋째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의 은사를 주신다. 넷째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의 중보를 제공하시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간구하며 기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가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여러분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만년의 야곱처럼, 여러분도 기도로 하나님을 설득할 수가 있다.
 
 바로 지금,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올바른 일을 행하라! 하나님께 순종하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행하라! 이렇게 행할 때 여러분은 기도할 수 있다. 이렇게 행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실 것이다.
 
 효과적인 기도를 할 수 없는 마음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다. 여러분은 기도하여 하나님을 설득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고 여러분의 기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을 시사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 짠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만일 여러분이 기도의 영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 즉시 여러분의 영혼을 감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고하라! 그리고 바로 지금 하나님께 여러분의 죄악을 고백하라!
 
 항상기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1. 왜 우리는 기도도해야만 하는가?
 
 (1)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어떤 특정한 부분들뿐만이 아니라 삶의 전 부분을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
 
 (2) 우리의 본성이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현장 속에서 고통과 압박을 느끼며, 수많은 종류의 부족함을 느낀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은 어느 곳에서나 기도해 왔는데, 이는 인간 본성이 도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악인마저도 심한 고통을 느낄 때에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3)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생각은 모든 인간의 정신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적인 관념이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든 모두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응답하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4) 하나님과 교제는 인간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자연스런 욕구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주실 수 있으며 또 해주실 것임을,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해주시기 않을 것임을 우리는 믿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행위가 그분을 향한 우리의 태도와 행위, 그리고 그분께 아뢰는 우리의 기도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목적 중 하나는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어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은 그분께 대한 우리의 사람과 순종, 그리고 그분의 은총을 성실하게 구하는 우리의 기도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이 없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에게 유익을 주실 것을 기대하겠는가? 예를 들어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 있다. 다른 복을 받기 위한 방법도 죄사함 이란 큰복을 받는 방법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기도로 하나님을 구하며 찾아야 한다.
 
 2. 왜 우리를 항상 기도해야 하는가? 왜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하는가?
 
 누가복음 18장에 기록된 첫 번째 예화 속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는 본보기가 될만한 인내를 보여주었다. 그 여인은 재판관을 계속 찾아갔고,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단순히 인내만으로 그 연인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 재판관은 하나님이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는 염려했는데, 이 연인은 지속적인 방문과 호소로 그의 평화와 안녕을 깨뜨리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서 요구대로 해주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이야기를 본보기로 사용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에 있어서 끈기가 필요함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이제, 우리가 시도할 때 인내해야 하는 이유들을 살펴보자.
 
 (1) 우리는 삶을 사는 동안 계속해서 기도의 영향력을 필요로 하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기도가 우리를 하나님의 존전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계속적인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인식하며, 늘 의식적으로 그분의 은혜와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일이다.
 
 (2)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신다. 왜? 어째서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필요로 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여러분에게 보다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시길 진심으로 소원하고 계신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 귀한 복들을 주실 수 없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겠다고 느끼고서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로 성실하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주실 수가 없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자 않은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겠는가? 이러한 원리는 죄의 사함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다른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여러분은 반드시 기도로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드려야 한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높이며 경배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반드시 보여드려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태도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라시는 것들을 우리에게 마음껏 풍성히 주실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기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네희가 얻지 못함을 구하지 아니함이요"(약 4:2 하반절).
 
 끈덕진 기도를 대신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경을 읽는 것조차도 기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기도는 우리의 영에 활력을 주는 영적인 호흡인데, 이는 기도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유이다.
 
 (3) 기도만큼 유용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면적으로 나아간다.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기도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기도는 우리의 죄악을 고백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성경 읽기는 대단히 유익하다.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 역시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은 진정한 기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를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미워하게 한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세상의 모는 유혹과 매력에 대해 죽게 한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 속에 능력과 영적인 활력을 불어넣는다.
 
 (4) 기도는 하나님의 광대한 복들을 받도록 우리 영혼을 준비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끈덕지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5) 참된 기도, 신실한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그분의 복들을 우리에게 쏟아 부으실 수 있는 위치에 우리를 갖다 세운다. 교회사를 연구해 보면 기도에 거인이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도 가장 쓸모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보다 더 많이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보다 더 많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우리가 보다 더 많이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훨씬 더 거룩해진다. 많이 기도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그리스도를 닮아간다. 많이 기도하면 기도하는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릴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우리는 훨씬 더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훨씬 더 거룩해지고 그리스도를 닮아갈수록 우리는 더 많이 기도하게 될 것이다. 보다 더 많이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기도하는 방법을 훨씬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 할수록 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 그리고 기도의 유용성을 깨닫는다. 기도는 특권,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큰 특권이다. 만일 기도를 단지 의무로만 간주하게 되면, 여러분은 기꺼운 기도를 할 수가 없다. 여러분이 끈기 있게 계속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응답해 주실 것이고, 여러분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특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여러분이 자신의 문제에 관해 대통령의 도움을 요청하고자 어떤 제재나 간섭도 받지 않고 직접 그에게 나아간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기도함으로써 여러분은 우주의 통치자, 만와의 왕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다. 여러분은 직접 하나님의 존전(尊前)으로 나아가서 자신이 겪고 있는 어떠한 문제를 위해서든 그분의 도우심을 요청할 수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특권이 그 얼마나 손쉬운 것인 가도 생각해 보라. 우리는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준비를 하거나 특별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단순히 기도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늘 현존(現存)해 계시기 때문이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한번 예방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몇 주전부터 준비를 해야만 한다. 또한 그를 만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가 어느 시간, 어느 장소, 어느 상황에서든 지간에 곧바로 교통할 수 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그분께서 만들어 놓으신 특권은 참으로 대단히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엄청난 특권의 유익을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3. 왜 사람들은 항상 기도하질 않는가?

(1) 재차 타락했거나 회심하지 않은 마음을 지니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싫어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롬 8:7).
 
 이 말씀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는 하나님께 적개심을 품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며,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한다.
 
 (2) 스스로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열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도 자신들이 충분히 강하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으며, 또한 기도하는 것은 자기가 연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지니고 있다. 사실상 스스로 자신이 외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이다. 그들의 영적인 무지가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강한 존재이며, 기도란 허약한 자의표현(a form of self weak-ness)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3)불신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늘 기도하지 못하게 한다. 여기서 불신의 대상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이 약속하신 모든 것들이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약속을 불신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실 준비를 하고서 대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불신인 것 같다.
 
 불신은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수준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따라서 그분께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그분께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은 없다. 하나님은 그 어느 것에도 제한 받지 않으신다. 그런데 불신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제한하려고 한다. 불신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제한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개별적인 삶 속의 모든 부분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만사에 관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계시하시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계시하길 바라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우리의 인생에 관한 모든 일들에 대해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4)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진정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들이 영원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적인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며, 그래서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일을 하지 않는다.
 
 (5)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거의 기도하질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도하기엔 너무나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온전한 착해져야만 기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선(善)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의 선이 없다.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다. 우리는 그저, "주님, 저와 같이 악한 죄인을 구원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깨끗케 해주시면 용서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인해 감사드리며, 제 기도를 들어주시는 은혜를 감사를 립니다" 라고 아뢰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6)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문제들과 세상적인 일들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진 이들은 기도에 몰두할 수가 없다.
 
 4. 결론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일이다. 기도하는 것의 시간낭비가 아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기도한다면, 우리는 그 일을 훨씬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더 많이 기도하면 여러분은 공부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성공을 거둘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보다 많이 기도한다면 여러분이 주일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설교할 때에도 또는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어떤 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성공을 거둘 것이다. 기도는 마음을 환히 밝혀준다. 기도하는 마음의 불, 즉 전기와 같다. 기도는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성공의 비결이다. 그것은 목회에 성공하는 비결이다. 기도를 하나님과 교통함이 없이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기도 없이 여러분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이 될 수 있으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학문만을 신뢰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우리는 기도의 영으로 충만해져야만 한다. 살아있는 믿음으로 충만한 기도는, 다른 방법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성취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네가 시행하리라"(요 14:13, 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 24).
 
 기도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활동이다. 우리 모두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자.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영적인 생명의 근원이시며 제공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하게 해준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삶의 시련들 한가운데서 우리의 피난처(our rock of defence)가 되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3-16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서부터 시작하여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는 도중까지의 시간에 하신 말씀들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다른 이에게 해주신 마지막 말씀인 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이전에도 제자들에게 기도에 관해서 가르치셨고, 당신께서 친히 본을 보이심으로 스스로의 가르침을 확고히 하셨다. 기도는 예수님의 생활 습관이었다. 이 점은 나사로의 무덤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속에 나타나고 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요 11:42). 여기서 '항상'이란 말은 그리스도께서 규칙적이고 계속적인 기도의 습관을 가지셨다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항상 들으시고 응답하셨다는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요 14:13,14;요 15:7,요 15:16;요 16:23,24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기도하라고 처음으로 교훈 하신 말씀이라는 점에서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자들이 구하는 바는 무엇이든지 받게 될 것이라고 교훈 하신 말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참된 기도는 단지 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당신의 자녀가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그것을 주시며, 문을 두드릴 때 열어주시며, 그가 하나님 자신을 만나기를 요청할 때 나타나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구하지 않고, 두드리지 않고, 찾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역사를 통하여 가장 거룩하고 가장 경건했던 사람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이 되어야 한다.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의 지속적인 생활 습관이었다면 기도는 또한 마땅히 여러분의 생활 습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 14:13,14에서, 예수님께서는 놀랄만한 주장을 하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또한 요 15:16에서,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고, 16:23, 24에서 또 다시,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이제부터는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상의 3곳의 구절들 모두에 내포된 근본적인 사상은 동일하다. 이세 구절에는 모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과 그들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임을 가르치고 계시는 장면이 기록되어져 있다. 다만 단 한 가지의 작은 차이점이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첫 번째 구절에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말씀하시는 반면, 다른 두 구절에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14장에서는 '내가 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다른 두곳에서는 '내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의문을 가질수도 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요한복음 속에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특징을 연구해보면 쉽게 얻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 자신의 독특하고도 유일무이한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요 10:38;요 14:10, 11, 20; 요 17:21,23).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 10:30).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한다"(요 5:19).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한다"(요 5:23).
 
 아버지와 아드님은 하나이시며 동등하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당신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요 17:11)'라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요 7:21)"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아드님이 하나이시며 동등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며, 또한 무엇이든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바를 우리를 위해 아드님께서 실현하신다.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이름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그 이름은 신의 이름, 곧 하나님의 이름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이유는 이는 그분이 하나님과 하나이시기 때문이며, 곧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할 능력과 권위를 지니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시다는 사실과 그분의 이름으로 간구할 때 아버지께서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아드님께서 우리를 위해 시행하실 것임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있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할 것과 (23, 26절), 부활 후에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다(5, 7, 28절). 또한 당신께서 지상을 떠나가신 후에 제자들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보혜사 곧 성령님을 보내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13절).
 
 이 모든 사건들이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일어났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사실과 성령님의 강림은 예수님이 신이심을,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말씀, 즉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겠다"는 말씀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다"는 말씀을 믿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모든 신자들 속에 내주려하고 오신 성령님의 강람에 근거해서,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주장은 완전히 정당화되어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그분의 명령은, 그분의 이름으로 하는 우리의 모든 기도에 대한 응답을 우리가 받을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우리에게 대단히 의미 깊고 중요한 것임을 확증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기시에 그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증보자이시다(요 14:6;행 4:12; 딤전2:5).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은 체휼치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사용 하지만 실은 그 말에 대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즉 자신들이 왜 그 마을 사용하는지도 모르면서 쓰고 있다. 기도 끝부분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문구가 마치 판에 박힌 마술 주문처럼 읊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자주 깊은 생각 없이 아주 가볍게 그 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 곧 여호와라는 이름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이름임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그 이름 예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본성과 인격과 영광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기도 가운데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이 진리를 반드시 명심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존재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행하신 모든 위대한 사역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소유하고 계시는 바와 동일한, 순결하고 거룩하고 영적인 마음 상태를 지녀야 한다는 의무를 우리에게 지운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예수님이 지니신 것과 동일한 목적과 목표를 갖지 않고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바르게 기도할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사시는 목적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는 없다.
 
 예수님과 같은 정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 쉽사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기도하는 것은 단순히 헛소리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신동모독이라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서를, 특별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시는 14장부터 16장까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라. 그들이 예수님과 동일한 마음과 정신을 지니고 있어야만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고 응답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분께서 가르치신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하나이어야만 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당신의 관계에 관해서 말씀하시길,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제자들에 대해서도 유사한 말씀을 하셨는데,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고 내가 저희 안에 저희가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또 요한복음 15장에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셨다. 또,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고, 또다시 말씀하시길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에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다. 이 모든 말씀들의 의미는 명백하다. 그것은 제자들과 주님에 대한 신원판정(Identification)의 결과가 반드시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들과 주님은 하나여야 한다. 생각과 정신에 있어서 하나여야 하고, 목적과 동료의식과 사랑과 혈연의식에 일치감을 지녀야 한다. 이것에 근거해서만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라는 말을 기도 가운데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기도자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된, 살아있는, 영적인 연합을 가리킨다. 우리의 생명과 그리스도의 생명이 하나이고, 우리의 영(spirit)과 그분의 영이 하나이다. 이 영적인 연합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의 능력의 근원이며, 특별히 기도에 있어서의 능력의 근원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정신과 생각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 우리는 하늘의 능력과 복에 관한 약속과 보증을 소유하게 된다. 아울러 우리의 생각과 기도가 예수님 자신의 생각과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어진다는 약속이 실현되어짐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일치된 마음과 정신을 갖고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친히 그 기도를 드리시는 것과 같고, 우리는 틀림없이 응답을 받는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전히 드려질 수 있는 기도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그분의 이름 곧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기도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모든 기도마다 응답되어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겠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분명한 약속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은 기도응답에 대한 보증과 약속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의 마음의 신실성과 성결함에 대한 크나큰 시험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과 하나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온전히 예수님께 헌신하고 있으며, 철저하게 예수님께 순종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영혼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구원을 갈망하고 계시는 것처럼 우리가 사람들이 영혼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진지하게 하도록 하자.
 
 예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는가의 여부는 참된 기도와 이기적인 기도를 구분짓는 확실한 기준이다. 그것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기도와 육신의 뜻에 의한 기도를 구분 지을 수 있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것이다. 즉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바르게, 신실하게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사용했을 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되어 있지 않았고, 여러분의 생각은 그리스도의 생각과 영적으로 일치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분의 정신과 그리스도의 정신은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안내자가 되시도록 해드리자.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교통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교통하기를 힘쓰자.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 행하기를 추구하셨던 것처럼 우리모두 예수님의 뜻 행하기를 추구하자. 우리가 이렇게 행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어졌음을 우리가 증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의 참뜻은 무엇인가?
 
 (1) 우리 자신이 본질상 모두 죄인들임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받아 영원한 사망의 형벌에 처해지는 것이 마땅한 존재들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으로 판결받는 존재라는 사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잘 알려진 예화를 들어보자. 여기에 살인죄를 범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살인죄를 범했음을 확인하고서 판사가 그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그리고 그는 형집행일 까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런데, 아직 형집행이 실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제 행사할 수 있는 어떤 법적 권리도 가지고 있지 못하던 그는 자신의 형집행 때까지 교도소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 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친구나 친척들을 방문하기 위해서 자유롭게 나갈 수가 없다. 그는 단지 사형선고를 받은 한 죄인으로 간주된다. 정부에서 볼 때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무가치할 뿐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회심하지 않은 죄인으로서 본질상 우리가 처해있는 상태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권리도 갖고 있지 못하다. 죄인으로서의 우리는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도없다. 죄인으로서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아무런 권위나 자격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단지 판결받는 죄인,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들이다.
 
 죄인은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거룩하고 의로운 존재이신 하나님께서는 판결받은 죄인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없다. 판결받은 죄인으로서의 우리의 이름은 하나님의 공의의 보좌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 죄인들에게 반드시 중보자, 곧 하나님께 인정받은 중보자가 죄인 편에 서서 죄인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꺼이 나서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받아주시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중보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인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길, 그분께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다. 우리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우리자신의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여야 하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그분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것은 우리 자신이 판결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써 우리의 죄값을 치루셨기 때문에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특권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특권을 우리가 누린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도 가운데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 대하여 죄인으로 서있는 우리의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여야 하며, 진정으로 회개하며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으로 판결하시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우지 않는 우리의 기도를 듣기를 거부하시는 것이 절대적으로 공정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아물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것은 우리가 과거의 모든 죄악과 자기의(自己義)를 진실하게 포기하고서 돌이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름이나 혹은 다른 어떤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하지 말아야만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감으로써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왜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는가? 그는 믿음의 조상이었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왜 우리는 모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는가? 그는 확실히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는가? 그가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가! 왜 우리는 동정녀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는가?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었다. 왜 우리는 성인들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가?
천주교는 성인들의 중보직(중보권, the mediatorship of saints)을 사용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지금 언급한 모든 사람들은 본질상 우리와 똑같은 죄인들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속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도 역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한 중보자가 필요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오직 단 한 분의 중보자가 계시는데, 그분은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딤전 2:5).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셨다. 그분만이 홀로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시며 중보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며 용납하시는 유일한 인물이시며 유일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한다. 그분만이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우리의 유일한 길이시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너무나도 자주 그저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의례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만 한다.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무엇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합당하게 사용하는 기도인가?
 
 (1)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어떤 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간구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간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광이 아닌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간구해야만 한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1:19, 20). 그리스인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하였으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하였으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그것을 간구하여야 하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구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떤 것을 소원하는 기도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것을 소원하는 기도를 하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의 요구를 들어주실 것이다.
 
 단지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와 같은 태도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시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드릴 것들을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는 말을, 그 말에 의해서 온갖 종류의 이기적인 기도들까지 몽땅 응답받을 수 있는 일종의 마술적인 주문(a kind of magical formula)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간구하는 것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져야 함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교훈을 받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일용할 양식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다른 말로해서, 내가 음식을 먹고 몸에 영양을 공급하여서 내 몸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에 쓰여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공기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호흡되어져야 한다.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은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의복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옷을 사거나 입어선 안된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는 모든 것들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을 위해서 구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성경 속에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만 우리에게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가 기도 중에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단 하나도 없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의 성취를 요구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로 간구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란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와 전혀 상관없는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는 한 우리가 기도로 당신께 나아가는 것을 환영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 중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가 마음속에 있는 모든 이기심을 제거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온갖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복주실 것이다(엡 3:20).
 
 (2)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는 기도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분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를 용납해 주실 것임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임을 기대해야만 한다. 여러분은 죄용서를 받기 위해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하고 있는가? 구원과 영생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하고 있는가? 칭의를 위해서 그리스도 한분만을 의지하고 있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시기 위해선 여러분이 여러분의 기도의 열정이나 여러분의 눈물, 여러분의 감정, 또는 여러분이 행한 어떤 것을 의지해서도 안되고, 오직 여러분의 중보자, 여러분의 대언자, 여러분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해야 한다.
 
 3.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이유들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본질상 죄인들이란 사실 때문에 우리 자신의 인격이나 우리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설명하였다. 본질상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은 자임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 사형선고가 우리에게 언도되었다. 우리 자신의 양심이 우리가 죄인이란 사실을 증거한다. 우리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인 양심은 우리에게 우리가 판결받은 죄인들임을 가르쳐 준다. 만일 우리가 죄인인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면 그 행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우리의 죄값을 위한 속죄물이 되게 하시려고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높이 셨으며 그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그런데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서 우리 자신의 공로나 자기 의로움을 의지하여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멸하며 모독하는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속죄와 중보직의 제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께서 그 어떤 인간의 기도도 들어주실 수가 없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접근하는 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의지할 중보자도, 대제사장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와 중보직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더러운 옷(사 64:6)을 입고서 만왕의 왕 앞에 나타남과 같다. 구약시대에 지성소로 들어가 그곳에 임재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대제사장은 거룩한 예복을 입어야만 했었다. 그들이 이 거룩한 예복을 입지 않고서는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었다. 이 구약의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의도하신 상징적인 교훈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룩한 예복을 입지 않고서는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와 동떨어진 채로 하나님께 접근한다는 것은 전능하신 창조주를 경멸하고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경솔하게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서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표현을 단지 형식적으로나 의례적(儀禮的)으로 사용해서는 결코 안된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이들이(Many professing christians)기도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도 자주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볍게, 생각없이 함부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올바른 마음 자세, 올바른 정신 자세를 갖춤이 없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며 기도한다. 대단히 자주 그리스도인들이 이기적인 기도를 아뢰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께 속하였으며, 자신들에게 이기적인 기도를 드릴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 예화를 들어보자. 어떤 회사의 사장이 경리사원에게 회사의 예금통장과 도장을 주면서 은행에 가서 오백만원을 찾아오라고 했다. 경리사원은 은행으로 가서 그 자신의 이름이 아닌 예금통장에 적혀있는 이름으로 오백만원을 청구한다. 만일 그 경리사원이 자신의 이름을 사용했다면, 그는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돈을 인출한 뒤에, 경리사원이 그 돈을 갖다가 자신을 위해 제멋대로 새옷이나 가전제품 등을 사는 데에 쓰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오, 그것은 안될 말이다. 그 경리사원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돈이 사무실 운영비, 사원들의 월급, 건물세 등을 지불하는 데에 필요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는 그 돈이 회사를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함을 이해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의 의미에 대한 교훈을 준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생각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바른 태도를 갖고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만일 우리가 신실하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단지 우리 자신의 영광,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이나 추구하고 있다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놀랍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입술로 '예수님이 이름으로'라고 읊조린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속지 않으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기도 가운데,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우리가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갖고서 올바른 태도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마음 자세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떤 것이든 간구할 수 잇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주실 것이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러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 24).
 
 형제와 자매와의 화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 24).
 
  화해는 기도와 관계된 중요한 주제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잘못을 범했던 형제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그 형제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을 실해하기 때문에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 5:23, 24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도의 중요한 조건 한 가지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 말씀은 또한,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게 적합하지 않은 마음 상태에 빠진다는 사살도 가르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범하고서 그 사람에게 자신의 잘못의 고백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 기도 드릴 자격이나 권한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사살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가운데 제시해 주신 조건들을 우리가 갖출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시겠다고 진실하게 약속하셨다.
 
 그분께서 정하신 기도를 위한 조건들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하나님께 기도드릴 권한이나 자격이 없다.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도를 위한 이러한 조건들 중의 하나가 마태복음 5:23, 24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설명되고 있다. 그 말씀의 의미는 명료하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의 형제에게 잘못했던 것을 깨달았을 때 즉시 그 형체에게로 가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그분께 복과 은총을 간구할 수 없다. 자신의 형제와의 관계를 회복시킬 때까지는 여러분에게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종종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왜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그러한 사람들은 "내가 많이 기도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혹시 여러분이 자신의 형제에게 잘못을 범하였고, 그럼에도 형제에게 가서 용서를 빌거나 화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주시지는 않았는가? 여러분이 형제에게 퍼부는 거친 말, 형제에게 저지른 잘못은 혹 여러분 자신은 잊어버렸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선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선 여러분의 태만과 부정직을 기억하고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여러분이 가서 형제와 화목하기 전에는 여러분의 기도가 아무런 능력도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 "네 같은 동료인 사람에게 잘못을 범했으면서도 잘못을 비나 화해를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이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인양 내 앞으로 나오느냐?" 때때로 우리는 같은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이들과 사귀지 않으며, 심지어 서로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다른 이들을 향해 거친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절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실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한 조건에 관계된 이 문제에 대해 부주의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들은 마치 기동응답을 위한 조건같은 것은 전혀 없는 것처럼, 자신들이 할 일을 단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그 기도에 응답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인가! 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다른 그리스인도인들의 인격에 대해 나쁘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이 하는 기도를 역겨워하신다. 그분은 그런 사람이 드리는 기도에 귀기울이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히 정직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마음이 정직하지 않은 누구에게도 귀기울이지 않으며 그와 이야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정직하고 진실하며, 자발적으로 그분께 온전히 순종하며, 기도응답을 위한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자 애쓰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우리가 이런 마음 자세를 갖추기 전에는 우리가 아무리 큰 소리로 기도하고 아무리 오래 기도한다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에게 관해서 기록하시기를,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신다"(시 51:6)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실한 마음과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여기시는 올바른 삶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은 기도응답을 받기 위한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관계에 있어서 실제로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경우가 자주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1. 자신의 형제. 자매와 화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 우리는 우리가 상처입힌 사람들에게 우리의 잘못을 반드시 고백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형제나 자매에게 흥분해서 화를 냈다면, 그 사람에게 잘못했다고 고백해야 한다. 만일 어떤 형제나 자매에 관해서 나쁘게 말했거나 비난을 했다면, 그것도 역시 그 사람에게 실토해야 한다.
 
 (2) 우리가 우리의 형제에게 범한 죄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하며, 그 죄악을 사실로서 시인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죄악을 정당화시키려고 시도해서는 안된다.
 
 (3)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 인하여 피해를 본 사람에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아무런 변명도 시도하지 말고,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해야만 한다.
 
 잘못을 시인함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우리가 가진 교만을 제거하는 것이다. 겸손은 교만을 제거하고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낮추는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실 때 마땅히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라고 강요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정직한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5) 만일 우리가 형제로부터 어떤 것을 부정직하게 취했으면 당연히 우리는 그것을 배상하여야 한다. 배상 없는 고백은 가치없는 것이다.
 
 (6) 고백은 또한 충분하고 철저해야 한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일부분만을 고백하거나 왜곡된 고백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형제에 대한 우리의 잘못을 완전히 고백해야만 한다.
 
 여러분이 어떤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잘못을 범했다고 가정해보자.
여러분의 동료는 여러분의 잘못된 행위를 알고 있으며 그것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단지 여러분이 범한 잘못의 일부분에 대해서만 그리고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여러분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넌지시 비칠 뿐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겠는가? 그는 당신이 여전히 진정으로 정직하거나 신실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해할 것이다. 그런 고백은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형제 모두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할 것이다. 고백은 흘러내리는 강물처럼 거리낌없이 나와야 한다.
 
 2. 왜 하나님께서는 형제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함을 기도응답의 조건으로 삼으시는가?
 
 (1) 고백의 필요성은 하나님의 공의 속에서 발견된다. 자신의 형제에게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대해서나 형제를 향해서나 떳떳할 수가 없다.
 
 (2)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 고백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웃에게 범한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릴 수 없다. 여러분이 불의하게 행하고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를 미루는 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교제하지 않으신다.
 
 (3)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평화을 위해서 고백이 필요하다. 여러분이 자신의 잘못된 행실을 시인하고 고치기 전에는 여러분의 양심이 늘 여러분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4) 여러분이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과의 화평을 위해서 고백이 필요하다. 여러분에 대해 혹 그가 나쁜 감정을 갖지 않는다 해도 그 사람의 마음속엔 여러분이 만들어 놓은 방해물이 있으며,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그에게 가서 허물을 고백하기 전에는 그 방해물이 치워질 수 없다.
 
 (5)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잘못한 사람에게 가서 고백하기 전에는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여러분을 사랑할지도 모르며,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할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고백하기 전에는 그들이 여러분을 존경하거나 높일 수 없는 것이다.
 
 (6) 여러분 자신의 자부심을 위해서 고백이 필요하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본성과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기 전에는 여러분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할 수 없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을 수도 없다. 여러분은 반드시 이 문제에 관해 철저히 생가가해 본 후에 진실하게 정직한 고백을 해야만 한다.
 
 3. 자신의 죄악과 허물을 그대로 고백하는 것은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1) 고백은 태산같은 짐을 여러분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벗겨내고, 여러분에게 평안과 기쁨을 되돌려 줄 것이다.
 
 (2) 여러분이 형제에게 잘못을 고백하는 그 행동을 통하여 그 형제도 겸손하게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고백은 달리 어찌 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움직인다. 겸손하게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는 여러분의 해동은 그 행동을 보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악을 고백하도록 영향을 끼칠 것이다.
 
 (3) 고백은 고백한 사람에게 큰 명예가 될 것이다. 고백은 그의 마음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백은 고백자의 진리에 대한 사랑이 그의 인간적인 본성인 자존심과 교만을 이기고 승리했음을 보여 준다. 고백은 대단히 고결한 행위이다. 아무도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된다. 고백은 해야 할 명예로운 일이다. 아무도 자신의 허물을 시인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왜 정직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왜 신실해지는 것을 겁내며, 진실해지기를 무서워하는가?
 
 (4) 고백은 상처입은 사람이 고백자를 용서해주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해를 끼친 사람이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데 상처입은 사람이 달리 어떻게 용서해 줄 수 있겠는가? 고백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나 자매 사이에 놓여있는 걸림돌을 제거한다.
 
 (5) 고백은 여러분이 범조함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친교(communion)를 회복시키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인들은 잘못을 범했을 때 스스로를 겸손히 낮추고 서로에게 자기의 허물을 고백해야만 한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하늘의 천사들도 즐거워한다.
 
 고백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관한 본보기로는 욥과 그의 세 친구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 친구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욥에게 매정하게 말했었다. 그들은 어려움을 당한 욥을 동정하지 않았고, 욥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하나님께서 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반드시 욥에게 가서 너희의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너희는 욥을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너희는 겸손히 너희의 잘못된 행위를 욥에게 고백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가 너희를 용서해줄 것이고, 그가 너희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용납하고, 너희의 어리석음과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심판하지 않겠다."
 
 그래서, 욥을 비방하면 위선자라고 욕하던 세 친구들이 욥에게 가서 잘못을 고백하고서 욥의 용서를 받았다.  그런 뒤에 욥이 이 세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했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과의 친교와 사귐을 재개하셨다.
 
 여러분은 형제나 자매에게 잘못했는가? 가서 그 사람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고, 또한 그 사람에게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간청하라. 그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사람,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야 할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지금 곧 자신을 낮추며, 신실하고 정직해지며, 하나님과 자신의 양심이하라고 명령하는 바를 실행하라!
올바른 목적을 갖고 기도함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우리가 하나님께 특별한 것들을 간구할 때에는 반드시 정직하고 선한 이유를 지녀야 한다.
 
 하나님은 무한히 지혜로우시며 합리적인 성품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 분은 선한 이유가 없이는 아무것도 행하지 아니하신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승인하시고 응답하실 만한 선한 이유를 항상 지녀야 한다. 우리가 기도로 요청하는 바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건전하고 지정적인 이유를 지녔을 때에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임을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은 무한히 의로우시므로, 우리의 요구는 마땅히 그분의 뜻에 합치되는 것이어야 한다. 달리 표현해서, 우리가 기도로 요구하는 바는 반드시 하나님의 무한한 의로움을 만족시켜 드려야 하고 그 결과 그분의 찬성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에 이 중요한 점을 심사숙고하는 습관을 지녔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기뻐하시는 바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고 단지 자기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서 간구하는 버릇이 있는가?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이 기도는, 과연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자비를 베풀어 받아주실 만큼 충분히 선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가?" "이 요구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실, 그런 선하고 비이기적인 성격의 것인가?" 확실히 이것은 기도 문제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특정한 기도를 위한 우리의 동기가 그분의 무한한 지성과 뜻하시는 바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과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으며 응답해주실 수 있겠는가? 우리의 기도가 합리성(reason)과 지성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구에 승복하시는 것이 잘못이 되고 부끄러운 일이 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위대한 통치자로서 오직 선하고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것만을 행하실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올바른 생각이나 묵상이 없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상적인 것, 이기적인 것을 하나님께 요구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내용의 간구(prayer requests)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꼭 알아야 한다. 기도로 하나님의 것들을 간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여러분의 기도 내용이 반드시 이기적이지 않아야 함을 내포한다. 여러분은 이기적인 정신 즉 탐욕으로부터 나오는 기도, 또는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간구하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고 생각하는가? 결코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한 어린이가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어머니는 "왜 그 돈을 달라느냐?"고 묻는다.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자기 아들에게 돈을 주기 전에 아들이 돈을 요구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만일 아들이 공부에 필요한 연필이나 공책을 사는 것과 같은 선한 이유 즉 어머니가 생각하기에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그와 같이 요구한다면 틀림없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돈을 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자녀가 단순히 사탕을 갖고 싶은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돈을 원한다면, 아마도 어머니는 "안돼. 너한텐 더 이상의 사탕이 필요없어. 너는 이미 단 것을 아주 많이 먹었잖니. 사탕을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님께서는 왜 우리가 기도로 특정한 요구를 하는지 그 이유를 아셔야만 한다. "주님, 제게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왜 그 돈을 필요로 하느냐?"고 하나님께서 물으신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는데 등록금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제차 물으신다.
 
 "신학교에 왜 들어가려는 것이냐? 네 동기가 무엇이냐? 나를 섬기려고 입학하려는 것이냐, 아니면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이냐?" 기도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지 반드시 선한 이유를 지녀야 한다. 여러분의 동기가 선하면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하실 것이다. 사도 요한은 분명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기록하였다. 반면에, 여러분의 동기가 이기적인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것은 단지 현명치 못할 뿐만 아니라 수치스런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히 의로운 분이시므로 이기적인 기도에 대해서는 전혀 경청하시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의 기도가 신실하고 정직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도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기도라면, 하나님께서는 사랑어린 공감(共感, loving sympathy)과 은혜로 향상 귀기울이신다.
 
 이것이 기도에 성공하는 비결이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로 간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한 동기를 지녀야 한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기도를 드리고자 하는 희망의 실현 여부를 여러분의 기도의 양(量, Amount)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며 기도의 길이(Length)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 성공의 희망은 여러분의 기도의 질(質, Quality)에 달려있다.
 
 만일 여러분이 왜 자신이 기도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오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습관에 젖어있는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겠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을 조롱한 것은 사실이다. 여러분이 선한 이유없이 다만 어떤 이기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무엇을 구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나는 왜 하나님께 이것을 요구하는가?"
 
 "그것은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가?"
 
 "내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동기가 무엇인가?"
 
 이것은 기도에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 아들아, 내 딸아, 네가 나를 신실하게 사랑한다면, 네가 내 왕국을 사랑한다면, 내가 네게 동감하고 네 요구에 응답해 주겠다." 우리가 올바른 태도와 선한 동기를 갖고서 기도할 때에,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 하나님께는 무한한 기쁨이 된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계시므로, 성도들이 선한 동기를 갖고서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듣고자 귀를 기울이신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존경하고 경배하며 그분의 지고한 영광을 중요시 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항상 응답하실 것이다. "그분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귀한 자리에 모실 때 그분께서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으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욱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중하실 것이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겠다"(삼상 2:30)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대해 동감하지 않는다면 하나남께서 여러분에 대해 동감하지 않으시며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여러분이 신실하게 그분의 왕국을 먼저 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경청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 여러분 편에 서지 않으시거나 여러분을 받아주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의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가 될 때, 우리의 관심사와 하나님의 관심사가 서로 일치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교통과 친교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로 이끄신다. 우리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로 연합되어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자 천지를 진동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굴복시키는 것이 그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러한 마음의 태도, 곧 아주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이 굴복되어 있어서 우리로 인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게 될 그런 태도를 지녀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의 기도에 항상 응답하셨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으셨을 때에,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변화되셨을 때에 하늘로부터 들려왔었던 그 말씀으로 설명되어진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마 17:5).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기뻐하셨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늘상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그리고 자발적으로 복종하셨으며, 당시의 모든 일상생활 가운데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그런 태도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이런 마음의 태도를 지닐 때 하나님께로부터 넘치는 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부르짖기도 전에 그분께서 응답하실 것이며, 우리가 아직도 말씀을 아뢰고 있는 동안에 그분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순종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철저한 순종은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이다. 여기서 율법이란 용어는 계시된 하나님의 뜻 전체를,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칭한다. 귀를 돌이킨다는 것은 순종하기를 기꺼워하지 않는 것, 곧 불순종을 말한다. 불순종하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다.
 
 귀를 돌이킨다는 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에 주의를 집중하기를 게을리 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거나 게을리 하는 모든 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귀를 돌이킨다는 말의 참뜻이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바쳐진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깊이 갈망할 때에 여러분의 기도는 응답될 것이다.
 
 그리스도안에 거함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6, 7)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만 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성령님 안에서 살고 활동하며, 철저하게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연합되어져야 하며, 그리하여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원인이 우리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성령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영적 상태,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리스도의 영의 직접적인 다스림 아래에 있을 때,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 어떤 것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는 아주 청결하고 거룩한 마음상태 속에 있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거할 때, 우리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항상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제한 없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눈여겨보라.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계시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어떤것을 갈망하지도 않으며 그런 것을 위해서 기도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롬 8:26,27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기도하도록 성령님께서 친히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성령님께서 참된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런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안에 거하지 않으면 기도할 때에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의 기도는 , 그리스도께서 친히 기도하실 적마다 지니셨던 정신과 동일한 정신 속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닐 것이다. 결국 그이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것이다.
 
 깊은 갈망
 
 기도에 있어서 말씀을 아뢰는 것과 강한 갈망을 갖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다. 우리는 롬 8:26,27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들을 위하여 간하시는 성령님의 강렬한 갈망에 관해서 읽는다. 기도할 때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항상 강한 갈망을 갖고서 기도할 것이다.
 
 이러한 깊은 갈망 속에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방향과 방법대로 기도에 응답하시길 바라는 소망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이런 식으로 응답해 주셨으면'하고 바라는 방향이나 방법과 같은 그 어떤 조건도 기도 속에 넣어서는 결코 안된다.
 
 깊은 갈망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자발적으로 묵묵히 희생하며, 수행하며, 요구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수반한다.
 
 비이기적인 동기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한 조건의 하나는 그러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 자신이 이기심 없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우리가 기도 드린 후 그에 대한 응답을 간절히 갈망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생각하실 만한 동기를 가지고 기도하며 응답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의 동기나 목적은 반드시 하나님의 것과 동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모든 기도에 있어서 여러분이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바는 반드시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광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하든지 간에 그 기도의 근본적인 목적은 반드시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광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믿음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2,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리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 21:21, 22).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치셨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응답받는 기도를 위한 조건의 우리가 이렇듯 전능하신 하나님을 반드시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기도와 관련하여 언급되는 경우 보다 강조되는 믿음의 의미를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을 것임을 확신하는 기대(a confident expectation)이다.
 
 믿음의 기초는 무엇인가? 믿음은 비이성적이거나, 어리석거나, 무모한 것(a leap into dark, 잘 살피지 않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선적으로, 바로 하나님 자신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기초시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진 믿음의 기초가 되신다는 사실은 곧 그분이 다음의 두 가지를 소유하고 계심을 가르쳐 준다. (1) 권능, 즉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 (2)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도(God's Willi-ngness). 우리는 하나님이 전지, 전능, 편재하셔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발적이시라는 사실도 반드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자발적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속에서 당신 자신을 우리의 무한한 사랑의 아버지로 계시하신 그분의 계시를 통해서, 그리고 두 번째로, 그분의 말씀 가운데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벗어나 나는 어떤 것도 약속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 즉 달리 말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언약하신 바에 일치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과는 관계없이 응답하실 것이 라는 단순한 감정은 믿음이 아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기초를 두었을 때, 즉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에게 기초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약속하신 바를 실천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에 반드시 근거되어야 한다. 만약 기도하려는 내용의 근거가 될 만한 특별한 약속이 성경속에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믿음으로 기도하기 위해 성령님의 인도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안내
 
 우리의 기도가 즉각적으로 응답되어지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반드시 인내하며 기도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말씀은 인내하는 믿음의 표본이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5:7). 농부가 자신의 수확을 기다리며 가을비와 봄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확신하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굳세게 믿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길 인내하며 기다림은 승리하는 기도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하나님의 시간선택(God's timing)은 최선이며, 그분께서는 응답하시기에 가장 좋은 시간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뜻
 
 우리의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제한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문제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속에서, 즉 그분의 계시된 뜻 가운데서 우리에게 해주신 약속들에 의해서 알 수 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 15).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 그분의 목적과 계명들, 그리고 약속들은 성경 속에 계시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따라서 무엇을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들어주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요일 5:14,15의 의미는, 여러분이 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면서 기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고후 12:7-10에 기록된 바울의 기도를 보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기도하는 것은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주님, 제가 주님께 이러이러한 것을 해주십사 하고 간구드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든지 다 좋사오니, 이는 주님께서 무한히 지혜로우시며 선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함을 뜻한다. 고후 12:7-10에 있는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가운데 아뢴 기도였고,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마 26:38,39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가운데 아뢴 기도였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때때로 우리는 기도하려는 내용과 관련된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있을 만한 말씀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를 당한다.
 
 그런 경우에는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기도해야만 한다.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서서"(마 26:39). 이것이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이 기도한 방법이며, 또한 삼하 12:15-23에서 다윗이 기도한 방법이다. 다윗 자신의 아이를 치유해 주시를 간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만한 어떤 특별한 약속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도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시는 가운데 기도했다. 그리도, 바울, 그리고 다윗은 어떤 계시된 특정한 약속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의 천부이신 하나님께서 가지신 성품 중 하나인 우리가 신뢰할 만한 사랑과 자비에 근거해서 기도했다.
 
 신약과 구약 속에는 계시된 하나님이 뜻이 담겨져 있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해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알아야 하고, 그로 인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성령님의 깨우쳐주심과 이해주심의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롬 8:26,27에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도우신다는 것과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신 다는 사실을 읽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시며 우리 편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고자 우리를 사용하신다. 우리 속에 거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해 기도하시며 우리 편에서 중보의 간구를 하실 때에, 우리는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중보기도는 결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요 14:17)이시다.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며(요 14:26).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6:13).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에,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 편에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도록 인도하신다. 이것이 성령님의 중보(仲保)사역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중보사역에 의해서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느끼시는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무엇을 의도하시는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항상 마음과 뜻이 일치하는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있다(고전 2:11-16).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 곧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시므로 우리가 기도시에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거주하시는 성령님이 없이는 성경 속에서 특정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많은 문제들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깨우쳐 주시며 지도하고 이끄시는 성령님을 모셨기에, 즉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제3장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의 유형들
 
 신실한 회개가 결여된 기도
 
 성경은 우리에게 용서를 간구하기 전에 먼저 회개할 것을 요구한다.
먼저 회개하지 않은 기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기도가 된다.
 
 "그러므로 너의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의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행 8:22, 23).
 
 행 8:22,23에 말씀은 베드로가 마술사 시몬에게 한 말이다.
전도자 빌립의 수고로 사마리아에 부흥이 일어났다. 마술사 시몬을 비롯한 수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신앙을 고백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교회들과 신학교들 속에 있는 어떤 사람들의 경우처럼 마술사 시몬의 신앙고백은 진짜가 아니었다. 여러분은 어떤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여러분의 신앙고백은 진짜인가? 여러분은 성령님으로 진정 거듭났는가?
 
 마술사 시몬은 그가 소유한 마술능력으로 인하여 사마리아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빌립이 사마리아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며 많은 기적들을 행하자 마술사 시몬은 대단히 놀랐다. 그는 교인이 되에 세례를 받았고 어느곳이든 빌립을 따라다녔다.
 
 사마리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듣고서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다. 베드로와 요한이 새신자들에게 안수했고 그래서 새신자들은 성령을 받았다.
 
 이 일은 실로 마술사 시몬을 놀랍게 했는데, 우리는 행 8:18,19에서 마술사 시몬이 이 새로운 능력을 사도들에게서 사려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내놓았다는 것을 일게 된다.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의 마음이 이기적임을 단번에 알아보고서 대답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기될 것도 없느니라"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에게 그의 의무에 관한 지침을 주었다. "그러므로 (먼저)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그리고 나서) 주께 기도하라. 혹(네)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우리는 베드로의 날카로운 영적 분별력을 본다. 마술사 시몬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을 하고, 자신이 거듭났다고 공언을 하고, 또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진정으로 회심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복음과 정신에 부합되어 있지 못함을 베드로는 알아차렸다. 마술사 시몬은 자신의 옛이기심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위대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자기처럼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사람들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성령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그들이 자신에게 줄까싶어 그들에게 돈을 바쳤다. 베드로는 그 사람의 무분별함과 영적인 무지를 명확히 알아보고서 그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했다.
 
  1.회개란 무엇인가?
 
 (1) 회개는 조에 대한 자각(conviction of sin)이 아니다. 죄에 대한 자각은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성적으로 갖게 되는 비자발적인 마음 상태(involuntary state of mind)이다. 그것은 자신이 범한 죄악의 실상에 대한 지식이며 지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도 이런 식의 죄에 대한 자각을 한다.
 
 (2) 회개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슬픔은 기분과 감정의 상태이며, 죄에 대한 자각과 마찬가지로 비자발적인 것이다. 교도소 내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붙잡혔기 때문에 슬퍼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슬퍼한다 해서 죄악을 진심으로 회개했다고 볼 수는 없다.
 
 (3) 성경이 말하는 참된 회개는 지, 정, 의 등 전인격적인 변화의 관계되어 있다. 즉 회개는 앞에 설명한 자신의 범죄에 대한 자각(知)과 그로 인한 슬픔(情)과 함께 이기적인 태도로부터 비이기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자비로운 태도(benevolent attitude)로 철저히 돌아서는 의지적인 결단(意)까지도 포함한다.
 
 2. 회개 속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는가?
 
 (1) 죄에 대한 자각. 자신이 죄악을 범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은 회개의 첫 번째 단계이다.
 
 (2)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함. 그는 반드시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여서 하나님이 옳고 자신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3)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함. 마음이 이기저인 사람은 정직할 수 없다. 그는 속이는 자이다.
 
 무엇이 정직인가? 정직이란 마 7:12과 마 22:27-30에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다. 정직은 첫째로 하나님의 권리를 존중하고, 둘째로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그들의 진정한 가치에 따라서 존중하는 것이다.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부정직한 사람이다.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속이는 자이다. 자기 자신의 권리와 이익이 하나님의 것보다 또는 자기 이웃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그와 같은 이기적인 태도는 그릇되고 부정직한 것이다.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자기 이웃에게 속한 것을 자기 이웃에 돌린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훔친 것이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소유주이심을 증명하는 3가지 증거(a Three Fold Claim)가 있다.
 
 첫째,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셨다.
 
 둘째, 그분은 그분의 섭리로 우리를 살아가도록 지켜주신다.
 
 셋째,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를 속량(贖良, 값을 주고 다시 사들임)하셨다.
 
 스스로를 소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유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로서 시행해야 할 첫 번째 사항(the first thing)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반드시 되돌려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로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시간, 재능, 재산, 힘, 권세를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도, 그리고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도 아니다.
 
 (4) 하나님과 자신이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죄를 고백함. 자신이 범한 모든 죄악을 완전히 고백하기 전에는 누구도 자신이 회심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예를 들어서, 만일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비방했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범한 모든 잘못을 반드시 고백하고 그것을 취소해야 한다.
 
 (5) 손해배상(restitution) 자신이 이웃으로부터 취한 것을 반환하지 않은 사람은 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삭개오는 회개한 후에 즉시로,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고 선언했다(눅 19:8), 바로 이것이 진정한 손해배상의 정신이다.
 
 (6) 복음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내어버림. 여러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세속적인 옷차림, 세속적인 인들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어떤 종류의 사업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것들인 부정직한 사업수단들을 반드시 내버려야 한다. 진정한 회개는 어떤 형태의 이기심과도 공존할 수 없다.
 
 (7) 자신의 삶의 전적인 개혁, 회개는 온갖 종류의 죄악에 관련되어 있는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알려져 있는 모든 죄악들을 반드시 버리고 단념해야 한다. 어떤 형태의 특정한 죄악을 계속 범하는 사람은 회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회개는 성경적인 회개가 아니다.
 
 (8)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만일 여러분이 진정으로 모든 죄악을 회개한다면 여러분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다.
 
 3. 왜 죄인들을 먼저 회개하고, 그리고 나서 용서받기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받고 있는가?
 
 마술사 시몬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을 했고 또 세례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술사 시몬이 성령님의 은사를 사려고 베드로에게 돈을 바쳤을 때, 베드로는 즉시로 그가 회심하지 않았다고 추정했다.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이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마술사 시몬에게 한 첫 번째 말은 회개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개는 언제나 죄인이 취해야 할 첫걸음이다.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에게 기도하고 나서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마술사 시몬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도록 반드시 회개해야만 했다.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첫걸음은 회개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이기심을 버려야 하며 여러분의 죄악을 끊어버려야 한다. 회개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하나님께서 자비와 용서를 베푸실 수 있는 것이지 그 전에는 베푸실 수가 없다. 자시의 모든 죄악을 자발적으로 회개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여 용서를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죄악을 지닌 채로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한다면 그 행위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현재의 이기심을 진정으로 포기할 의도가 없다면 여러분이 하는 용서를 간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에게 즉각적으로 회개할 것을 요구했다.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고자 성령님의 은사를 구매하려고 시도했던 것이 잘못임을 마술사 시몬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대단히 심각한 죄악이었다. 만일 마술사 시몬이 자신의 영원한 영혼을 소중히 생각했다면 그는 반드시 즉각적으로 회개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범죄하였으며, 자신의 마음 상태가 여전히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즉각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마술사 시몬의 당면과제(當面課題, present duty)였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판별하시는 방법이다. 만일 우리가 마술사 시몬처럼 어떤 죄악을 움켜잡고 있다면 회개하는 것이 우리가 즉시로 실행해야 할 당면과제이다. 회개를 거부하고 저항하면 할수록 우리의 상태는 더 악화되고 위험해진다. 성경을 기록한 모든 영감받은 저자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첫 번째 의무는 즉시 회개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4.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우리는 죄인들에게 즉시로 회개하라고 권면한 베드로와 성경의 위대한 사람들의 본을 따라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음미해 보자. 자유로운 인격체인 인간이 이기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불순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가? 바로 회개이다! 불순종하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진로를 바꾸어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 밖의 어떤 일보다도 앞서야 하는 첫 단계이다.
 
 여러분이 죄인에게 회개하라고 말해주지 않고 오히려 기도하도록 말해준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는가? 그 죄인이 "주님 제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하겠는가? 그러나 만일 그가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지 않았다면 용서를 간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이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가 없다. 회개 없이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가 없다. 회개 없이 용서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함과 같다. 사람의 첫째 의무는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가 따랐던 것과 동일한 순서규칙(order of procedure)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마술사 시몬에게 먼저 회개하고, 그리고 나서 용서받기 위해 기도하라고 말했다. 성경은 조인들에게, 그들의 첫째 의무는 회개하는 것이라고 명령한다!
 
 유대 광야에서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고 소리쳤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의 뒤를 따라서 동일한 말씀으로 회개하려고 선포하셨다.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동일한 말씀으로 회개하려고 외쳤다.
 
 그들은 감히 그 밖의 다른 어떤 말씀을 설교하지 않았다. 반드시 인간은 무엇보다도 먼저 회개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이 죄인임을 안다. 심지어 어린이들조차도 자신들이 죄인이란 사실을 안다. 성경은 우리가 모두 죄인임을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다. 죄인들은 종종 자발적으로 기도하려고는 하면서 기꺼이 회개 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죄인이 회개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그릇의 내부는 더러운 채로 두고서 외부만을 깨끗이 하는 것과 같다. 특히 회개한다는 것은, 그릇의 외부보다는 내부를 깨끗이 함을 의미한다. 회개한다는 것은 죄인이 자신의 모든 이기심으로부터 반드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죄인이 그렇게 행한다는 것은 반드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죄인이 그렇게 행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기에 얼마의 돈을 훔친 사람이 있다. 그는 누군가 딴 사람을 속여서 그 돈을 빼앗았다. 그는 그것이 잘못임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는 발각되어 망신당하게 되는 것을 또한 두려워 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내가 무엇을 할까?"하고 묻는다. "내가 회개하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까? 아니면 기도를 먼저 할까?" 그는 자신이 훔친 것을 고백하고 회개하고 반환하기를 심히 싫어하면서, "내가 기도해야지. 내가 기도하면 아마도 주님께서 날 용서해 주실거야"라고 말했다.
 
 안된다! 그래선 안된다! 여러분이 먼저 회개하기 전에는 기도한다는 것이 전혀 쓸데없는 일이다. 먼저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그것을 고백하고, 자신이 훔친 것을 반환하라. 그리고 나서 기도하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다. 자신의 죄악을 먼저 회개하지 않고서 자신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모욕하지 마라! 돈을 훔치는 것은 죄의 한 가지 종류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종류의 죄악을 상징한다고 해보자. 당신이 범죄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당신 자신을 떼어놓는 행위이다. 이는 하나님의 소유인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약탈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회개하라! 내게로 돌아오라! 네 자신을 나에게 반환하라! 네는 내소유이다!" 여러분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기도해야 되지 않느냐?" 고 묻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먼저 회개하라. 먼저 훔친 물건을 되돌려 주어라. 그리고 나서 네가 기도할 수 있다!"
 
 마 5:23,24에 있는 이 순서규칙을 신중하게 살펴보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의 율법과 구약의 희생제도를 철저히 준수했던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다. 죄에 대한 용서를 받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성전 제단으로 가서 희생제물을 버티고자 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설명하시기를, 만일 그들이 누군가 다른 이에게 범죄한 것이 생각나면, 예를 들어서 누군가로부터 도적질한 일이 생각나면, 그들은 반드시 먼저 손해배상을 하고 화해하여야 하며, 그리고 나서야 제단에 가서 제물을 드릴 수 있다고 하셨다. 한마디로 '회개 먼저, 사죄기도 나중(Repentance first, prayer for forgiveness second)'이다. 이것이 회개와 죄용서를 위한 간구에 대한 성경적인 순서규칙이다.
 
 몇 년 전에 어떤 신학생이 학교 사무실에서 돈을 훔쳤다. 그는 단지 학교에서만 돈을 훔친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돈을 훔쳤기 때문에 교도소에 가야만 했다. 후에 그의 일기장이 발견되었다. 그는 돈을 훔치며 다니는 기간동안에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평안이 없음을 느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간구하여 평안을 얻으려고 산에 있는 기도원에 갈 참이었음을 적어 놓았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순서규칙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회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기도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죄용서와 마음의 평안을 간구하면서도 동시에 회개하고 자백하고 자신이 훔친 것을 반환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들어주실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가 즉각적인 회개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파악하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다. 회개하기 전에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가 없으며 따라서 마음의 평안도 누릴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를 회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자세이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어떤 이들은 죄를 짓고 있으면서 단지 형식적으로만 기도할 뿐(pray only a form of prayer) 회개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마음과 죄악들을 그저 덮어 감추려고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회개하면 여러분을 용서하고 여러분에게 복주시고자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계신다. 여러분이 성실하게 자신의 죄악과 단절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받아 주신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누가복음 15장에서 말씀하신 탕자와 비유 속에서 설명되고 있다. 그 아들이 회개하며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기뻐하며 아들을 안으려고 달려나갔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용서해 주실 준비를,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실 준비를 해놓고 계신다. 그러나 반드시 여러분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 여러분의 마음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헌신없는 기도 ;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함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말 3:8).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갖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가장 기본적인 실례와 그러한 죄를 범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살펴보자.
 
 1.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실제적 예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의 소유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양육하신다. 우리 모두와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 우리의 재능, 우리의 권세, 우리의 물질적 소유물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런 것들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움켜쥐고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남의 가게에 들어가서 금고에서 돈을 탈취하면 여러분은 강도질을 하는 것 이된다. 그런데 만일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움켜쥐고 있다면, 여러분은 가게를 약탈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죄악인 하나님의 것을 약탈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은 금고 속의 돈이 상인의 소유라는 것보다 더욱 명확한 사실이다.
 
 여러분의 모든 재능, 재산, 그리고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그분께서 요구하신다는 사시를 여러분은 분명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만일 여러분이 삶을 산다면, 여러분은 실제로 하나님의 것을 약탈하는 것이다.
 
 도적질이나 약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아무런 권리가 없는 물건을 원주인의 허락없이 빼앗는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정하게 빼앗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것을 훔치거나 약탈하는가?
 
 첫째로 우리가 당연히 드려야 할 헌신, 봉헌, 그리고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것이 곧 하나님에게서 약탈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재능, 시간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바치지 않는 것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약탈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다른 신들을 섬겨서는 안된다"고 선언한다. "너희가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다른 신들을 섬겨서는 안된다"고 선언하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0).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첫 번째 계명이다. 이 계명보다 더 크거나 더 중요한 다른 계명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가 그분만을 섬기는 데에 온전히 봉헌(헌신)되어져야 함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을 앞세운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대시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섬긴다면 이는 하나님에게서 약탈하는 행위이다.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께로부터 합법적인 그분의 소유를 탈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자의 당면과제
 
 사람이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중심으로 반드시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어리석고 미련하여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지 않고 제 자신의 만족과 이익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제 시간을 제 자신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저는 어리석게도 제 자신을 위해 저의 정신과 신체의 능력을 사용했는데, 그것들은 실제로 주님의 것들입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제 발과 손과 혀와 온 몸을 제 자신과 사단을 섬기는 데에 사용했음을 고백합니다. 이 크고 두려운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드립니다."
 
 이렇게 겸손한 자세로 주님께로 되돌아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과거를 원상복구하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여러분의 생(生)에서 어제라는 책장(the pages of yesterday)은 이미 더러워져 있다. 여러분은 자신이 낭비해버린 과거의 삶, 시간, 힘을 본래대로 회복시킬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모두 봉헌할 수는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주님을 섬기는 데에 온전히 바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겸손하게 그분 앞으로 나아가서 우리가 저지른 과거의 약탈과 도둑질에 대해 용서를 빌고, 이 시간부터 앞으로는 그분을 섬기는 데에 우리의 남은 인생을 헌신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며 올바르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많은 돈을 약탈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약탈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고 있고, 또 그 사람 역시 여러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여러분께 와서는 용서를 빌지도 않고 손해배상을 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여러분의 우정을 요구하고 또한 여러분으로부터의 특별한 호의를 요구한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여러분의 돈을 도적질했음을 전혀 고백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게 되겠는가? "너는 내 돈을 훔친 자가 아니냐? 네가 나한테서 훔친 돈은 어디 있느냐? 네가 지금 마치 나에게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듯이 내게 와서 내 우정을 요구하며 내 호의를 요구한단 말이냐? 어림도 없다. 썩 꺼져 버려라!"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약탈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죄악에 대한 어떠한 고백도 없이 기도로 하나님께 접근하여 그분의 사랑과 복과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기를 거절한다면,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복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은,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모든 죄악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분의 용서를 구하고, 동시에 우리의 여생을 그분을 섬기는 일에 완전히 봉헌할 것을 결심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훔친 것, 즉 바로 우리의 인생을 그분께 되돌려드려야 한다. 우리의 생명과 영혼과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합법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이다.
 
  3. 회개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의 죄악이  큰지 생각해 보라. 우리들 각자는 하나님께 대해 강도죄를 범한 자들이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서 1억원을 약탈해 가서는 그것을 전부 써버렸다고 가정해보자. 돈을 다 쓴 후에 그 사람이 거지처럼 누더기를 걸치고 여러분이 집 대문 앞에 들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에게 용서를 빈다. 여러분이 그 가엽고 굶주린 사람을 바라본다. 그가 홀리는 참회의 눈물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그를 집 안으로 불러들인다.
 
 그를 위해 목욕물을 준비하고, 새 옷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고, 또 그를 편안하게 해주기를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한다. 사실 이렇듯 관용과 사랑 어린 친절을 베푸는 것은 매우 보기 힘든 특별한 경우이다. 자신에게서 그렇게 많은 돈을 약탈해간 사람에게 그와 같은 일을 행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데 이런 일조차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범죄한 죄인들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빼돌렸다. 우리는 눅 15:11에 나오는 탕자와 같다. 탕자를 보라. 더럽고, 찢어지고, 낡고 헤어져서 너덜거리며, 악취가 코를 찌르는 의복을 걸치고 있다. 그의 차림새 속에는 아무런 매력도 없다. 그는 더 이상 그의 아버지의 아들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죄악이 그의 특성들을 철저히 파괴시켜 버렸다. 그런데 그가 아직도 저 멀리 있을 때 아버지가 그를 보았다. 그 아버지가 어떻게 했는가? 앞으로 달려나가서 자신의 아들을 맞이했다. 그는 팔 벌려 아들을 끌어안고서 아들의 목덜미에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 그는 가장 좋은 옷과 살찐 송아지를 주문하고, 그리고 돌아온 아들을 축하하나는 잔치에 자신의 모든 친구들과 친척들을 초청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참회하는 죄인들을 환영하시는 방법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며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유하신다. 아버지가 제멋대로 행한 자식을 받아들였듯이 하나님께서 죄인을 받아주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약속하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이 얼마나 큰가!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누더기를 걸치고 돌아오고 있는 탕자를 볼 수 있다. 그는 창백한 얼굴, 허약한 몸, 후들거리는 다리로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그 아들의 마음을 온통 휘감고 있는 괴로움, 곧 제멋대로 악하게 살았던 자신의 과거 때문에 수치스러워 하는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우리는, 깊은 사랑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신의 아들을 맞이하려고 달려나가는 아버지를 볼 수 있다. 아버지의 기쁨에 찬 말을 들을 수 있다. "아들아, 모든 것을 용서하다. 집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너는 죽었다가 이제 다시 살아난 내 아들이다. 너를 잃었다가 이제 다시 찾았구나!"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돌아오는 우리들을, 죄를 뉘우치는 죄인들을 받아주시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얼마나 큰 사랑인가!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적마다 하늘에 천사들이 기뻐한다는 성경의 말씀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4. 하나님의 소유를 하나님께로
 
 여러분이 마음 중심으로 부터 참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환영하며 맞아주실 수가 없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속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때때로 뻔뻔스런 태도롤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신실하게 말씀드려야 한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 과거의 악한 삶에 대해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저의 죄악들, 이기심만을 가지고 제멋대로 행동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인생을 무익하게 낭비해버린 습관을 회개합니다."
 
 "이제 제 인생 중 남아있는 부분을 주님께 되돌려 드립니다. 이제는 저의 생애가 제 자신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치루고 사신 바 된 주님의 것임을 인정합니다. 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렇다. 여러분이 각자 가지 자신의 과거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선하고 유익될 것이다. 자신이 지금 몇 살인가 생각해보라. 그리스도를 위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는지 헤아려보라. 자신을 위해서 사느라 낭비해버린 시간, 무익하게 보낸 모든 날들을 생각해보라. 여러분 가운데 많은 이들이 소리치게 될 것이다. "아아, 슬프다!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허송하며 낭비해 버렸구나. 사실상 나는 내 인생의 큰 부분을 마귀를 섬기는 데에 써버렸구나. 나는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의복을 입고서 그 옷이 다 닳도록 마귀를 섬겼구나. 나는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사랑으로 마련해 주신 음식을 사단을 섬기느라 수톤씩이나 먹어치웠구나.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해버렸구나."
 
 그렇다. 그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다. 우리는 모두 탕자요, 탕녀들이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보다는 사단을 섬기며 세월을 보내면서 우리의 인생을 낭비해왔다. 한마디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귀중한 소유물인 우리 자신의 인생을 약탈했다.
 
 세 가지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첫째로,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 둘째로, 그분께서 계속적으로 우리를 부양하고 계신다. 셋째로,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를 되사셨다.
 
 바로 지금 우리 모두 그분의 뜻에 철저히 순종함으로써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양도해 드리자. 이 순간 우리 모두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봉헌하여 우리의 모든 느낌, 모든 생각, 모든 감정들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완전히 일치하게 하자. 우리 모두 우리의 몸과 영혼을 살아있는 제물로, 하나님께 받으실만한 거룩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자.
 
 여러분이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여러분에게 복주실 것이고, 여러분은 주님으로부터 여러분에게 그리고 그분의 왕국에 유익되고 가치있는 모든 것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이 기도로 요청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드리는 여러분의 간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분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다. 기대와 믿음 가운데서 주님을 향해 여러분의 영혼을 열고서,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쏟아부어주길 바라시는 엄청난 복들을 받으라!

 제4장
  기도에 대한 보상과 약속
 
 사도들의 기도회-오고 오는 모든 세대를 위한 모범
 
 "제자들이 감람원 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보고,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 1:12-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약속된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리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기다리며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계속하여 기도를 했다. 온 세상으로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들의 큰일이요 사역이라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성령님의 세례를 받지 않고서는 이 크나큰 사역에 있어서 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도 설명해 주셨었다. 이 말씀에 따라 성령님의 임재를 위한 기도회는 오순절이 될 때까지 열흘간 계속됐다.
 
 1. 이 기도회의 특징들은 고찰해 보자.
 
 (1) 모든 형제들과 자매들이 전부 참석했다.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그들 모두가 참석했다고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다 거기 있어...전혀 기도엔 힘쓰니라" 15절에서 우리는 그들의 수가 남녀 120명이라는 내용을 읽게 된다. 11명의 제자들 전부와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이 함께 있었다. 그들 가운데 다른 어떤 일이나 사업에 붙들려서 그 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은 단 사람도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들에게 참석하라고 명령하셨었던 것이다.
 
 그들 가운데 그저 절반만 그 기도회에 참석했으면 어떠했을까? 나머지는 자신들과 사업을 하러 가버리고 말이다. 아니, 그 기도회를 위해 그저 4, 5명만 모임을 가졌다한들 무엇이 어떻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 중에 한 사람, 단 한 사람이라도 불참해 버리기엔 이 기도회가 대단히 중요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 기도회만큼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전부 그곳에 있었다.
 
 우리도 역시 기도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하여 그와 동일한 태조를 취해야만 한다.
 
 (2) 120명 전원이 그 기도회의 목적에 최고의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이 그들의 기도의 목적이었던가? 그들은 왜 함께 모였는가? 왜 그들은 그토록 기도의 목적이었던가? 그들은 왜 함께 모였는가? 그들은 열흘 동안이나 기도를 계속했다. 그 기도회의 목적은, 그들이 성령님으로 세례받고 충만해지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성령님으로 세례받고 충만해지는 것을 극도로 갈망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아닌가? 우리도 성령님으로 충만해지기를 지극히 갈망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도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려는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3) 그들 모두는 성령의 세례와 충만함이라는 약속되 복을 받을 줄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순간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었다. 자신들이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 강한 확신, 강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질 줄로 기대해야만 한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믿음과 기대를 갖고서 성령충만을 간구해야 한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지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달리 어떻게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 of our Lord, 예수님께서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마 28: 19-20의 내용을 가리킴-역자주)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4) 모든 제자들 곧 120명 전원이 하나되어 있었다.
 
 그들은 한마음 한뜻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행전은 그들이 한마음 한뜻이었음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들은 성령충만이라는 엄청난 복을 얻고자 하는 하나의 소망과 기대로 일치해 있었다. 온 세상에서 성령 충만이라는 복보다 더 콘 복은 없다. 모든 제자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려는 동일한 동기를 지니고 있었다. 제자들 중의 그 어느 누구의 마음속에도 잘못된 동기, 이기적인 동기, 숨겨진 딴 속셈은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왕국과 교회의 확장과 설입을 위하여 그들은 성령충만이라는 복을 추구하고 있었다.
 
 (5) 모든 제자들이 서로 사랑했다.
 
  그들은 서로를 깊이 믿고 신뢰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쓴맛 곧 미움이 없었다. 그들은 요일 3:14에 요한이 기록한 것과 같은 마음 자세를 갖고 있었다. "우리가 형체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초대교회를 구성하였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사랑과 신뢰로 하나되어 있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강력한 교훈이 되는가! 오 하나님이시여, 우리의 사랑 없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의 쓰디씀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우리의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해 악하게 떠들어댄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6) 그들은 참을성 있게 계속하여 기도했다.
 
 행 1:14는 그들이 한마음으로 기도를 계속했다고 우리에게 말해준다(한글 개역 성경엔 "기도에 전혀 힘썼다"로 표현되어 있음-역주자). 그들은 포기하거나 의기소침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구약에 나오는 야곱과 같이 끈질기게 기도하였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에게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재하실 것을 약속하셨음을 기억하고 있었고, 성령충만을 받을 때까지는 자신들의 기도를 멈추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은 복이 다가올 때까지 참을성 있게 버티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여러분은 나약한가? 영적인 능력이 없는가? 끈질긴 기도로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구하라! 중단하지 말라! 단념하지 말라! 성령충만을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라!
 
 (7) 그것은 지극히 진지한 기도회였다.
 
 그곳에는 냉랭한 기도, 죽은 기도, 무관심한 기도가 없었다. 그들의 기도는 그들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진지해야 한다. 매일매일마다, 인생의 매순간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반영할 수 있기 위해 성령님으로 충만해져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을 우리가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충만이라는 약속된 복을 지극히 진지하게 추구해야 한다.
 
 2. 그 기도회의 결과들을 고찰해보자.

(1) 그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해진 바로 그 첫 날에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3,000명이 회심했다.
(2) 120명의 제자들 모두가 성령님으로 충만해졌으며, 엄청난 능력으로 각자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신앙에 대해 증거했다. 이 일은 복음이 풍성하게 멀리 전파되는 결과를 낳았다.
(3) 세상을 그리스도께서 회심시키는 엄청난 일과 사역이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큰 능력으로 세워졌다.
 
 3.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지녔던 특성들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실제로 있는지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보자.
 
 (1) 자신이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복을 받는 일에 최고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 관연 얼마나 될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과 길 잃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내는 일에 실제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2) 특별히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려고 기도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자신들을 성령님으로 충만케 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3)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성령충만이라는 이 큰복을 받고자 마음과 뜻이 하나되어 있는가? 자신의 마음이 꼭 성령님으로 충만해져야만 한다는 큰 부담을 느낄 만큼 성령충만의 복을 지극히 중요한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4) 서로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가? 우리는 초대교회의 제자들처럼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는 초대교회의 제자들처럼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5)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것처럼 우리는 기도를 참을성 있게 계속하고 있는가? 그들은 하늘로부터 응답이 올 때까지 참을성 있게 버텼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복을 받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 했다.
 
 (6) 끝으로, 우리는 자신의 기도에 참으로 진지한가? 우리는 깊은 갈망으로 주님을 향해 자신의 영혼을 쏟아 붓고 있으며 성령님으로 충만해지기를 추구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간 구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진정으로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주시고 우리를 녹여 주시기를 간 구하는가? 참으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를 갈망하며 열망하는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추구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마음이 차갑고 무관심에 빠져있으며, 그리스도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사랑과 죄악에 빠져있는 자들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지는 않은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했듯이 우리도 모두 기도로 주님의 은총을 구하자. 그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 누렸던 영적인 능력을 우리도 또한 소유하게 되리라.
 
 간절한 기도에 대한 보상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시편 81편의 기자는 기도에 관해 언급한 이 구절에서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교회가 신실하게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각각의 그리스도인의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일 놀라운 약속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믿는 각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일들을 간구하라고 권면하신 사실을 주목해 보라. 그분께서 우리에게 단순히 "네 입을 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넓게 열라고 하신다. "크고 어려운 것들을 내게 요청하라. 나는 이방인의 우상과 같은 연약한 신이 아니다. 나는 참되고 전능한 하나님, 우주의 창조자이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가 이루어내기에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능력과 권세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그 입을 가득 채워주겠다.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것들을 간구하라. 나는 한계가 없고 제한되지 않은 능력과 권세를 지녔을 즉 언제든지 너희의 구함에 한계를 느끼거나 제한을 두지 말라." 크고 어려운 것들을 하나님께 간구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명예를 높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우리는 항상 깨끗한 동기를 갖고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1. 네 입을 넓게 열라는 말씀과 내가 채우리라는 약속 가운에 내포되어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구분 자신의 자녀들에게 참으로 지극한 관심을 갖고 계신다. 교회 즉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사랑을 받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 대한 깊은 배려와 관심을 갖고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입을 넓게 열라고 권면하시지 않았을 것이며 내가 채우리라는 약속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2. 채워주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자발성
 
 (1)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하실 때에는 그분께서 명령하신 바를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겠다는 것도 약속하신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명령하시는데, 그러면서 그분께선 우리가 타오르는 비칭 될 수 있도록 성령님이라는 기름을 공급해 주신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의 개인적인 삶에 크나큰 관심을 갖고 계시며, 우리가 간구하는 것들을 베풀어 주시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그분은 능히 이렇게 하실 수가 있다. 그분은 부족함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필요한 만큼 풍족하게 공급해 주신다. 우리의 필요가 무엇이건, 우리의 처한 상황이 어떠하건 상관없이 하나님의 명령은 여전히 "네 입을 넓게 열라"는 것이며, 그분의 약속도 여전히 "내가 채우리라"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다"(시 81:10)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해서, "나는 네 구속자이다"는 말이다. 우리들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개인적인 관계에 주목하라. 그분께서는 개개인으로서의 우리들 각자에게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4)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인 상태에 관해서 생각해보라. 여러분의 특별한 필요에 관해서, 여러분의 개인적인 시련과 어려움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하신 책임 등에 관해서 생각해 보라.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인 이름으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며,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워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해보라. 바로 이것이 우리가 시 81:10을 이해하는 태도이어야 한다.
 
 (5)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셔서, 하나님께 대해 이방인인 죄인들의 세계 속에 배치해 놓으셨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이곳 세상 한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증인이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늘 네 신앙고백에 합당한 살을 살기를 원한다. 네 자신은 이 반역적이며 악한 세상 한가운데 있는, 복음을 위한 빛이라는 사실을 네가 명심하기 바란다. 네가 필요로 하는 그 어떤 것을 위해서든 내게 아뢰기를 결코 망설이지 않기를 바란다. 네 입을 넓게 열어라. 내가 채워주겠다. 나는 네가 성공하고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네 모든 필요를 원조해 주겠다고 내가 약속한다. 네 입을 넓게 열어라. 내가 채워주겠다."
 
 (6)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망설임 없이 확신을 갖고서 간구하여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간구하여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입을 넓게 열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것을 구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지금 내 자원이 무척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좀 이해해줘서 너무 많은 것을 구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말씀하신다. "네 입을 넓게 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기적인 목적 없이 신실하게 기도하는 한 우리가 언제 무엇을 구하든지 듣고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과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드셨다. 난공불락의 성으로 여겨졌던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며 또한 이를 지키셨다. 시 81:14을 보라.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그리고 또 16장 말씀을 보라. "네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과 능력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선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3. 큰 요구는 하나님께 명예와 영광을 드린다.
 
 우리가 늘 작은 은혜만을 구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 앞에 나아가서 큰 것들을 구하기를 기대하신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 큰 것들을 간구하기엔 내가 너무나도 무가치한 존재이다. 나는 오직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작은 은총만을 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진실로 적합한 마음 자세일까? 우리의 기도 내용(our prayer requests)은 무가치한 우리 자신이 아닌,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엡 3:20)의 위대하신 능력에 근거하여 결정되어져야 한다. 우리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선하심과 은혜에 의해서 결정되어져야 한다. 만일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걸맞는 작은 것밖에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은 실제로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그 사람은 단지 지옥의 불구덩이만을 구할 수 있을 뿐인데, 그 이유는 우리 모두는 영원한 저주를 받아 마땅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최소한의 자비라도 받을 만한 가치, 혹은 자격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라는 측정 기준에 준하여 간구하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들, 하나님의 진실하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풍성한 사랑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간구하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무한히 큰복들을 갖고 계시는데, 그것들은 만일 우리가 그저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선하심 가운데서 우리에게 베풀기를 갈망하시는 것들이다. 하나님께 큰 것을 간구하여 받으라.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아드님을 붙잡아 두려고 하시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한 선물과 희생제물로 대가 없이 내어주셨을진대, 우리가 하나님께 큰 것들을 간구하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큰 것들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가 하나님께 너무 많은 것을 구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분은 무한히 크시며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소유하고 계신 자원이 적거나 약하거나 가난한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여러분은 우리의 등불을 밝히기에 필요한 기름을 공급해 주시기엔 하나님이 아주 가난하시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하나님께 애걸복걸해야 하는가? "하루에 등불을 60분 정도만이라도 밝힐 수 있도록 다만 약간의 기름이라도 주옵소서"라고? 하나님께서는 풍부한 기름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충만을 누리길 원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성령님께서 충만하시길 간구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만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대단히 낮은 영적 상태 속에 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께 큰 것들을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큰 요청을 할 때 하나님 자신이 명예로워지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며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간구할 때 그분께서 기뻐하신다. 반면에 우리가 신실함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며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진정으로 기대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놀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큰 것을 주실 것을 기대하며 올바른 동기를 갖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구하는 바를 받을 것이다.
 
 4. 우리가 드리는 보잘 것 없는 작은 요청은 하나님께 불명예를 안겨드리는 행위이다.
 
 요 15:8을 보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이 구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진리들을 가르쳐 준다. (1)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2)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을 입증한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그 답은 시 81:10에 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우리는 오직 큰 요청을 할 때에만 큰 응답을 받을 수가 있다. 많은 열매를 위해 간구할 때에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우리가 적은 열매를 맺지 않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우리가 적은 열매를 맺지 않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명령하신 이유이다.
 
 보잘것 없는 요구, 작은 요청이나 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명예롭게 할 수 없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나 확신을 가지지 못하여 하나님께 큰 은사와 능력을 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적게 구하는 자는 적게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 단지 작은 것만을 기대하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그저 작은 것이나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네 입을 넓게 열라"고 권면하시는데 우리는 입을 여는둥 마는둥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1장에 있는 기도에 관한 예화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물며 너의 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무엇을 주신다는 말인가? 사탕인가? 오렌지인가? 사과인가? 아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주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큰 보물이자 복은 성령님의 능력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너를 성령님으로 충만히 채워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거의 주시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자구 영적으로 굶주린 삶을 산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의 참된 가르침인가?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뼈대만 앙상한 모습으로, 영적으로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돌아다닌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인가? 관연 하나님은 성령님을 주실 수 없을 만큼 몹시 인색하신가? 아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틀림없이 진정으로 하신다. 하나님께 성령님을 구하라! 그분께서 성령충만을 주시길 갈망하고 계신다. 우리는 성령충만을 구하기를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한다.
 
 5. 우리의 책임완수와 기도의 관계는 무엇인가?
 
 (1) 우리가 성령충만을 위해 진지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함에 대해서 우리가 변명할 수 없다.
 
 (2) 우리의 책임을 달성하기 위한 성령님의 충만을 간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잔혹한 짓을 하는 것이다.
 
 좋은 음식으로 가득한 집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가 먹지 않아서 굶주려 죽을 지경에 있다. 그는 제공된 음식을 먹기를 거부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잔혹한 짓을 하는게 아닌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굶주리기를 원하시는가? 아니다! 그분께선 영적인 음식을 제공해 주셨으며 다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게 구해라. 네 입을 넓게 열어라. 내가 가득 채워주겠다!" 간구하기를 거부하는 것, 곧 우리의 입을 넓게 열기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께 큰 욕을 돌리는 것이다!
 
 (3)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영적으로 굶겨가면서 우리의 삶 속에 성령충만하기를 간구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세상에 대해 잔혹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온 세상으로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굶주려 있고 힘이 없고 피골이 상접해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이 명령을 준행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반드시 영적으로 강건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 길이 있다. 그 길은 우리의 입을 넓게 열고서 깊고 큰 성령충만을 주님께 간구하는 데에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마다 입을 넓게 열고서 하나님께 성령충만을 진지하게 간구하기 바란다. 그러면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께 회심하겠는가! 영혼들이 그리스도께로 회심하지 않는 이유와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입을 넓게 열어서 우리의 삶 속에 성령님의 능력이 충만하게 임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믿음을 존중하신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하나님께서 정확히 행하실 줄로 믿으며 기대해야만 한다. 적게 구하면 적게 받는다. 잘못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에게 있다. 많이 구하면 많이 받는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의 해석을 위한 규칙들
 
 1. 하나님의 약속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해석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무한히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관대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각각의 약속들을 반드시 약속된 의미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말씀하시거나 사시를 과장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실한 분이다.
 
 2. 하나님의 약속들은, 약속을 하시는 하나님과 그 약속을 받는 사람사이의 관계에 이해와 함께 해석되어져야 한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와 그의 자녀 관계이다. 이것은 약속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약속하신 바를 실행하는 데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심을 의미한다.
 
 3. 하나님의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깊이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우리의 죄값을 위해 죽도록 당신의 아드님을 주셔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한 희생제사를 실행함으로써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증명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해석되어져야 한다.
 
 이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바를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준행하실 것을 보증하는 명확한 증거이다.
 
 4.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복 주는 것을 무한한 행복으로 여기신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해석함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되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는 완벽하게 실현되어져 왔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들까지 성취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5.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기에 충분한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는 사살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해석할 때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하신 모든 약속들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갖고 계신다.
 
 6.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는 사실(고후 1:20)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해석할 때에 충분히 고려 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다양한 여러 사람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은, 비슷한 상황 속에 있는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에 위해서도 그 약속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되어질 수 있다. 과거에 계셨던 하나님이 바로 현재 계신 하나님이시다. 구약시대에 어떤 한 개인이나 혹은 여러 사람들에게 일찍이 약속하셨던 바를, 그분께서는 비슷한 필요를 지닌 현대의 성도들에게도 약속하신다. 신약을 쓴 영감받은 기록자들은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약속들을 자주 인용해서는 신약시대의 교회에 적용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비슷한 환경이 존재하는 모든 곳과 모든 시대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 "예"가 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예"가 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성취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값을 위한 희생제물로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다. 따라서 그분은 인류의 구세주이며 구속자이시다. 그분에게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복을 받을 수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께 속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들

"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우리 함께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생각해보자. 약속이란 누군가가 어떤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해주겠다는 선언 즉 공표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가운데서 자녀들에게 많은 것들을 주겠다고 공표하셨다. 이제 다음과 같이 4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하나님의 약속들에 관해 고찰해보자. (1) 하나님의 약속의 소유자인 그리스도인 (2) 하나님의 약속들의 내용 (3) 하나님의 약속들의 열매들, 혹은 결과들 (4) 하나님의 약속들에 관련된 그리스도인들의 의무.
 
 1. 하나님의 약속의 소유자인 그리스도
 
 하나님의 귀한 약속들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크나큰 특권이다. 하나님께서 농담이나 또는 거짓으로 약속을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예로써, 왕의 약속을 받았던 구약의 에스더 왕비의 명예와 특권을 생각해보자. 에스더 7장2절에서 우리는 아하수에로 왕의 약속을 읽게 된다.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이것은 왕이 에스더 왕비에게 한 분명한 약속이다. 같은 식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약속들을 해주셨다. 우리가 이 약속들을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며, 우리편에서 계시기 때문이다. 이 약속들은 실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구원과 대속을 이루고자 당하신 그분의 고난의 열매들이다. 이 약속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과 선한 의지의 선언이다. 이 약속들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근거이다. 하나님의 약속없이 아브라함이 어떻게 100세가 넘어 자식을 낳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도저히 불가능 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 뿐이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우리에게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거룩함과 평안을 이루어 주시는 수단이다. 끝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은 천국에서의 우리의 행복한 미래와 영생을 우리에게 보증한다.
 
 2. 하나님의 약속들의 내용
 
 (1) 영적인 복에 관한 약속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적인 복 중 대표적인 것들을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1) 우리의 모든 죄악의 용서(사 43:25) 2)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요 14:13) 3) 우리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난만을 허락하실 것(고전 10:13) 4) 우리 속에 시작된 은혜의 일을 완성하실것(빌 1:6) 5) 우리를 결코 버리거나 떠나지 아니하실 것(히 13:5) 6) 우리의 모든 적들과 유혹과 죄와 사단을 이기게 해주실 것(롬 16:20)
 
 (2) 물질적인 복에 관한 약속들
 
  1) 모든 재해(evil)로부터 보호(시 121:7, 8) 2) 우리 삶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시 37:3) 3)육신의 부활(요 6:40)
 
 3.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한 신뢰의 결과 얻은 것
 
 (1) 능력: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자는 죄악에 대항하여 싸우고, 올바른 일을 행하며 자신이 부여받은 영육간의 모든 의무와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능력을 공급받는다.
 
 (2) 승리: 하나님의 약속들을 신뢰하는 자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서 "우리가 적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보고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 보이고 그 결과 가나안 땅에 진입할 수 있었던 여호수아와 갈렙(민 13:30, 민 14:8,9)과 같이 영적 전투에서의 승리를 보장 받는다. 당시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은 돌와서 "우리가 망할 것이다. 적이 심히 강하여 우리가 승리할 수 없다"면서 전혀 믿음에 근거하지 않은 절망적인 보고를 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적들과 죄악과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물리칠 수 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누구를 믿는 믿음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무엇을 믿는 믿음인가?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믿음이다.
 
 (3) 충성: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에 대해 충실하시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그 어떤 약속도 결코 가볍게 하셨거나 농담 삼아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약속들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해 거짓을 행하거나, 그 약속들을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거나, 혹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여 의심해서는 결코 안된다.
 
 (4) 순종: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들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그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리아 산으로 가서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그가 순종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못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그는 믿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낳는다.
 
 (5) 상급: 하나님의 약속들을 철저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은 충성한 상급을 우리에게 보장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4. 하나님의 약속들에 비추어 본 그리스도인의 의무
 
 (1)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함.
 
 1) 동기: 죄악이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는 지극히 더러운 것임을 인식하라. 죄악은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이며, 그분의 본성과 그분의 약속들의 본질에 반대되는 것이다. 죄악을 보기를, 우리를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부적합한 존재로 만드는 것으로 보라, 성경속에서 죄악은 사망을 초래하는 전염병이나 문둥병처럼 묘사되고 있다(롬 6:23).
 
 2) 방법: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더러움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깨끗케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게, 그리고 성결하게 하신다. 우리는 반드시 옛 누룩을 제거해야 하며, 이기심과 탐욕과 죄악의 행습을 죽여야만 한다. 우리는 죄악을 야기시킬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항상 경계하며 깨어있어야만 한다. 모든 형태의 유혹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3) 범위: 우리 자신을 죄악으로부터 성결하게 하는 것은 영과 육가운데 어느 한 부분, 혹은 일부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게으름, 안일을 추구하며 돈과 재물을 사랑함, 쾌락을 사랑함, 세속적인 일들, 몸과 정신의 욕망들, 모든 금단의 열매를 추구하는 것 등 모든 육적 더러움과 함께 교만, 탐욕, 세상을 사랑함, 허위, 거짓말, 불의, 시기, 질투, 악한 분도, 미움, 복수심 용서하지 않는 정신등 모든 영적인 더러움에서도 우리 자신을 깨끗케 해야만 한다.
 
 (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온전히 거룩하여짐.
 
 1) 거룩함의 필요성: 거룩함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여기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 헌신되어야 하며, 그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하며, 항상 깨끗한 영혼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를 추구해야 하며,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이레 종사하게 되기를 늘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 편에 있다는 거시요, 그분의 목적과 사역을 이루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요, 그분의 증인이라는 것이요, 진리를 위하여 담대하고 용감하게 싸운다는 것이요, 그 싸움에 임할 때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함에 있어서 신실해야 한다. 신실하지 않은 사람은 위선자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신실함이란 우리의 본성 전체인 마음과 몸과 뜻과 감정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더욱 거룩하여져야만 한다. 거룩의 습관이 우리의 마음 내부에서 성장해야 하며 우리의 정신 속에 뿌리내려야 한다.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듯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분의 약속들을 찾아내자. 그 약속들을 큰 보물처럼 우리의 마음에 간직하자.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각각의 모든 상황들에 하나님의 약속들을 적용하고 그러한 약속들을 진심으로 신뢰함으로 모든 행동 양식에 있어서 더욱 거룩해지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신뢰하므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향하여 거리낌없는 양심을 지킬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상속함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라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1, 12).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하셨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 6: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도 약속을 주셨는데,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창 15:1에 말씀하셨으며, 창 12:1-3에서도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셨다. 또 창 17:1,2과 창 22:17,18에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도 약속을 주셨으며(창 26:3,4), 야곱에게도 약속을 하셨다(창 28:14).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과 협정을 체결하시며 맹세하시기를, 만일 그들이 당신의 목소리에 순종하면 당신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도우며,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승리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준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들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고 모든 것이 허망하리라. 모든 판단을 요행이나 우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가 어떠할지 알아보려고 점쟁이나 수상가를 찾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한 사람의 추측이란 것도 그저 다른 사람들의 어림짐작과 매 한가지일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진 약속들을 말씀하지 않았거나 주시지 않았다면 그 어떤 일이든 다소용없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그분께서 노아에게 홍수로부터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또한 노아에게 전 지구를 덮치는 홍수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가 땅을 소유할 것을 약속하셨으며, 씨(후손) 곧 그를 통해 땅의 온 족속이 복 받게 될 씨를 약속하셨다. 달리 말해서, 아브라함이 한 아들을 갖게 될 것이며 그의 후손을 통하여 세상의 구세주이신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그분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분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야곱에겐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살펴본 이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항상 그들과 함께 계셔 주실 것이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약속하셨다. 그분께서 다윗에게 그의 씨로부터 그분의 왕국을 세우고 세상을 다스리실 메시야가 출현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비록 다윗은 큰 범죄를 저질렀으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용서를 약속하셨고 처음의 약속의 약속을 취소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모든 약속들을 하셨는데, 그 약속들이 성취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즉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애기되니 그런즉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들리게 되느니라"는 말씀과 같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에 대하여 아멘이시요, 영원한 예(yes)이시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1)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는가? 그렇다면 예레미야 31장 3절 말씀이 여러분을 위한 구절이다.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 하였다 하였노라."
 
 (2)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죄악들이 용서되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는가? 그렇다면 행 13:38,39이 여러분을 위한 말씀이 되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외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랑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니라"
 
 (3)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항상 함께 계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이런 약속을 하셨다. 신 31:6,8을 보라.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4) 여러분은 하나님의 안내가 필요한가? 우리는 시 48:14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5)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는가? 그렇다면 마 7:7,8을 읽어보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6) 여러분은 평안을 구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특별히 요 14:27에서 말씀해 주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7) 여러분은 지혜와 명철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시 119:98-100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라.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8) 여러분은 죄악과 유혹을 이겨내야 하겠는가? 고전 10:13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바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약속들을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만둘 수 있겠는가? 히 6:11,12 말씀에 다시 한번 귀기울여 보자.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라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상속하는 데에 큰 방해가 되는 것 하나와, 하나님의 약속들을 얻게 하는 놀라운 수단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먼저 히 6:11,12에서 말하는 바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나태함이다. 나태함 곧 영적인 게으름은 피해야 할 위험이다. 게으름의 폐해에 대해서는 잠 6:6-11에도 언급되어 있다. 영적으로 게으른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붙잡으려고 최선을 다하지를 않는다. 그는 약속된 것들을 얻는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하며 포기해버린다. 잠언에 기록된 대로 그의 태도는 "길거리에 사자가 있다"(잠 22:13)는 식이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신뢰하기를 두려워한다. 또한 게으른 자는 인생에 대해 숙명론적인 태도를 취한다. "무슨 소용이람! 될대로 될텐데." "달라질 거라곤 아무것도 없어, 애써봐야 소용없다니까!" 그는 "그것에 관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저 그 모든 것을 용납한다. 게으른 사람은 변명만을 늘어놓으며 하나님의 약속들을 붙잡으려고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러나 히 6:11,12에서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상속키 위한 두 가지 수단들도 기록하고 있다. 그것들은 믿음과 인내이다.
 
 단순히 약속들 자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들을 주신 분 곧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다. 롬 4:20,21에 있는 아브라함에 관한 말씀을 보면, 그는 "믿음이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 것, 곧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시며, 참되고 진실하며 결코 변치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기에 또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부여잡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믿음과 함께 인내도 필요하다. 때때로 우리는 인내하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아브라함은 유업을 이을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기까지 여러해 동안 기다렸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이 100살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자포자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었던 이방여인 (마 15:21-28)처럼 되어야 한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시지 않으셨다. 그 여인이 끈질긴 간청 때문에 결국에는 제자들이 말씀을 아뢰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그 여자가 우리를 달달 볶고 있으니-그녀는 보내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도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그런데도 그 여자는 포기하려들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절하며 부르짖었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때쯤엔 그 여인도 포기하려 했던가? 천만이 말씀이다. 그 여인이 말씀을 아뢰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비로소 예수님께서 그녀의 믿음과 인내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오, 우리가 그렇게 되었으면!
 
 우리 모두 게으르거나, 무덤덤 해지거나, 믿음을 잃거나, 인내를 잃거나, 용기를 잃지 말고 믿음과 인내로 충만해지자! 손을 내뻗어 하나님의 약속들을 상속하자!

제5장
 성결한 삶을 구하는 기도
 
 우리는 1-4장을 통하여 기도에 대한 총론적인 내용들을 포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 것이라면 5-7장에서는 '어떠한' 기도를 드려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의 내용이 5-7장에서 보게 될 성결한 삶을 구하는 기도, 성령 충만을 구하는 기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세 가지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을 감당하려는 자라면 반드시 우선적으로 기도해야 할 내용들이다.
 
 그 첫 번째로 본 장에서 다루게 될 것은 '성결한 삶을 구하는 기도'이다. 성령의 깨끗케 하시는 사역을 통하여 합당한 성경함을 갖추지 못한 이는 영적 사역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 때문에 우리는 먼저 자신이 영적으로 성결하여지기를 구하고 또한 그렇게 성결해진 영혼을 죄로 더럽히지 않도록 성결한 생활을 유지하기를 간구하여 사격을 온전하게 감당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구원의 즐거움의 회복을 위한 기도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시 51:12).
 
 다윗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모두 죄인들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었다. 다윗은 바셋바와 우리아 문제로 자신이 저지른 크나큰 죄악과 관련해서 이 시를 썼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통을 범했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살해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크나큰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고통을 깊이 느꼈다. 마침내 다윗은 주님 앞에 엎드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소서"라고 간구했다.
 
 1. '주의 구원의 즐거움' 이란 무엇인가?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떠한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가?
 
 이러한 마음의 상태, 곧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귀하거나 가치있는 것은 없다.
 
 (1) 이러한 마음 상태의 첫 번째 특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악을 용서해 주셨다는 확신(a sense of assurance)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2) 자신이 하나님과 화해하였다는 확신이다. 즉 하나님께서 더이상 자신에게 노하지 아니하시며, 자신을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평화와 사랑이 흐르는 상태가 이루어졌음을 아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고후 5:18).
 
 (3)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 채워지는 것을 뜻한다. 여러분의 바로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방법들과 일들 가운데서 최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얻는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4)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의 또 다른 특징은 영혼이 더러움을 벗고서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영혼이 정결하여지지 않는 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참된 구원은 죄악된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정결하여 지는 것은 죄악의 권세로부터의 확실한 해방(the positive deliverance)이다. 이는 성령님의 능력에 의해서 영혼 안에 있는 이기적인 욕망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성취되어진다.
 
 (5)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의 또 다른 특징은 내적인 조화와 평화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음악의 화음(the harmony)과 같고, 록음악(rock music)의 불협화음이나 소란스러움과는 전혀 닮지 안았다. 구원 받은자의 영혼의 내부에는 완벽하게 어울리는 화음이 있다(참조; 롬 5: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바하나 베토벤과 같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맛들여진 사람에게 시끄럽고 거친 록음악을 강제로 들려주어 보라. 그것이 그의 감수성을 얼마나 들쑤셔 놓겠는가! 록음악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영혼,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잡음이며 불협화음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하게 될 때 여러분의 영혼 내부에는 완벽한 화음을 이룬 천국의 음악이 흐른다.
 
 (6) 하나님의 구원이 즐거움의 또 다른 특성은 하나님의 뜻을 더없이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본능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위대한 동기와 목적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행하는 것이다.
 
 2. 다윗이 구원의 즐거움을 간구했던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1) 구원의 즐거움은 우주내 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있는 마음 상태이다. 즐거움은 거룩한 천사들이 누리는 마음 상태이다. 여러분이 세상의 모든 금은보화를 몽땅 갖게 된다고 해도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이 없이는 전적으로 가련한 존재요, 실패자에 불과하다. 다윗이 구원의 즐거움을 간구했던 이유는 그것이 지닌 가치와 중요성 때문이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즐거움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슬픈 모습으로, 맥이 빠진 자세로, 어두운 얼굴로 돌아다니는 것은 하나님께 욕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또는 그분의 자녀에게 복을 주시지 않거나 그분의 자녀와 동행하시지 않는 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그러한 행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원치 아니하시며, 오히려 자녀들이 하루종일 처량하게 돌아다니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즐거움을 가지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시킨다.
 
 (3) 기쁨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쓸모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 배에서 생수의 강히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의 마음은 생수(the Living Waters)로 흘러넘친다. 성령님께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셔서 기쁨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어느 때 어느 곳엘 가든지 자신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늘 증거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메마른 사막과도 같은 세상에 있어서 물이 솟아나는 샘과 같다. 그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복의 근원이 된다.
 
 (4) 기쁨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효과적인 영혼 인도자이다. 다윗의 말을 잘 살펴보자.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하지 않고선 여러분이 효과적인 영혼 인도자가 될 수 없다. 여러분이 목사, 전도사, 집사, 주일학교 교사, 또는 교인이라해도, 만일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갖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효과적인 영혼 인도자가 될 수는 없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죄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의 마음 속에 진정한 기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을 만나면 즐거움이 결여된 자신들의 삶과 그 그리스도인의 삶을 비교해보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도 삶 가운데 그와 동일한 즐거움을 누리기를 동경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사역자들이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러분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그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구원의 즐거움을 가진 여러분은 위대한 구령자가 될 수 있다. 구원의 즐거움을 지니지 못한 채로 그리스도를 위해 하는 봉사는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은 죄인들의 마음에 강력한 인상을 준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때로 시련과 슬픔과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의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의 즐거움을 주실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할 때 언제나 승리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는 지극히 유용한 존재가 될 것이다.
 
 3. 이 기도가 응답되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무엇인가?
 
 (1) 먼저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이 자기 죄와 허물에 대한 깊은 자각을 지녀야 한다. 여러분은 자신의 모든 죄악을 완전히 고백해야만 하며, 자신의 모든 죄악에 대해 마음 중심으로부터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반드시, 자신이 저질렀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영원한 저주를 받아 마땅한 죄악이 용서되어졌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2)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여러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여러분의 죄악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속죄가 없이 여러분의 죄악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이 용납하실 수 없었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용서를 베푸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충분히 하나님을 명예롭게 해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복음의 의의임을 이해해야 한다.
 
 (3) 이 기도가 하나님에 의해 응답되어지도록 하기 위한 또 다른 조건은, 여러분이 믿음으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모든 충만하신 성품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죄를 대속하시는 구세주로, 여러분의 주님으로,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목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충분히 계시해 놓으신 성경의 기록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4) 여러분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여야 한다. 곧 하나님은 완벽하게 선하신 분이시며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며 또한 지혜로우신 분이심을, 그리고 그분의 말씀한 약속들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확신하여야 한다. 어떠한 단서나 조건이 없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철저히 의지해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반드시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이 즐거움을 여러분에게 주시지 않고 그분의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충만하게 거하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이 즐거움을 체험할 수가 없다.
 
 (5) 여러분은 자신의 영혼이 공허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이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이라는 샘물을 향한 깊은 갈증을 반드시 느껴야 한다. 하나님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한다는 것의 크나큰 중요성을 자각해야만 한다.
 
 (6) 여러분에게 구원의 즐거움을 퍼부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확신하여 한다. 여러분은 구원의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어떠한 세상적인 즐거움도 기꺼이 포기해야만 한다. 구원의 즐거움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준비시키는 데에 필요한 일이라면 그 어떤 일도 기꺼이 행하려는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도전이 필요하다.
 
 (7) 여러분은 모든 이기적인 야망과 욕망을 단념해야만 하며 자신의 모든 우상들을 내어버려야만 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마음속에 이기심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즐거움을 주실 수 있겠는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8)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뜻,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소유 전부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에 전적으로 봉헌해야 한다. 여러분의 뜻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어 온전히 하난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의 육신과 육신의 모든 욕망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완전히 못박혀야만 한다.
 
 (9) 여러분은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이라는 복을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확고한 목적을 지녀야만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즐거움을 사용하겠다는 시시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의 간구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잔을 채워주시면 여러분은 그것을 사용하여 다른 이들이 생명의 물을 마시게 해주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즐거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이 즐거움이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겪는 경험의 일부가 되질 못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행하고, 근심으로 가득 차있고, 부정적인 생각들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수많은 이들이 진정으로 신실하게 기도하지 않으며 구원의 즐거움을 위한 하나님의 은총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많은 세상적인 문제들로 가득 차있다. 마치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인양 그들은 옷, 돈, 세상적인 소유물들, 야망 등을 추구하는 일에만 몰두하여 몹시도 바쁘게 움직인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것을 위해 간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 기도하지 않거나, 혹은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기도한다.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주의적이고 외식으로 가득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믿음 아니 자신들의 수고에 의해서 구원의 즐거움을 얻으려고 애쓰면서 돌아다닌다. 이제 은혜의 보자 앞으로 나아와서 다윗처럼 신실하게 이 크나큰 복을,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하나님께 간구하라. 그분의 은혜의 샘에서 샘물을 마시며 그 샘물을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바아누리라! 그리고 그렇게 얻은 은혜의 샘물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 여러분은 다윗과 같이 신실하게 기도하지 않겠는가? 미루지 말고 지금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제게 회복시켜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의무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 24).
 
 시편 139편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신 분이시며 편재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이 시편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라고 시작한다. 그리고는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는 요청으로 끝을 맺는다.
 
 1. 이 기도가 특별히 필요한 때는 언제인가?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록된 이 기도는 성도가 항상 부르짖어야 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 기도를 하는 것이 특별히 필요하고 중요한 때가 있다.
 
 (1) 우리가 영적인 어둠 속에 있을 때와 영적인 문제들을 잘못 이해함으로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에 이 기도를 해야 한다.
 
 (2) 우리의 마음이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통제되어지지 않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를 깊이 감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3) 범죄하여 영적인 평안을 상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떠한 죄를 범하였는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여 온전히 회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때에도 우리는 성령님께 우리의 마음을 살펴달라고 기도하여야 한다.
 
 (4) 기도할 때에 여러분의 기도가 마치 차단되는 것 같으면-하나님께서 문을 닫아버리시고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려는 것-시 139:23,24에 기록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시험하여 내 생각을 아시며 내게 무슨악한 행위가 있나 보소서"
 
 (5) 자신에게 기도하려는 갈망이 결여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깊은 부담감, 열의가 없을 때, 시 139:23, 24과 같이 기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만일 기도가 자연스럽게 시원시원히 나오질 않고 기도하기가 몹시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여러분은 이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다. 마음 중심을 드려 기도하지 않고 단지 입술로만 기도하게 될 때,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이나 생활 가운데 어떤 일이 지독히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시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셔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는지 보아 주옵소서"라고 신실하게 기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6) 만일 기도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이나 삶속에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삶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여러분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가로막고 서있다는 사살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실한 분이시고, 바로 그 성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갖춘다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7)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애쓸 때에 여러분의 수고와 사역에 하나님께서 복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삶 속에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징조이다. 이 같은 때에 여러분은 "내게 무슨 약산 행위가 있는지 나를 살피고 점검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8) 여러분이 성경읽기를 즐거워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에게 귀중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이나 삶 가운데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징조이다. 이와같은 때에 여러분은, "오 하나님, 나를 살펴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지 못하는 상태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몹시 비정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연구하기를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식으로든지 여러분이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은 반드시 자신의 마음을 감찰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여야 한다.
 
 (9)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삶 가운데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자신을 살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해야만 한다.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두꺼운 먹구름이 끼여 있음을 느낀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영적인 빛 가운데서 살고 있지 않으며 자유롭게 하나님과 교제하거나 기도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면, 참으로 진지하게 "오 하나님, 나를 살피시며 내게 무슨 악한 것이 있나 보아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여러분의 믿음이 연약하여지고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면, 혹은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기는 커녕 하나님과 동행하여 옳은 것을 행할 힘도 없다면, 주님을 찾아가서 시 139편에 기록된 것과 같이 "오 하나님, 나를 살펴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참으로 필요하다.
 
 2. 왜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살피시는 것이 필요한가?
 
 (1)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쉽게 편견에 빠지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모든 사실을 철저히 파악해보지 않은채 스스로의 마음을 결정해 버리곤 한다. 문제의 한 쪽 면만을 보고서 왜곡된 판단을 내린다. 이런 일은 일어나기가 쉬우며, 종종 엄청난 실수가 뒤따른다.
 
 (2)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시는 일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려거든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잘못된 기준에 따라서 스스로를 판단하기 쉬운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인간의 잣대(man's rule)를 기준으로 하여 우리 자신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잣대를 기준으로 하여 스스로를 판단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하기를 자주 잊어버린다. 인간의 잣대를 기준으로 하여 우리 이렇게 하기를 자주 잊어버린다. 인간의 잣대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될 때, 자연히 우리는 스스로를 의롭다고 판단하게 된다. 우리는 마 7:12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이 잣대에 따라서 늘 우리 자신을 판단해야 한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 하라"하나님의 잣대는 우리에게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사랑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남편, 아내, 자녀,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는 것과 동일한 정신으로 다른 사람들(out-siders)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잣대이며 판단기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단히 자주 하나님의 잣대에 준하여 살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잘못된 기준을 세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잣대를 기준으로 하여 사셨다. 그분은 자신의 원수들을 사랑하셨고, 자신의 원수들을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 위에 내어주셨다. 우리는 자신이 '자기의(自己義,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는 것, Self-righteousness)'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우리의 죄악을 깨우쳐달라고 기도해야만 한다.
 
 (3)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살펴보시는 것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여러분이 자주 여러분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속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분과 감정은 항상 우리의 이성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 만일 기분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용한다면, 그때에는 우리가 온갖 종류의 잘못과 통탄할 죄악 가운데 떨어질 것이다. 여러분의 기분이 여러분의 이성을 압도하고 여러분의 의지가 감정의 지배를 받을 때, 그 기분과 감정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여러분은 영적으로 눈이 멀게 되어 온갖 종류의 잘못 가운데 빠질 것이다.
 
 (4)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시는 것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여러분이 자신이 범한 죄악을 쉽게 잊어버리는 버릇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경례하기를 원치 않는 것을 습관적으로 잊어버리는 버릇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마음에서 몰아내려고 애쓴다.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죄를 범하고서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잊어버리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 죄를 결코 진정으로 자백하고 회개하지 않았다면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죄악을 보여 주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자백하고 회개하게 해주시는 일이 필요하다.
 
 (5)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시는 것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아도취(Self-esteem)의 버릇 때문이다. 여러분은 종종 자기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한다. 자신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한다. 자신의 생활 가운데서 자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자신의 결점 혹은 약점은 과소평가한다. 이것은 이기주의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다. 이기주의나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다. 이기주위나 자아도취는 우리의 마음에서 뿌리 뽑기가 대단히 어려운 죄악 가운데 하나이다. 자아중심적인 정신과 자아도취의 정신을 지니고 있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기도를 듣거나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 여러분은 반드시 시편 139편의 기자와 같이 "하나님이시여, 나를 살펴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다.
 
 (6) 여러분이 시편 139편과 같은 기도를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 사람을 두려워하여 자주 올바른 영적 안목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목사들은 그들이 갖고 있던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렸는데, 그 이유는 자기네 교인들 가운데 몇 사람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뜻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릇된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특정한 사람을 더 사랑함으로 영적인 소경이 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보다도 너희의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매나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 10:37, 눅 14:26).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어떤 인간 존재를 더 사랑할 때, 여러분의 기도는 시체처럼 차가워져서 천장(관뚜껑, the ceiling)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7)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감찰하셔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기 자신의 죄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착념(着念)하는 경향이 여러분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의 죄들은 지나쳐버리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맹렬하게 비난하기 쉬운 성품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여러분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다.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불신자들의 죄악보다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여러분들의 죄악이 훨씬 더 큰 것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의 문제에 관한 은혜와 지식의 큰 빛을 여러분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 말씀을 자기 자신의 생활에는 결코 적용시키지 않는 못된 버릇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대신에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킨다. 그들은 진리가 자신들의 마음상태를 드러내도록 허용하질 않는다.
 
 결국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자기의(自己義, Self-righteousness)' 속에서 잠잔다.
 
 (8)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감찰하셔야 하는 다른 이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를 무시해버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민한 양심의 감각을 조심스럽게 신장(伸張)시켜 그 양심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일을 행하고 결정을 내리며 살아간다. 결국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나누지 못한다. 여러분은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거듭 범하게 되는 부정적이나 거짓이나 위선과 같은 수많은 죄악들을 간과해버린다. 여러분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회개하려 하기보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죄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만 한다. 따라서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시험하시며 여러분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사역이 여러분에게 큰 유익이 된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 있는데도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약에 나오는 야곱의 아내 라헬이 그랬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물 가운데 숨겨진 어떤 작은 우상들을 지니고 있다. 얼마나 작은 것이냐에 상관없이, 반지 한개, 옷핀 하나, 연필 한자루라도 하나님께 봉헌되어져 있지 않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헌신의 제단 위에 완전히 바쳐져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여러분은 반드시 "오 하나님, 제가 진정으로 헌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스스로 속고 있습니까?"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때에 자신의 죄악을 감추고 고백하기를 거부해 버릴 위험성이 있다. 그 결과는 영적인 무감각(spiritual deadness)이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한다(잠 28:13).
 
 만일 여러분이 마음속에 누군가를 향한 적대감, 나쁜감정, 미움을 갖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감찰해 주시는 것이 여러분에게 필요하다.
 
 바로 지금 이 기도를 하라! 미루지 말라! 시 139:23,24의 내용을 기도하라! 수색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멈추지 말라! 여러분의 영혼이 평안과 능력으로 채워질 때까지 중단하지 말라! 여러분의 마음을 수색해 주셔서 단 한 점의 흠도, 단 하나의 죄악도 남아있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 24).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전지하시다. 그분은 세상 가운데 있는 모든 일들을 지배하신다. 그분의 지배는 각 개인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미친다.
 
 다윗은 시편 139편을 쓸 때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을 인식했다. 그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지식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비롯하여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시 139:1-12을 읽어보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나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를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필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나를 붙드려시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눈이 자신을 직접 응시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며 이러한 마음 자세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신실하게 기도했다.
 
 1. 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자세
 
 (1) 하나님께서 무한히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한다. 시 139:23,24절의 내용대로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감찰해 주시고, 여러분의 생각을 시험해 주시고, 어떤 죄악이든지 여러분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들추어 주시고, 그리고 의의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완전한 거룩성을 소유하고 계시며 모든 죄악을 철저히 반대하고 미워하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2) 여러분이 이 기도를 드릴 때, 여러분은 자신의 영혼이 성결하여질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부터 납득하여야 한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뵈옵지 못한다. 여러분은 완전히 거룩해 지기 위해서, 혹은 여러분 속에 어떤 죄악이 있는지 주님께서 여러분을 살피시고 시험하시고 보아주시기를 하나님께 가구해야 한다.
 
 (3) 하나님께 이 기도를 드리면서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께 대해서 절대적으로 정직해야만 한다. 이 기도와 함께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살펴 주시기를 거짓없이 갈망하여야 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어떠한 죄악된 것도 모두 제거되기를 신실하게 갈망하여야 한다. 즉 이 말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하기를 진정으로 갈망해야하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자신의 삶 가운데 어떠한 죄악으로부터도 기꺼이 철저하게 분리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살펴주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유혹들과 육신적인 욕망들을 이기기를 자신이 강렬하게 갈망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4) 자신의 마음을 살펴 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때,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연약성과 영적인 무지를 자각하여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죄가 자신 속에 존재할 가능성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진리의 빛으로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셔야 한다고 느낀다. 하나님의 눈이 자신의 영혼을 감찰해 주시기를 여러분이 간구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께서 여러분에 관한 것을 무엇이나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아는 것 보다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훨씬 더 잘 아신다.
 
 (5) 신실한 마음으로 이 기도를 드릴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감찰하시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감찰하는 방법을 여러분이 지정하려 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오 하나님, 내 마음을 살피시고 나를 점검하소서, 하나님께선 완전한 지혜와 진리를 가지셨으니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방침과 횟수에 따라서(in your own way and times) 나를 감찰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드리는 것이다.
 
 (6) 여러분이 신실하게 이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살피며 점검하고자 사용하시는 과정에 있어서 시행되는 어떠한 방법에도 여러분이 저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여러분은 어떠한 단서나 선결조건도 달지 않고서 위대한 영적 의사이신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겨야 한다.
 
 2. 우리를 항구적으로 거룩케 하며 모든 죄악을 제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며 시험하시는 방법들
 
 (1) 하나님께서는 종종 성령님과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우리를 살피신다.
 
 (2)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분의 섭리라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우리를 살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신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는 무지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상태를 보다 명확히 아셔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 관하여 무엇이나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보시는 바 우리의 참된 자아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보시는 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보시는 바 우리의 참된 자아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보기는 것과 똑같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나타는 섭리를 통하여 우리를 살피며 점검하신다. 성령님은 안에서 우리를 깨우치시고, 하나님을 섭리는 밖에서 우리를 깨우친다. 내부에 계신 성령님과 외부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는 연합하여 일한다. 하나님의 영의 사역과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서로간에 모순되지 아니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거룩하게 하시고자 우리의 삶 가운데 각종 사건들과 상황들을 만드시고 섭리하심으로써 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빛으로 우리의 마음을 깨우치시려고 성령님에 의해 내부적으로 일하시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인격 속에 거룩함을 증진시키신다.
 
 3. 우리의 도덕적 인품을 향상시키려고 하나님께서 섭리를 사용하시는 방법을 보여주는 예들

(1) 종종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마음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게 된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전혀 합당한 이유 업이 비난한다고 하자. 이러한 비난에 대해 여러분이 반응하는 여러분의 마음의 실제 상태를 보여준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실제 마음 상태를 점검하시기 위하여 누군가가 여러분을 비난하거나 여러분에 대해 악하게 말하는 것을 허용하신다. 다른 이들이 여러분에 대해서 나쁘게 말할 때, 여러분은 화를 내게 되는가? 그리고 따지면서 대드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온유하고 관대한 정신을 지니는가? 이 섭리적인 환경이 여러분 내부에 어떤 마음 상태를 가지게 하는가?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살피시며 시험하는 방식들 가운데 하나이다.
 
 (2)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아마도 여러분 삶 가운데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서 불공정하게 취급되었다고 느꼈던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분을 시험코자 하나님께서 그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나도록 허용하셨다. 그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심령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그 일이 여러분을 화나게 만들었는가? 그 일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거룩하지 못한 천성을 드러내게 하였는가? 아니면, 자신이 불공정하게 취급받았던 바로 그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같은 온유함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3) 누군가가 여러분을 속이거나 여러분의 이권(利權)을 탈취해 갔는가? 이러한 괴로운 상황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쓰디쓴 마음이 되어 미워하는 생각을 품거나 독설을 내뱉었는가? 아니면, 인내와 용서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드러냈는가? 여러분을 시험하여, 하나님께서 보시는 바와 같은 여러분의 실제 자아를 여러분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들로 여러분을 괴롭히도록 허용하신다.
 
 (4) 누군가가 여러분을 무례하게 대했는가? 여러분은 자신이 존경 받아 마땅하다고 느꼈는데 오히려 무례하게 취급당했다. 그때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화가 치밀어 올랐는가?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정신(an unchrist-like spirit)을 드러냈는가? 아니면, 인내와 온유라는 그리스도를 닮은 정신을 나타냈는가? 여러분에게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가? 그 경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 그 일이 여러 분속에 있는 어떠한 마음 상태를 노출시켰는가? 여러분의 내부에 있었던 실제 감정은 어떤 것이었는가? 기억하라!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가운데 우연이나 우발적인 것은 전혀 없다. 우리를 점검하고 살피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현명한 섭리 가운데 지금까지 언급한 그런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도록 허용하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진행되어 가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영적 성장의 정도를 알게 된다.
 
 (5) 혹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화를 내면서 말했거나 여러분이 행한 어떤 일 때문에 격렬히 질책했던 일이 있었을 것이다. 질책당한 때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여러분 내부에 쓰디쓴 감정이 들끓어 올랐는가? 그리고는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행동을 했는가? 아니면, 겸손한 정신을 드러내어 그 질책을 주님께로부터 오는 책망으로 알고 수용하였는가?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정신을 표출시켰는가? 이러한 사건들은 결코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격을 좀더 그리스도의 인격과 닮도록 하시려는 목적을 위해 그러한 것들 모두를 계획하시며 설계하신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이러한 사건들을 접했을 때, 옛 성품이 허황된 욕망으로 여러분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성품이 여러분을 지배하는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제 인품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이하고 현명한 섭리 가운데 이러한 방법들로 우리를 점검하고 살펴보신다.
 
 (6) 하나님께서는 종종 학생들을 그들이 치루는 시험이나 숙제로써 점검하듯이 성도들을 점검하신다. 정직한가, 아니면 부정행위를 하는가? 자신의 숙제를 자신이 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것을 베끼는가? 이런 방법들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점검하신다. 그분께서는 때때로 성도들에게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리스도의 제자처럼 행동하는가, 아니면 사단의 종처럼 행동하는가?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진정한 실체, 우리의 마음의 실제 상태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님의 의도는 여러분의 실제 인품을, 즉 여러분이 실제로 정직한 자인지 아니면 거짓말자이며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자인지를 여러분에게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정직한 학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지 않듯이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정직한 학생은, 기회가 있고 들키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여러분은 학생으로서 어떤 종류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서로 협력하고 남을 돕는 태도, 겸손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혹시 불평하고, 비평하고, 헐뜯는 마음을 지니고 있지는 아니한가?

(7)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실제로 오래 참질 못하는지 오래 참는지를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점검하시고자 우리의 생활속에 여러 형편들을 설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우리 자신이 겸손하지 교만한지를, 순종적인지 불순종적인지를 스스로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점검하시고자 우리 삶 속에 여러 상황들을 설정한다. 하나님께서 때때로 어떤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점검하시려고 그에게 많은 재물과 소유를 주신다. 그가 자신의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기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들을 사용하는가? 이런 방법으로 사람은 자신의 실제 마음과 인품을 이해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사업실패나 화재로 우리가 손실을 겪도록 하셔서, 이 손실물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지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우리가 깨닫도록 점검하신다. 엄청난 손실을 당했을 때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한가? 여러분은 욥처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생각하며 말하는가? 아니면, 낙심하고 불평하고 슬퍼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위선자인지 아닌지를 살피시고자 이런 방법으로 그들을 점검하신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환경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주님 안에서 즐거워한다(합 3:17, 18).
 
 (8)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궁핍한 상태로 몰아가기도 하신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심령의 변화를 나타내는가? 괴로워하면서 자기보다 더 많이 소유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가? 아니면 가난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정신을 드러내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점검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진짜 마음 상태가 실제로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부유함과 궁핍함, 질병과 건강, 그리고 수많은 각종 방법들을 사용하신다.
 
 우리가 고집세고 제멋대로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순종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신다. 종종 사람들은, 생활환경 가운데 모든 것이 다 평안하고 부드럽게 진행되는 동안에는 자신이 제멋대로 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부드럽게 진행되는 동안에는 자신이 제멋대로 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서 폭풍우를 일으키시든 순간 그들은 불평, 불만을 토로하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고난과 역경을 여러분의 삶 속에 끼워 넣으실 때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한가?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처사(dealing)와 섭리에 대해 불평 불학이나 낙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격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헌신되어져 있다면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와 섭리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그는 여전히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릴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고통을 일으키시고 재물이나 친구나 그 어떤 것의 손실을 일으키시면, 그는 엘리처럼 "이는 여호와시니 (그분의)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삼상 3:18)고 말할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들은 우리의 선을 위해서, 우리의 인격을 형성시키려는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마음 상태를 알 수가 있다. 우리의 인생살이 가운데 일어나는 각종 사건들과 상황들에 대한 우리자신의 반응에 의해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이기적이며 죄악을 향하는 성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철저히 검사하려고 우리를 점검하실 것이다.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하나님께 받았던 아브라함의 예를 보라.
하나님께서는 종종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고집불통으로 불순종하는지에 관하여 그들의 마음을 살피고자 설교를 사용하신다. 여러분은 마음을 찌르는 설교들(heart-searching messages)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듣지 않으려고 힘쓰는가? 설교말씀보다는 다른 것에 자신의 생각을 집중시키려고 애쓰는가? 설교자와 설교말씀에 대해 마음속에서 반발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인이며 위선자인 것이다. 여러분이 교회에 출석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지만, 그러나 마음 중심에 있어서 여러분은 이기적인 반역자이며 죄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점검하시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저 달콤한 것(candy)만 먹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지 못한다. 훌륭한 병사가 되기 위해 우리에겐 고된 훈련일 필요하다. 훈련에 반발하다면 여러분의 결코 선해지거나 강해질 수 없다. 하나님의 훈련과 하나님의 시험을 끈기있게 견디어내는 그리스도인의 인품은 그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시편 139:23, 24의 기도 속에 나타나는 다윗의 정신과 동일한 정신을 지닌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 어떠한 죄악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살피시며 점검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다. 그들은 철저하게 살펴져서 깨끗해진 완전한 인품을 갖추기를 갈망한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살피시고 여러분을 시험하시며 여러분에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의의 길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여러분의 간절한 소망인가?
 
 성화를 위한 기도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다윗은 깨끗한 마음, 순수한 마음을 가지기를 기도했다. 그는 또한 변함없고 꿋꿋한 영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는 불안정한 상태, 곧 어느날 유혹에 빠져 범죄했다가 다시 재헌신하고 그랬다가는 또다시 죄악 가운데로 떨어지는 상태로부터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다. "오 하나님, 제게 안정된 마음, 주님께 철저히 고정되어서는 변치않는 마음을 주셔서 유혹이 닥쳐와도 넘어지지 않게 해주옵소서"가 다윗의 기도였다. 다윗은 자신이 결코 다시는 범죄치 않도록 자신의 내부에 거룩한 상태를 창조해 달라고 주님께 정성스레 간구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마음, 위지, 상상, 사고방식, 감정, 욕구, 느낌, 지성 등 그 어느 것이나 모두 다 철저히 청결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런 철저한 성화의 과정이 없이는 자신이 또 다시 사단의 덪에 걸려들게 될까봐 다윗은 두려워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의 육신저긴 욕망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성결하게 해주시며 자신을 전체적으로 정결하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다윗이 기도했듯이 여러분도 하나님께 이와 동일한 기도를 신실하게 드려야 한다.
 
 1. 어떻게 이 기도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하셔서 여러분의 몸과 영혼을 참으로 성결하게 해주실까?
 
 (1) 첫 번째로, 여러분은 반드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한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도 영적으로 연약하여 유혹에 굴복하기 쉬운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반드시 자신의 과거를 찬찬히 뒤돌아보아 자신이 어떻게 범죄 했는가를 상기하고 철저히 회개한 후 겸손한 마음을 풀어야 한다. 자신의 육신의 욕망들이 자신의 영혼의 평화와 순결에 대항하여 전투중임을 꼭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순결에 대항하여 전투중임을 꼭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감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여러분의 육신이 갑자기 강력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을 범하기 전까지는 다윗이 자신의 육신의 욕망이 참으로 강력해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질 않았다. "다윗 왕이 간통죄를 범했다고? 천만에, 다윗 왕은 절대로 그런 짓을 안한다!" 틀림없이 다윗은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결국 신간이 지나면서 그는 변질되어졌다. 그는 그런 유혹과 죄악 가운데 떨어질 정도로 저급하게 굴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이다.
 
 사실상 다윗은 자기 자신을, 자시의 연약함을, 자기 육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자신의 품성의 깊고 어둡고 무시무시한 면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태평해졌다. 그는 신중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무서운 죄악에 빠졌다.
 
 따라서 맨 먼저 여러분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연약한 존재로 인정해야 하며, 자신이 과거에 저리는 죄악들에 대한 깊은 책망(conviction)을 느껴야 한다. 여러분이 성령님에 의한 책망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면 여러분이 성령님에 의한 책망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면 여러분은 내가 말하고 있는 바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성령님에 의한 책망을 느꼈던 사람만이 자신의 본성의 어두움과 죄악됨을 이해할 수가 있다. 생각으로 지은 죄이든 말이나 행위로 지은 죄이든 여러분이 과거에 저지른 모든 죄악들에 대한 여러분 편에서의 신실한 회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2) 두 번째로 여러분은 반드시 자신의 모든 죄악을 하나님께 철저히 실토해야 한다. "예, 제가 범죄 하였나이다"라고 단순히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반드시 자신이 죄악에 대한 두려움, 격렬한 죄책감, 절망감 등을 가지고 있음을 실토해야 한다. 시편 51:10에서 다윗은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적에 악을 행하였다"고 기도했다. 천주교를 믿는 남아메리카 지역의 한 곳에서 어떤 사람이 금도금을 한 싸구려 십자가를 팔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는 걸어 다니면서 "값싼 십자가요, 값싼 십자가요"라고 외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싸구려가 아니다. 그분의 생명의 피가 그 십자가 위해서 쏟아졌다. 그리고 죄는 결코 값싼 것이 아니다. 죄값은 대단히 비싸다. 너무나 비싸서 우리의 죄값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셔야만 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죄가 싸구려인양, 하찮은 것인양 가벼운 마음으로 죄를 고백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반드시 다윗처럼 자신의 죄에 대한 두려운 중압감과 죄책감, 그리고 자기 힘으로서는 도저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절망감을 깨닫고 느껴야 한다. 자신의 죄악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받아 마땅한 자임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죄악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이 없이는 여러분이 진정으로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러분은 철저하게 마음 중심으로부터 자신의 모든 죄악들을 하나님께 실토해야만 한다.
 
 (3) 세 번째로, 자신이 죄악과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위험스러운 존재임을 철저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여러분은 자신이 범죄하도록 유혹되어질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인 천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범죄할 가능성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의 상상력을 보자. 여러분의 상상력이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죄악되고 부도덕한 생각들과 사상들과 장면들에 의해 얼마나 쉽게 불순해지고 더러워지는지 모른다. 특별히, 육신적이고 부도덕한 부패행위, 이를테면 텔레비젼이나 영화, 잡지책에 나오는 육신적이고 부도덕한 이야기들과 같은 비행으로 가득 찬 사회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우리의 상상력과 우리의 생각을 쉽게 부패시키며 더럽히는 부정하고 불결한 모습들을 보게 된다.
 
 다윗의 경우를 보면, 먼저 그의 마음과 생각과 상상력이 욕망으로 가득찼고 결국 그는 타락했다. 다윗에게 일어났던 일이 바울에 의해서 이렇게 설명되고 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다"(롬 7:5). 다윗은 자신의 욕망과 격정에 굴복한 후 무시무시한 죄책감으로 몸을 떨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심각하게 더럽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윗은 시 51:7에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라고 부르짖었으며, 다시금 10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다.
 
 다윗처럼, 우리도 우리의 육신적인 본성이 얼마나 지독하게 부패하였으며, 또한 우리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일인지를 철저하게 이해해야만 하며,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생각과 상상력 속에 퍼져있는 죄악의 지독한 오염에 철저히 씻어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육신적인 생각과 상상을 깊이 부끄러워하면서 아울러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정결하게 해주시기를 절실히 갈구해야만 한다.
 
 (4) 네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결한 육신적인 욕망에 대하여 승리하게 해 주시도록 믿음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자신의 노력이나 결심을 통해서 자신을 청결하게 할 수가 없다. 여러분이 자신의 힘으로 버둥거리며 번민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무시무시한 죄악의 세력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 것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여야 한다.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청결하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신실히 간청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계속해서 자신의 육신에게 패배할 것이다.
 
 (5) 다섯 번째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청결케 하는 일을 능히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신실하게 믿어야만 한다. 정욕으로 지독히 오염되어 있는 여러분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실 수 없다면 도대체 누가 할 수 있단말인가? 다윗은 하나님께서 능히 할 수 있음을 믿었다.
 
 시 51:13에서 다윗은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라고 말했다. "오 하나님, 제 마음을 그 지독한 도덕적, 영적 오염으로부터 깨끗케하여 주옵소서. 그 결과 제가 증거할 수 있을 것이고 죄인들은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다윗은 기도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기 이전에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이 그 죄악의 지독한 오염으로부터 정결하게 되어야만 한다.
 
 다윗은 회심한 사람이었으나 타락하여 하나님께 범죄했었다. 그는 자기 육신의 격정이 자신을 삼키도록 허용했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이시여, 저의 존재(본성) 전체를 개혁시켜 주옵소서. 저를 정밀분해 하셔서 재조립해 주옵소서. 청결하고 성결한 상태로 저를 주조(鑄造, mold)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은 어떠한가? 여러분은 이런 종류의 기도를 아뢰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여러분도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능히 깨끗케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가? 다윗은 하나님께서 모든 도덕적 더러움과 불결함으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능히 깨끗케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꺼이 자신을 깨끗케 해주려 하신다는 사실도 믿었다. 청결하게 해달라는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꺼이 듣고서 응답하러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면 다윗은 하나님께 이 기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시여, 이 지독한 도덕적, 영적 부패로부터 제가 깨끗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제가 아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저를 지금 철저히 깨끗하게 해주옵소서. 그리하여 단 한 점의 죄악도 남아있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시 51편에서 기록되어 있은 다윗의 기도의 의도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따라서 여러분도 이렇듯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한다. "오 하나님이시여, 제가 깨끗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제가 압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정욕과 같은 지독한 죄악들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추악한 마음 상태로 제가 어떻게 주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오 하나님, 제 영혼을 모든 불결함으로부터, 모든 죄악으로부터, 악한 열정으로부터, 그리고 제 육신의 욕망으로부터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2.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죄악으로부터 깨끗케 해주시기를 기꺼워하신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기를 여러분 스스로가 진정으로 소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청결한 마음을 원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마 5:8)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마 5:6)이라고 하셨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깨끗한 마음, 청결한 마음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인가? 여러분은 참으로 신실하게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드리고 있는가? 여러분 자신의 식욕, 욕망, 감정, 상상력 등을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지배를 받도록 바꾸어 주시기를 진정으로 소원하고 있는가?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기에 적합한 깨끗하고 청결한 성전이 되도록 자시의 몸을 자진해서 유지하려하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지배하실 수 있도록 자시의 몸과 영혼과 마음의 그 어느 부분이든지 모두가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는 가운데 있기를 참으로 바라고 있는가?
 
 어떤 대가를 치루게 되든 개의치 않고서, 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희생하라고 요구하시든 상관없이 여러분은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제단위에 여러분 자신을, 몸과 마음과 영혼 전부를 기꺼이 바쳐야만 한다. 여기에는 여러분의 명예, 이름, 생명 등등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 여러분은 바울이 말했던 다음과 같은 고백을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들이는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9).
 
 이것이 여러분의 진정한 마음인가? 그렇지 않다면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라고 기도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여러분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단호한 발걸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에 나아가서 여러분의 모든 것을 그 제단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하나님, 제게 속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저는 오직 주님을 신뢰하오니 제 모든 것을 주님 좋으신 대로 처분하옵소서. 오 하나님, 저를 깨끗케 하옵소서." 여러분이 소유한 모든 것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기 전에는, 여러분의 모든 것을 제단 위에 올려놓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정결하고 성결된 마음을 주실 수가 없다. 여러분의 추잡한 상상력은 반드시 청소되어야 한다. 여러분의 욕망과 정욕은 반드시 정화되어야 한다. 여러분의 죄악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다윗처럼 자신의 영혼 위에 드리운 죄악의 크고 두려운 권세와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진정으로 느끼며 파악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다윗같이, "오 하나님이시여, 저의 큰 적은 제 자신의 육신입니다"라고 기도해야겠다고 느끼는가? 여러분은 자신의 영혼의 어두운 측면을 깨닫고 있는가? 바로 지금, 괴로운 나머지 "하나님이여,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소서"라고 부르짖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성결치 못한 상상과 생각에 잠긴 생활은 우리 영혼의 크나큰 적이다. 이러한 육신적인 욕망들은 우리를 이기고 우리를 속박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실 때 여러분은 내적인 청결감과 평화를 느낄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온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목욕시켜 주신 것처럼. 바울은 늘 그리스도인들의 몸과 영혼이 성결하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 5:23)"라는 것은 이러한 바울의 소망을 담은 일상적인 말투였다.
 
 성결한 영혼과 성결한 삶을 이루기 전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에서 승리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 유용하게 쓰임받을 수도 없다. 성결한 영혼을 가지고 성결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세상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것이 시 51편과 같이 기도하기 이전의 다윗의 상태였다. 완전한 성결의 복이 없이는 여러분이 자신의 영혼 속에 진정한 화합을 누리 수가 없다. 이 여러분이 먼저 성결해지기 전에는 여러분의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평화와 능력을 누릴 수가 없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불타는 풀무 속으로 가장 뜨거운 불꽃 한가운데로 능히 걸어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들이 풀무 밖으로 나왔을 때 그들에게서는 불탄 냄새도 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그 풀무 속에 계셨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육신의 욕망과 정욕이 모두 십자가에 못박혀 제가될 때 유혹과 죄악의 극렬한 불꽃이 여러분의 내부이든 외부이든 결코 불태우지 못할 것이다.
 
 바로 지금, 다윗이 그랬듯이 자신을 깨끗케 하여 달라고 신실하게 하나님께 간청하라. 진지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결한 마음을 창조해 주소서. 내 몸과 영혼을 성결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께서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내 생명의 왕으로서 마음대로 다스려 주옵소서."

제6장
 성령충만을 구하는 기도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것은 성도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지엄한 명령이다(눅 24:49; 요 20:22; 행 1:4-8).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충만하게 채워진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한 가장 중요한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알아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것은 우리기도의 내용 중 절대 제외시킬 수 없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는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모든 사역을 시작하기 전 가장 우선적으로 드려야 하는 기도인 것이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져야 할 필요성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1. 영적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성령충만이 필요함

우리의 지성(mind)은 기독교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다른 그 어떤 대상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들과 마찬가지로 능히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한, 우리의 지성은 조직신학,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사랑 기독교의 여러 가지 교리들도 이해할 수가 있다. 우리의 지성은, 우리 자신이 죄인이며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 즉 우리가 스스로 행하는 선한 행위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대속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과 그가 곧 인간 가운데 육체를 입고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등등 이해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우리의 지성이 기독교 신앙과 조직신학에 관한 모든 사실들과 원리들을 이해하며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진정 사실일진대 성령충만은 왜 필요한가?
 
 그 이유는 우리가 기독교의 모든 교리들을 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 지식이 그 자체로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우리를 감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식 자체는 사람을 우쭐거리게 만들며 강퍅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경향이 있다. 성경과 조직신학에 관한 지식 자체는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유혹의 함정으로부터,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단순한 지식 자체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우리의 마음을 통제하거나 의지를 감화시키거나 영혼을 설득시키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키며, 우리의 기분과 감정을 흥분시키고, 우리의 의지를 설득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라하고 섬길 수 있게 하시는 분은 우리 안에 충만하게 임재하신 성령님이시다.
 
 단순한 관념상의 지식 자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올바르게 행하게 하거나 하나님께 순종하게 할 수가 없다. 죄인인 우리는 본질상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범죄하기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계몽하고 진리를 보여주고 감화시키며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실 성령님의 충만함이다. 성령 충만이 우리가 영적인 진리를 깨닫는 데 필수불가결하다는 사실은 또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영적인 일들에 관한 모든 지식은 유사비교(comparison, 보이지 않는 영적 진리를 보이는 물질세계의 현상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역자주)에 의하여 얻어진다. 우리의 지성은 우리의 물질적인 몸의 내부에 갇혀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들에 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지식은 유사비교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영적인 문제들을 우리 주위에 있는 물질적인 것들에 비교하는 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진리들에 관한 개념(idea)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불완전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세상에 그리스도와 복음이 나타나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주시고자 제물이나 희생제사와 같은 유형(types)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그 유형들은 그 자체에 있어서 불완전하였고, 성령님의 깨우쳐주심이 없이는 유대인들이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단순히 인간의 언어에 의해서, 연구에 의해서, 혹은 강의를 들음으로써 영적인 진리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 예를 들어서, 3살된 어린이를 생각해보자. 그는 단순한 말, 문장, 그리고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3살박이에게 전기라든지 컴퓨터나 수학과 같은 어려운 문제들에 관해 이야기해 주려고 시도해보리라. 여러분이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어휘와 문장이나 개념을 그 어린이가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다른 행성에서 어떤 사람이 이 지구에 왔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가 살던 행성은 이곳 지구상에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그 사람의 설명을 통해서 그 행성에 관한 완벽한 개념을 이해하고 얻는다는 것이 과연 쉽겠는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예로 든 이러한 경우들이 바로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설명해 준다.
우리는 물질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육체와 함께 지성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만으로 영적인 진리들을 명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영적인 진리의 실체(reality)를 보여주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셔서 가르쳐 주시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 수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거룩해질 수도 없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만,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보는 짓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3살박이 어린이의 경우와 동일하다. 3살된 어린의 마음이 기적적으로 조명받지 않는 한 그 어린이는 우리가 설명해주려고 하는 심오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에 관한 일들보다 더 심오한 문제가 있겠는가? 따라서 성경의 가르침과 교리들을 단순히 머릿속으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한다.
 
 2. 우리의 영안이 온전해지기 위해 성령 충만이 필요함
 
 고전 12:3을 잘 보라.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 구절에 들어있는 '주'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사른 사실을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관념상의 지적인 방식으로, 즉 여러분이 수학을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바울은 이러한 방식의 이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한 지적인 인식은 여러분의 영혼을 감화시키거나 구원하지 못한다. 오직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지성을 밝혀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여러분의 영혼에게 큰 능력으로 계시해주실 때에만 그러한 일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요 16:7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보혜사를 가리키는 헬라어는 '돕는 자', 또는 '가르치는 자'를 뜻한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우리가 보았다.
 
 또한 요 14:17에서도 예수님께서, "저는 진리의 영이라...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함시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같은 책 요 14:26에서도,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여러 구절들로부터 우리는 우리에 대한 성령님의 직무가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그분의 직무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하나님에 관한 영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관한 교리들, 조직산학, 성경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단순한 관념상의 지적인 연구 즉 성령님의 충만함이 없이 이루어지는 연구는 불충분한 것이다. 하나님에 관한 일들을 참으로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해 성령님께서 언어(words)에 의존하실 필요는 없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지성에 직접적으로 접근하신다.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해 그분께서 우리의 신체적인 감각기관들을 거치실 필요는 없다. 그분께서는 언어라는 의사전달 수단 없이도 우리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
 
 인간 교사들은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단지 언어를 사용하는데, 언어란 사상의 불완전한 표현수단이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 직접적인 통제, 직접적인 점유로써 진리의 진정한 개념과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한 예로써, 여러분이 모두 장님이라고 하는 가정을 다시 한번 사용해 보자. 내가 여러분의 정면벽에 걸려있는 아름다운 그림을 장님인 여러분에게 말로써 설명해주려고 애쓰고 있다고 하자. 여러분은 단지 그 그림을 불완전한 개념만을 붙잡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앞 못보는 눈을 홀연히 열어주신다고 해보자. 재가 말로써 설명하려고 애썼던 바가 이제는 완전히 분명해지고 여러분은 그 그림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에 관한 것들에 완벽하게 알고 계신다.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완벽하게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들을 우리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실 수 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성령님께서는 그 어떤 인간 존재도 감히 제공해줄 수 없는 깨달음과 자식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
 
 이런 이유도 여러분은 반드시 성령님으로 충만해져야 하며, 그러기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약속 하신 성령 충만의 축복을 추구하며 믿음으로써 그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만 한다.
 
 3.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 충만이 필요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충만을 약속하셨으므로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에게 이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자기 자녀에게 어떤 선물을 주겠다고 명명백백하게 약속해 놓고서는 그렇게 하기를 거부해버린 세상의 아버지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그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다"고 말할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런 종류의 아버지이시라고 생각하는가? 부모들이 자기 자녀에게 기꺼이 빵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기꺼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간구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성령님을 주신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9-13).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우리는 반드시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성령님에게 진리의 영으로서 친히 우리를 계몽하시며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도록 우리의 삶 속에 성령충만하시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4.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충만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1) 그들이 성령충만을 신실하게 간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신실하지 않다. 성령충만함을 진정으로 깊이 구하지도, 열망하거나 갈망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현상태를 대단히 흡족해 하며, 몹시 무사태평하고, 세상적인 관심사에 몰두해 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지적 능력만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경과 조직신학과 다른 모든 영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스스로 이해할 수 있다고 오만하게 생각하고 있다.
 
 (2) 잘못된 동기를 갖고서 성령충만을 간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기심이 가득차 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만일 우리의 마음속에 잘못된 동기를 갖고 있다면, 혹은 마음속에 어떤 죄악을 숨기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충만함을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에 결코 응답하시지 않는다.
 
 (3) 성령님으로 충만해지고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올바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성경 읽는 것을 소홀히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신문, 잡지 등 다른 세상적인 자료는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일고 연구하는 일은 소홀히 한다. 만일 이런 사람이 성령님으로 충만해지기를 간구한다면, 관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하나님께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깨우쳐 진리를 가르쳐 주려고 사용하시는 방법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에 성경을 들려주셨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 연구하기를 경솔하게도 소홀히 하고 있다면 그런 때에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간구하는 것 자체가 곧 하나님께 거역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만일 성경을 소홀히 한다면 여러분은 성령님으로 충만해질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며, 여러분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4) 그들이 갖가지 모양으로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미 앞에서 여러분이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는 두 가지 사항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는 바울의 명령을 명심하라!
 
 (5) 그들이 다른 이들의 교훈을 의지하면서 이끌어주심을 받고자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 자신이 성령충만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신학교 교수들이나 목사로부터, 혹은 주석이나 다른 책들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연구로부터 받는 교훈이나 도움은 효과가 없다. 성령충만함을 추구하여 받을 때에만 교수, 목사, 주석의 교훈들이 유용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은 성령충만함을 추구하여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길 바라며 그리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며 성령님을 의지하여야만 한다.
 
 (6) 자기신뢰(Self confidence)는 많은 이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능력, 자신의 지성, 자신의 학식을 신뢰할 때 여러분은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충만하게 임재하사 진리를 깨우쳐주시는 경험을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성결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의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을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경의 저자를, 즉 우리에게 성경을 설명해 주시는 성령님을 모시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반드시 성령충만함을 추구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 충만의 약속을 맏아들이라.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이끄실것이다. 그분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지성을 향해 열어주실 것이며, 그분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성결하게 하시며 정결하게 해주실 것이다.
 
 성령 충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14)
 
 1. 갈라디아서 3장 14절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받았던 것과 같은 복을 받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방인,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약속의 수혜자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우리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살펴볼 때에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 또한 창 17:4, 7;창 18:18, 그리고 창 26:4에서도 이같은 약속이 되풀이하여 말해지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언약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것을 약속하셨다.
 
 1) 가나안 땅이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들(The natural descendents)의 소유가 될 것.
 
 2) 영적인 복이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에게 주어질 것. 갈 3:14은 이 영적인 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약속하신 영적인 복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수단에 위해 주어진다고 가르쳤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 4:13).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 4:16).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씨(후손)에 속하였으며 아브라함은 우리의 영적인 조상이라는 사실을 확언하는 로마서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이방인들에게 썼다.
 
 그는 갈라디아서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거듭 증거하였다.
 
 1) 갈 3: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2) 갈 3: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리라"
 
 3) 갈 3: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4) 갈 3:29-"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다른 말로 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상속받을 자들이다.
 
 5) 갈 4: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을 자들이다.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 곧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받을 권리를 지니 이 영적인 복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궁극적인 대상은 아브라함 한사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그의 씨(후손, 자손) 전체이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창 22:18).
 
 바울은 갈 3:16에서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고 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네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인 우리가 그 약속된 복의 수령인들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그 놀라운 영적인 복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에게 주어지는 복은 첫째 '칭의'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믿음으로써 칭의을 얻는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8, 9).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주심이 되었고 또한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롬 4:24, 25 참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소죄사역을, 그리고 그분의 부활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 칭의라는 놀라운 복을 받는다.
 
 갈 3:14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칭의라는 놀라운 축복을 소유하는 근거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복은 성령님에 관한 약속이다. 갈 3:14의 후반부를 보라.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를 약속하는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였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처음 맞는 오순절에 성취되었다.
 
 이제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를 약속하는 구약 예언들 몇 개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1)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사 32:15).
 
 2)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사 44:3).
 
 3)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사 59:21).
 
 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이 구절의 의미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법을 우리의 마음에 기록한다 함은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임재하시고 내주하실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성령님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데,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신 것과 같다).
 
 5)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시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을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6)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겔 11:19).
 
 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께 약속하신 놀라운 복은 성령님이시다. 갈 3:14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아브라함과 그리스도께 하신 이 약속이 신약시대에 와서 분명하게 성취된 것을 볼 수 있다. "사도와 같이 모시아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아버지의 약속이란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리스도께 하신 약속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당신께서 영화롭게 되신 이후에 즉 당신의 승천 이후에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님에 관해서 자주 말씀하셨다(요 7:38,39; 요 14:16, 17; 요 16:7, 요 16: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리스도께 약속하신 놀라운 복은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모든 신자들이 받게 될 성령님이셨다. 엡 1:13에서는 성령님을 약속의 성령님이라고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3. 성령을 받기 위한 첫째 조건인 믿음.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성령님을 받아 성령충만한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은 믿음이다. 믿음에는 3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그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깨닫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갈망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신뢰와 확신과 신임과 실천(committal)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사유(私有)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성령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분을 우리의 스승으로, 안내자로, 힘으로, 능력으로 인정하고 모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이기 위해서는 성령님에 관한 교리를 깨닫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갈망만으로도 불충분하다. 우리는 반드시 의지가 반영된 적극적인 행동으로써,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시며 우리를 이끌고 지도 하시도록 성령님을 우리의 삶 속에 모셔들여야 한다. 우리는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 가운데서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드려야만 하며 철저하게 우리 자신을 복종시켜야만 한다.
 
 성령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제공하신다. 여러분의 교사, 여러분의 안내자, 여러분의 힘, 여러분의 위로자, 여러분의 돕는 자가 되시려고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내어놓으신다. 여러분은 그분의 다스리심에 자기 자신을 복종시켜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다. 성령님이라는 영적인 복에 관한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신 이후의 첫 오순절에 처음으로 실현되었다.
 
 성령님에 관한 약속은 아브라함의 시대에 이루어질 것도 아니었고, 구약 전체를 통하여 계시되었던 그 시대 동안에 이루어질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히브리서 11:39, 40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게 된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 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약 곧 새 언약이라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마음속에 거주하여 사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그분의 법을 기록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다(렘 31:31-33). 새 언약은 성령님에 관한 언약이다. 새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The Abrahamic Covenanat)의 성취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것이며 아울러 그의 씨인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영적인 복이다.
 
 구약 성도들도 율법을 준수하였던 행위에 위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즉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그 누구도 달리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4.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옛 언약 아래에서는 성령님께서 새 언약 아래에서와 같이 충만하게 임재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과 구약의 성도들은 신약의 성도들이 받았던 정도와 같은 충만한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
 
 그러면 구약 성도들은 성령님을 전혀 받지 않았는가? 아니다. 그들도 성령님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날 새 언약하에서 성령님이 주어질 수 있는 정도와 동일한 분량으로 성령님을 받지는 않았다. 다윗은 시 51:11에서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기도했다.
 
 이것은 분명히 다윗이 성령님을 받았음을 말한다. 여러분은 구약 성도들이 어떻게 회심했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그들도 성령님의 책망과 깨우쳐주심에 의해서 회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어떻게 회심할 수 있었겠는가? 구약 성도들도 신약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 속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시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어떻게 예언을 했으며 영감된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이 모두 다 약속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씀을 읽게 된다(히 11:13).
 
 옛 언약하에서보다는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충만한 분량으로 새 언약하셔서 성령님이 주어진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한 것 중에서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하다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 사이에 있는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은사의 분량이다. 이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는 구약 성도들보다 훨씬 더 큰 분량으로 성령님을 받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영적 탁월함에 다다를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무지와 불신앙 때문에 그들의 삶 가운데 성령충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큰 문제이다. 많은 열매을 맺을 수 있고 또 맺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열매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이유도 성령 충만의 복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의 성도들 보다 성령님에 대해 더 많이 알지 못하는 현대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성령님에 의해서 개심되어졌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기 바란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성령님에 의해서 엄청난 기적들을 행했는데, 몇 사람을 꼽는다면 삼손, 엘리야, 엘리사 등을 들 수 있다. 선지자들은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미래의 사건들에 관해 예언했다. 다윗은 성령님의 영감하에서 많은 시편들을 썼다. 그러나 이 모든 구약 성도들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을 통해서 받을 수 있는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를 누리지 못했다. 단지 하나님의 약소에 대한 믿음만으로 우리는 성령님의 충만과 능력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영적인 열매를 많이 맺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지니셨던 바로 그 영적인 덕성들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무지와 불신앙 때문에 성령님의 충만함이 없는, 성령님의 다스림과 인도하심이 없는 매일매일의 살을 살고 있다.
 
 5. 우리는 어떻게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을까?
 
 성령을 충만하게 받기 위해서는 성령에 대하여 약속하신 말씀들을 신뢰하는 굳은 믿음과 그 믿음에 의지하여 드리는 진지하고도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 속에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믿음의 종류와 드려야 할 기도의 종류에 관하여 알기 위해 구약에 기록된 사실들을 예로 들어보자.
 
 (5) 우리는 어떻게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는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기 위해서는 성령에 대하여 약속하신 말씀들을 신뢰하는 굳은 믿음과 그 믿음에 의지하여 드리는 진지하고도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 속에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믿음의 종류와 드려야 할 종류에 관하여 알기 위해 구약에 기록된 사실들을 예로 들어보자.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하셨다. 극심한 가뭄과 기근 상태에서 3년 반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라고 말씀하셨다.
 
 엘리야는 자기를 아합에게 보이면 비를 보내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다. 그렇지만 엘리야는 기도없이 그 약속이 성취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아합왕을 만난 뒤에 엘리야는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서 뜨겁게 기도했다고 말한다. 마침내 바다에서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기까지 그는 중단하지 않고 기도를 계속했다. 잠시 후에 하늘이 바람과 구름으로 캄캄해졌다. 땅을 적시는 큰 비가 내렸다. 사도들도 그랬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 곧 그들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믿었으며, 그러면서 또한 진지하게 기도했다.
 
 이것이 우리의 삶 속에 성령님의 충만함과 능력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따라야 할 방법이요 순서이다.
 
 우리는 먼저 그 약속을 믿어야만 하며, 강한 기대감을 갖고서 그 약속된 것을 받기를 갈망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 지극히 진지하고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이제 여러분은, 어째서 오늘날 그토록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하며, 그들의 삶 속에서 성령님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성령충만을 받는 순서요 방법이 아닌가? 눅 11:5-13에서, 한밤중에 떡 세 덩이를 간청하며 친구네 집 대문을 두드린 사람의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에 있는 사람이,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노라"고 대답했으나 그 사람은 끈질기게 떡 세 덩이를 요청하였고, 그래서 마침내 그 사람의 끈덕짐 때문에 그가 요구한 떡을 받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여러분 가운데 공허하고, 삶 가운데 성령충만을 누리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의 삶과 경험 속에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하고 의아해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대답은 오직 한 가지, 여러분이 성령충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령님의 충만과 능력에 대한 약속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영적인 복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 엄청난 선물을 갈망하며 원하느냐는 것이다. 그 선물은 세상에 있는 모든 금보다도 훨씬 값진 것이다. 여러분은 성령님으로 충만해지기를 진정으로 바라는가? 엘리야처럼 진지하고도 열렬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겠는가?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응답해 주실 때까지, 하나님을 향하여 계속해서, 계속해서 끈질기게 기도하겠는가? 여러분은 바로 지금 충만해지기를 소원하는가? 그 선물은 하나님의 약속을 단순하게 믿는 믿음에 의해 주어진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 지금 나아가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삶 속에 주실 것으로 약속하신 성령충만을 받으라!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조건들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아비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1-13).
 
 누가복음 11장 11-13절은 기도라는 주제에 관해 제자들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결론이다. 이 구절은 말씀하시기 직전에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에 있어서의 끈기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는 예화를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약속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약속과 함께 하나님을 무한히 자비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로 생각하면서 기도로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치셨다. 어떤 아버지가 빵을 달라는 아들에게 돌을 주겠는가? 생선을 달라는 아들에게 뱀을 주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말씀의 말미에 우리가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1) 첫 번째로, 우리는 성령충만을 받을 때에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영적 은사들을 단번에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성령충만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되도록 하고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각종 은사들로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우시며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2) 두 번째로,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아주 쉬우며, 그 결과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필요한 모든 영적인 복들을 얻을 수 있는 놀라운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자녀들이 아버지로부터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음식, 의복 등등-을 받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 속에서, 자녀들이 아버지로부터 빵을 받는 것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충만이라는 선물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사실을 선언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물며'라는 단어를 사용하셔서 말씀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하셨다. 아버지들은 자기 자녀들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려고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당장에 그분의 성령님을 주셔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실 채비를 갖춰놓고 계시지 아니하겠는가!
 
 만일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 어렵다면, 진정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거짓된 교사이다. 성령님이라는 선물은 모든 영적인 은사들 가운데서 가장 고귀한데, 그 이유는 그 선물이 모든 영적인 은사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11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선물이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기를 갈망하시는 선물임을 분명하게 가르치신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의 교회들의 상태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을 살펴볼 때, 솔직히 우리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히 성령님을 충만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삶 가운데 성령님을 원하며, 성령 충만의 필요성을 자신들이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들은 성령충만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불평한다. 실제로 그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다. 그래서 성령충만이 얻기가 대단히 어려운 선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만한 떡과 물이나 주면서, 그들을 영적 음식에 굶주린 아사 직전의 상태에 내버려주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이라는 선물이, 성령충만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을 때, 과연 그분은 제대로 진리를 가르치신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충만을 주시기를 대단히 기꺼워 하신다는 것이 사실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충만을 주시기를 대단히 기꺼워 하신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면 왜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이라는 영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성령 충만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령충만에 대한  그릇된 생각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충만이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단지 특별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오직 은총을 받은 소수만이 성령님으로 충만해질 수 있고 이 큰 복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 대상에 전혀 제한을 두시지 않았다. 그분께서, 기도로 간구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성령충만을 주시기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절실히 바라시며, 또한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고자 하셨다. 성령충만을 받는 대상에 있어서 한계는 전혀 없다. 성령충만이라는 선물과 약속은 이를 간구하는 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전적으로 거짓된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께서 주장하신대로 성령충만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와 의도는 아주 명백하며, 그분의 예화는 너무나도 분명해서 오해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2) 이렇듯 명백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의 많은 사람들이 지극한 어려움을 이겨낸 후라야 겨우 성령충만을 얻을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러한 그릇된 생각을 갖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성령충만을 경험하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 하나님과 매일 교제하지도, 하나님과 매일 동행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말라. 비록 그 숫자가 그다지 많지는 않다해도 오늘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진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엘리야 시대에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아있는 줄로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자 7,000명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오늘날에도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The Professing Church)가운데에 성령님으로 충만한 참 그리스도인들이 만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증거는 그들이 사는 삶의 본질(the kind of Life)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롬 3장에 기록된 내용, 즉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오직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게 한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다"(롬 8:2)고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의 삶 속에는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안니하고 성령을 따라 삶'이 없다.
 
 갈 2:20의 냉용이 그들의 삶 속에서 경험하였던 실제 사건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성령님의 인도에 의하여 매일매일 살아왔다는 자각적인 체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자신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해지지 않기에 그들은 실망하고 있다.
 
 우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충만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의 두 가지 중에 하나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첫째 그리도께서 누구든지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실제로는 진리가 아니며 실제로는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든지, 둘째 성령님으로 충만해지기를 기도하면서도 응답받지 못하는 사람이 성령님을 받기 위한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인 거짓이 아닌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는 성령님으로 충만해지기를 간구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선물을 받기 위한 조건들을 사실상 갖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진정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있다. 그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해지기 위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지 않고, 따라서 그들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성령님으로 충만해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들은 무엇인가?
 
 (1) 성경은 우리에게 대단히 명백하고 이해하기 쉬운 몇 가지의 기도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중에 하나가 약 4:3에 제시되어 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잘못된 동기, 이기적인 이유를 가지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야고보는 선언했다.
 
 (2) 사람들은 종종 이기적인 이유로 성령충만케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런 일은 무척 흔하다. 사람들이 격려한 열정과 감정을 가지고 또한 대단히 끈덕지게 졸라대면서 하나님 앞에 나간다. 그러나 기도에 임하는 그들의 마음이 이기적인 것임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성령님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뜻을 행하고자 완전히 헌신되어진 마음과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한다. 여러분이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여러분이 창피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여러분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창피당해야 한다.
 
 (3) 성령충만을 위하여 기도하는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이든 개의치 않고 그 뜻에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기를 진정으로 달가와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정과 훈련(discipline), 하나님의 섭리에 스스로를 복종시키는 것이 혹 자신의 명예가 상실되는 일일수도 있다 싶으면 기꺼이 복종하려고 하질 않는다. 그들은 마음속에 그러한 그릇된 자존심을 지니고 있을 때에는 그들이 아무리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 그들은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이 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그 뜻에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복종시킬 준비가 실제로 되어있지 않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으며,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구하는 그들의 기도는 헛된 일이다.
 
 (4)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평안과 안락을 위하여 성령충만을 간구한다. 또 다른 이들은 자기영광(Self-glorification)을 얻으려는 목적을 자기고 성령충만을 간구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뛰어난 그리스도인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싶어한다. 자신들의 이름이 신문에 대서특필되길 바란다.
 
 (5) 목회자들이 잘못된 동기로 성령충만을 간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목사가 자신의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을 설교와 기도에 큰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생각하게 하려고 성령님의 충만을 간구하기도 한다.
 
 (6) 성령충만이라는 은사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사실상 받기가 매우 쉽다. 그러므로 성도가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할 때에는 그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거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있다. 성령충만을 구하는 기도를 응답하기 위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그 어떠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뜻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만 한다.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불가사의한 일이나 신비스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뜻은 진실한 사랑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그분의 마음과의 온전한 연합 가운데로 이끄시는 것이다.
 
 (7)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을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린다.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향해 그의 삶 속에 있는 어떤 특정한 죄악에 대해서, 혹은 그가 수행하지 못한 어떤 특정한 의무에 대해서, 그가 완전한 자기부인의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였음을 깨우쳐 주실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성령님의 음성과 자기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자신을 성령님으로 가득 채워주시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의 마음과 생활 속에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는 그 어떤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협력하여 반드시 그것을 바르게 고쳐야 한다.
 
 (8)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이 성령님께 복종하기보다는 성령님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려 함으로써 성령님께 항거한다. 여러분은 성령님의 의견(the Holy Spirit's way)을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 분 앞에서 여러분 자신의 의견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성령님은 여러분보다 지혜로우시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님께 복종하지 않고 그분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성령님으로 충만해질 수가 없다.
 
 여러분은 반드시 그분께 복종해야 하며, 그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을 지도하시도록 해드려야 하고, 여러분은 그분을 따라야 한다. 여러분 자신의 뜻은 성령님의 의도 뒤에 철저히 숨겨 놓아야만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충만과 능력을 간구하면서, 동시에 성령님을 향하여 그분이 자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셔야 하고, 자신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셔야 한다고 지시하려고 든다는 것은 참으로 기막히는 일이다. 그들은 성령님께서 그분 자신의 의견대로 자기들을 인도하실 수 있게끔 그분께 복종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니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9) 종종 사람들은 성령충만을 위하여 기도하면서도 성령충만함의 진정한 의미는 깨닫지 못한다. 들은 성령충만이, 자신들이 행복해 지고 즐거워지며 방언을 말하게 되고 거창한 일들을 행하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 즉, 사실과 상관없는, 그들 스스로 상상해낸 모든 이기적인 꿈과 생각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령충만의 실제 의미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완전한 서화(entire sanctification)를 의미한다. 성령충만은 우리의 의지와 마음이 그리스도께 몽땅 바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을 철저히 지배하시는 것을 뜻한다. 성령충만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령님으로 가득 채우길 원하시는데, 이는 마치 아버지가 자기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길 간절히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동기, 이기적인 동기를 갖고서 성령 충만을 요청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령 충만을 채워 주실 수가 없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지기 위한 기본적이고 중요한 조건은 바로 이것인데, 우리가 성령님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님의 관리감독, 지혜, 인도, 섭리에 대하여 우리 자신이 전체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함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흔히 저질러지는 잘못은, 성령님께 지배받는 것을 자기 자신이 기꺼워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달가와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들의 삶에 의해 증거되고 있다.
 
 기억하라!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이 어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여러분의 의지는 여러분의 생활에 그대로 반영된다(As the life so is will). 경건치 않은 세속적인 생활을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완전하게 헌신되지 않은 상태임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거이다.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로서 제단 위에 놓여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성령님의 충만을 임재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 쉽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만일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여러분이 주장한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불살라 버려야 한다.
 
 만일 여러분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다면 문제는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어렵다고 주장한다면, 여러분은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내게 영적인 진리들을 가르쳐주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나를 천국 백성으로 양육하길 원치 않으신다. 내가 그렇게도 수없이 간청했건만 그분은 나를 성령님으로 가득 채워 주길 원치 않으신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나 과연 여러분은 이런 말을 진실하게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에게 있다.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라. 깨끗한 동기를 갖고서 그분 앞으로 나아가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여러분의 삶을 가득 채워주실 것이다.

제7장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
 
 "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니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눅 11:5-8).
 
 1.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의 성경적 근거
 
 먼저 누가복음 11장에 있는 예수님이 비유는, 그 속에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고도 옳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다른 사람을 위해 참을성있게 기도하는 것의 중요성이 이 이야기 속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가르쳐지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 사람들에 관한 수많은 예들을 성경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비멜렉의 아내와 여종들이 수태할 수 있도록 아브라함이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창 20:17, 18).
 
 아브라함이 소돔에 사는 조카 롯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구원하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했다(창 18:22-3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했다(출 32:30-32).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구약의 선지자들도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들 속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요청했다. 바울은 자신이 여러 교회를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고 수차에 걸쳐서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여야 한다고 느낀다. 경건한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함을 느낀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옳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을 도우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갖고 계신다.
 
 2. 중보 기도 무용론에 대한 반론들
 
 (1)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소용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기도의 영향력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도란 단지 정신적으로 더 나은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기도하려하겠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전혀 기도를 듣지도 응답하지도 않으시는 줄로 확고하게 안다면 여러분 가운데 기도하는 데에 단 일분이라도 허비하였고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다.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며 계획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신실한 마음으로부터 올바르게 드려진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선한 분도 사랑많으신 분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한 분도 사랑많으신 분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더 이상 당신께서 주장하시는 시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2) 어떤 사람은, "그렇지만 나는 내 기도가 내가 위해서 기도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주게 될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성경을 읽어보라. 하나님께서는 자주 단 한 사람의 기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 모세의 기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복을 주셨다.
 
 신실한 기도는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끼치며 복을 받게 해준다. 하나님께서 심지어 짐승들과 새들의 부르짖음도 들으신다는 사시를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도다"(시 147:9). 하나님께서 짐승과 새들의 우는 소리를 들으실진대 하물며 당신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승선해 있던 배에 탄 이방인 선원들의 부르짖음을 듣고서 성난 바다를 잠잠케 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바다에서 드리는 선원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선척을 바다에 뛰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시 107:23-30).
 
 3. 중도 기도의 유익
 
 (1)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은 스스로를 위해서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없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죄악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들 자신의 기도는 아무런 유익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누군가가 그들에게 필요하다. 혹은 그들이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병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2)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사역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그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에도 유익을 끼친다.
 
 (3)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권 행사 방식의 한 단면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는 기도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한 방법이다.
 
 (4)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그들의 행복(welfare)과 그들의 영혼의 필요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을 결합시켜주며 우리로 하여금 서로 돌아보며 사랑하게 만든다.
 
 (5)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것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대해 더 깊이 알도록 해준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성품,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것들,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시험 등에 대해 눈여겨 볼 수 밖에 없다.
 
 (6)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감정, 곧 하나님의 사랑, 연민 등을 배우게 된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가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마음과 동일한 마음을 갖게 된다.
 
 (7)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것은 우리의 기도를 좇아 행동하시도록,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도록 하나님께 도덕적 권위를 제공한다. 한 도시에 큰 죄를 범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용서를 구하는 그 사람(범죄자) 자신의 요청에 따라 대통령이 그 사람을 용서해 줄 수는 없다. 그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도시에 사는 모든 이들이 함께 뜻을 모아 대통령에게 탄원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들을 봐서 대통령이 사면을 단행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중보기도의 원리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주 이 원리를 따라 역사하셨다. 그러한 예들을 보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들으셔서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아내와 종들에게 복을 주셨다(창 20:17). 소돔성도 거의 그럴 뻔했다(창 18:20-33). 모세의 중보기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셨다(출 32:7-14). 만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멸망시키셨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 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9, 10). 모세는 하나님을 그냥 내버려 두려고 하지 않았다. (Moses would not LET GOD ALONE) 이 말을 언뜻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오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모세가 하나님의 주권을 참해했다는 뜻도 아니고, 모세의 강요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지못해 이스라엘을 용서하셨다는 뜻도 아니다. 모세의 말대로 이스라엘은 '주의 백성'(출 32:11). 곧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이었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셨다. 바로 모세의 중보기도라는 수단을 통해서였다. 모세의 중보기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수단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자 모세의 중보기도를 원하셨고, 그 중보기도가 없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 백성의 죄악 때문에 곧장 이스라엘에게 내려질 판국이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퍼부어지도록 그냥 재버려주려고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보기도에 응답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셨다.
 
 (8)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들려져서 응답되어지는 것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증가시킬 것이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때, 여러분은 여러분이 위하여 기도하는 그 사람이 누구이냐에 상관없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증폭됨을 느낄 것이다. 기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그리고 우리와 우리가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과의 사이에 일체감(a bond of union)을 형성시켜 준다.
 
 (9)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사람들 스스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우리가 대신 얻어 그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한 결과 아비멜렉은 그때까지 얻지 못하던 자녀늘 얻었다(창 20:17). 욥이 자신의 세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해서, 그 세 친구들은 자신들이 범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욥 42:7-9). 모세가 미리암과 아론을 위해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나님께서 미리함과 아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심은 그들의 건방진 정신, 비난하는 정신, 질투하는 정신에 대한 책망이었다(민 12장).
 
 중보기도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인 통치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원리이다. 아부라함, 욥, 모세의 경우에 있어서 이 세 사람들 각자는 마음이 곧은 사람들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수 있는, 받아들여질 만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우리가 겸손과 신실함과 곧은 마음을 갖추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보기도를 들어주신다.
 
 4. 중보 기도의 요건-참을성
 
 눅 11:8을 잘 살펴보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하나님께 기도드림에 있어서 끈덕진 재촉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이 말씀의 내용이다. 끈덕진 재촉! 참을성! 그것이 없이는 우리가 기도응답을 받지 못할 것이다. "왜 우리가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은 우리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흔한 것이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참을성의 결여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수로보니게 연인의 경우가 참을성의 필요를 가르치는 좋은 본보기이다(마 15:21-28). 그녀가 예수님 뒤에서 소리쳤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그러자 그녀는 좇아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다시금 그분의 도움을 간청했다. 그러자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다시금 그분의 도움을 간청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얼굴을 향하여 최후의 선언(a final word)과도 같은 말씀을 내뱉으셨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런데도 그 여인은 그 가혹한 말씀을 부인하지 않으며 말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크나큰 참을성을 인정하셨고, 그녀의 딸을 고쳐주셨다. 오직 참의성에 의해서 그녀는 복을 받았다. 만일 그녀가 첫 번째,  혹은 두 번째로 거절을 당했을 때 포기했더라면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복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단 10:1을 보면, 다니엘이 3주 동안이나 계속해서 금식하며 기도했고, 그러한 그의 참을성에 대한 응답으로 환상 가운데 천사가 다니엘에게 나타났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 참을성 있는 기도의 결과를 보여준다.
 
 이처럼 참고 인내하는 것은 중보기도를 드리는 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이다. 중보기도를 드리는 자자 잘 참고 인내할 때 다음과 같은 유익을 얻게 된다.
 
 (1) 기도에 있어서의 참을성을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2) 우리가 어떤 것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자신이 구하는 복의 가치에 대한 더 큰 깨달음을 갖게 한다.
 
 (3) 참을성 있는 기도는 우리의 영혼 내부에 의로움을, 특별히 사랑을 발전시킨다.
 
 (4) 참을성 있는 기도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기도응답을 가로막는 방해거리들을 찾아내어 제거할 시간과 기회를 제공한다.
 
 (5) 하나님 자신이 결코 서두르지 않으신다. 그분은 참을성이 대단히 많으시다. 때때로 하나님의 섭리의 질서에 따라(in the order of God's providence). 성급함보다는 때를 맞추는 늦춤에 의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복들이 우리에게 더 낫게 주어질 수 있다. 시간포착(timing)은 중요한 것이며,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에 가장 좋은 시간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다.
 
 (6) 우리가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더 큰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응답을 지연시키고 계실지도 모른다.
 
 5. 중보기도를 게을리하는 이유
 
 (1) 그들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깊이 염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2)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어서 기도에 자신들의 마음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 그분의 인격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섭리와 그분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것은 불신앙이다!
 
 (3) 때때로 그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중요한 것도 필수적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필요한 것들을 응답받기에 넉넉한 기도를 다른 사람들이 할 수도 있다고 한다.
 
 (4) 그들은 너무나도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려는 갈망도, 그들을 염려하는 마음도 가지 못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뇌하고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애쓰며 매달리는 진지한 기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6. 여러분은 어떠한가?
 
 여러분 주위에 있는 여러가지 기도해야 할 문제들(various matters of prayer)에 대한 여러분의 마음 자세는 어떠한가? 기도를 통하여 성취되어질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우리가 상상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하고 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그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우리 친구들을 위해서,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사귀었던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만일 누구나 다 그런 기도의 정신을 지닌다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주시리라!